제2회 비룡소 역사동화상 수상작으로 『검은 여우를 키우는 소년』이 선정됐다. 이 동화를 쓴 이는 파주에서 살며 농작물을 기르고 동화를 쓰는 신동섭씨다. ‘비룡소 역사동화상’은 국내 최초 어린이문학상인 황금도깨비상을 시작으로 국내 창작 아동문학의 발전을 도모해 온 비룡소가 세상을 폭넓게 바라볼 시각을 전해 줄 참신한 이야기를 발굴하고자 신설한 상이다. 모회사인 ‘민음사’의 전통과 명성 그대로 어린이책 전문출판사로 인지도를 쌓아온 ‘비룡소’의 수상 작가,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그동안 갈고 닦은 내공이 만만치 않다.
주 양육자로 아이들과 추억을 쌓는 동안 아동문학에 눈 떠
07년생인 딸과 09년생 아들을 둔 작가는 맞벌이 부부들이 흔히 겪는 육아의 어려움을 겪던 차 아이가 폐렴에 걸려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한 사람이 육아를 전담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단다. 그렇게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자발적 육아를 맡게 되면서 아동문학에 눈을 뜨게 됐다. “이왕이면 잘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주기 위해 함께 텃밭에서 농작물을 기르고 동요를 불러주고 동화를 읽어주었어요, 그러다 아동문학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직접 동화를 쓰고 싶어 한겨레아동문학작가학교 55기를 수료했고 1997년에는 오월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됐다. 또 2019년 ‘어린이와 문학’에 동시로 등단했으며 육아 에세이 『아빠가 되었습니다』와 도시농업 실용서 『가족텃밭 활동백과』 도 냈다.
주 양육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자연 속에서 풍부한 감성을 키워주고자 노력했고 아이들도 잘 자라주었지만 순간순간 경력단절이란 고충도 있었다는 작가. “사실 육아가 눈에 보이는 성과로 딱 보여 지는 건 없으니까. 또 작가라는 일도 늘 머릿속은 작품구상으로 뭔가를 하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잖아요.(웃음) 그런데 이번 역사동화상 수상으로 아이들도 작가로서의 아빠를 인정해주는 것 같아 좋습니다. 주어진 만큼 기대에 부응해야하는 부담감이 없지 않지만 한발 더 나아가라는 격려로 상을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광활한 상상력, 소외된 존재들의 감동적인 연대기
『검은 여우를 키우는 소년』를 쓰게 된 건 어느 날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다 티베트고원에서 새앙토끼를 잡아먹고 사는 여우를 보게 된 데서 시작됐다. “그때 문득 여우 판타지는 끊임없이 나오는데 왜 모두 부정적으로만 표현되는 걸까? 진짜 여우이야기는 왜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진짜 여우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에 이에 대한 기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서 검은 여우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그때 마침 그가 속한 합평 모임에서 주제를 정하자는 제안에 역사 동화를 제안했고 여우를 소재로 한 동화구상이 시작됐다. “검은 여우는 돌연변이예요. 그만큼 귀해서 조선시대 명나라에 조공으로 바치던 동물이었고 검은 여우를 생포해 오면 포상을 해주던 기록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 초인 1428년, ‘살아 있는 검은 여우’에 포상이 걸리자 한 달여 뒤 평안도에서 이를 잡아 바쳤다는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의 두 가지 기록에서 출발했다. 600여 년 전의 조선 시대 압록강변의 어느 외딴 마을. 화척 소년 타내는 외딴집에서 검은 여우 까매를 길들여 동생처럼 아끼고 늘 서로의 곁을 늘 지켜준다. '화척'은 한반도로 흘러든 북방 유민의 무리를 천하게 부르던 말이었다. 살아 있는 검은 여우에 포상이 걸리자 타내는 까매를 지키기 위해 읍성에서 달아나고, 붙잡힌 새끼 여우들까지 구하러 모험에 나선다.
이 이야기는 “압록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상상력, 소외된 존재들의 감동적인 연대”라는 평과 함께 “타내가 검은 여우 까매와 교감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는 모든 존재들의 공존이 요청되는 오늘날에 시사 하는 바가 크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검은 여우를 키우는 소년』은 무엇을 지켜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교훈을 주는데 끝나지 않고 재미를 놓치지 않는 전개로 몰입도가 높다는 호평이 많다. 여기에 20년 넘게 어린이 책 작가로 활동하며 그림책, 동화, 논픽션 등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로 200여 작품에 그림을 그려온 오승민 작가의 거침없고 섬세한 그림도 역사적 상상력을 북돋아준다.
“악한 이미지로만 그려졌던 여우는 사실 왜곡된 부분이 많습니다. 조선시대 여우신을 의도적으로 악하게 만들었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부터 여우는 무섭고 악한 동물이 됐고 그런 왜곡된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싶었어요. 운 좋게 수상한 건 대립하는 여러 가치관의 충돌을 균형감 있게 표현하고자 했던 점을 좋게 평가해 주신 것 같습니다.” 거듭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운도 준비하고 있는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닌가. 또 다른 역사 동화를 구상하고 있다는 신동섭 작가, 그의 상상력이 더욱 더 비상하기를 기대해본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