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시험 문제를 학생과 분석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수업을 할 때에도 전날 열심히 설명했던 개념을 물어도 대답을 못할 때가 있는데, 했었다는 생각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 머리에 기억을 지우는 바이러스, 그것도 수학만 찾아서 지우도록 심어 놓은 것일까?’
수학이 부족한 학생들은 기초 개념을 모르는 경우입니다. 예로 의 계산을 못하는 것입니다.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이 학년이 올라가면 이차방정식 풀이, 적분 계산 등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기초가 풀이 중간에 나타나는데, 해결이 되지 않으니 못 풀거나 풀어도 틀리는 것입니다. 이때 바이러스가 등장합니다. 마치 드라마가 중반에 접어들었는데, 자주 등장하는 배우가 누군지 기억을 못하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워지거나 복잡해지면 틀리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농도 공식은 아는데 소금물 문제는 틀리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형별 접근법을 제시했습니다. 소금물을 섞을 때, 물을 증발시킬 때, 더 넣을 때와 같이 문제를 하나의 패키지로 만들어 분류해놓은 것입니다. 이때 바이러스가 등장합니다. 시험을 위해서 익혀야 하는 패키지가 너무 많아서 머리 속에 넣다보면 용량이 차서 먼저 넣은 순서대로 지워지는 것입니다. 혹자는 바이러스가 기억을 먹어치우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넣으려 하기도 합니다. 문제를 아주 많이 푸는 것이지요. 그래서, 패키지만 알뿐 세부 내용을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 풀이 과정을 통째로 외운 것이지요. 구구단처럼 반사적으로 나올 수 있을 때까지 익숙해지도록 푸는 과정을 반복한 것입니다. 고학년이 되면 이 패키지가 많아질 뿐 아니라, 길어집니다. 패키지의 작동 원리를 모르거나, 패키지 안의 순서를 외우기에 벅찬 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때론, 여러 개를 섞어서 어느 것인지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들은 패키지 내부의 원리를 마스터한 사람들입니다. ‘왜’라는 의문을 갖고, 고민하면서 익혔기 때문에 느리게 재생할 수는 있지만 외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풀이에서 다음 단계를 넘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고, 논리적이어서 외운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억을 지우는 바이러스를 이기는 힘은 생각하는 과정, 고민하는 노력인 것입니다.
이태우 원장
히즈매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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