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점점 클수록 엄마의 자리도 좁아진다. 아침에 깨워 밥 한 술이라도 먹일라치면 돌아오는 아이의 짜증. 공부하느라 밤늦게 지친 어깨로 돌아오는 아이를 보며 말 한마디 건네기도 조심스럽다. 이렇듯 애 닳고 가슴 답답한 한국 고등학생의 엄마들. 하지만 ‘따복한땀 동아리’ 엄마들은 그 마음을 한 땀 한 땀 손끝에 모아 보람과 희망으로 엮어내고 있다.
평일 대낮 여인들의 심상치 않은 규방 공예
금요일 낮 12시, 보정고등학교에 모인 ‘따복한땀 동아리’ 회원들은 무언가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바늘과 바늘방석, 실패와 핀, 가위와 자, 오색찬란한 천들로 가득한 작업대를 보니 참한 여인들의 규방인가 싶은데 다시 보니 여고시절 가사실의 작업대 같기도 했다.
“오늘 만드는 것은 강릉주머니에요. 강릉에서 유래된 전통주머니로 어부들이 배가 뒤집어지지 말라고 부적을 넣고 다녔다고 해요. 이 부분을 바느질해서 뒤집으면 끝이 뾰족하면서 몸체는 볼륨감이 살아있는 주머니 모양이 되죠.” 외부에서 초빙된 강사인가 했더니 ‘따복한땀 동아리’ 박은순 회장의 열띤 설명이었다.
박 회장은 수업 커리큘럼과 재료 준비, 진행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강사비도 안 받는 재능기부이지만 스스로의 만족과 보람, 함께하는 즐거움 때문에 인터넷을 뒤지고 동대문을 돌아다니며 열정을 다해 준비한다고 한다.
서로의 재능과 손재주 공유해 배워서 남주자
‘따복한땀 동아리’는 손재주 있는 학부모들이 각자 활동을 하다가 의기투합해 모이게 됐다.
때마침 경기도의 따복공동체 선발사업이 있어 계획서를 만들고 400팀이 참가한 킨텍스 공동체 발표회에서 좋은 성적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이날 선발된 팀은 총 250팀.
“저희 동아리의 목표는 ‘배워서 남주자’입니다. 서로의 재능을 나누고 인재를 길러내 지역사회에 건전한 여가생활 동아리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자는 취지죠”라고 박 회장은 설명했다.
“모여서 커피 마시며 애들 비교, 남편 비교 수다나 떨며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느니, 수세미라도 떠서 완성됐을 때의 성취감, 기쁨을 나누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더라고요.” 이 모임이 결성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최영애씨의 말이다.
한 달에 2번 정기모임, 2번 소모임을 가지니 거의 매주 모이고 있는데, 처음에는 회원 집을 돌아가며 모임을 갖다가 현재는 보정고가 장소를 제공해주어 모이고 있다. 뜨개 수세미에서 바늘방석, 앞치마, 생활자수를 이용한 다양한 생활용품, 조각보, 에코백 등 이 모임에서 다루는 공예 작품은 매우 다양하다. 지난 7월 18, 19일에는 그동안 꽤 많이 제작한 작품들을 모아 보정고에서 ‘따복한땀 전시회’를 열었다. ‘평범한 엄마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다니’하고 깜짝 놀라는 자녀들의 반응이 가장 뿌듯했다고 한다.
연말 독거노인 목도리 기부도 할 예정
김정란(48·용인 보라동) 회원은 보정고 봉사동아리에서 수세미를 뜨다가 함께 하게 됐다고 한다. “직장을 다니는데 월차를 내서 이 모임에 참석합니다. 제가 너무 즐거워하는 모습에 남편이 부러워하는 눈치에요. 이게 다 아들 덕분이지요.”
임은숙(43· 용인 마북동) 회원은 외국에서 살다가 1년 반 전에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친구도 없고 동네 주민도 낯선 환경에서 이분들을 만나 외로움을 극복했어요. 귀한 수공예도 공짜로 배울 수 있으니 너무 감사해요.”
전은수(45· 용인 죽전동) 회원은 보정고 학부모가 아니다. “동아리 회장님과의 인연으로 모임에 참여하게 됐는데 학교와 연관이 없으니 오히려 편하고 스트레스가 없네요. 저도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 사귀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이런 기회가 제겐 축복이지요.”
처음 모임의 시작은 단순했으나 하다 보니 열정이 한없이 샘솟는다는 ‘따복한땀 동아리’ 회원들. 10월 18일에는 안산에서 열리는 전국 마을공동체 박람회에 초청받아 전시, 발표, 체험 부스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전시회나 바자회를 통해 낸 수익은 다시 기부로 돌릴 계획이고, 연말에는 지역 주민자치센터와 연계해 지역사회 독거노인들에게 목도리와 수세미를 제작해 기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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