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에 익숙한 요즘 세대들은 ‘붓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힘든 작업으로 여길 것이다. 모니터 속 깨끗한 새문서는 언제나 수 백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씨체들이 준비되어 있으니 굳이 붓을 들고 글을 쓸 필요가 있으랴. 하지만 세상의 이치는 한쪽 방향으로 힘이 향하면 다른 방향으로 힘이 생기기 마련, 극으로 치닫는 디지털 문화 속에 아날로그는 다시 수줍게 꽃을 피우고 있다. 그 중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대표적이다.
20여 년간 ‘붓을 가지고 놀았다’는 작품들로 근무하는 학교에서 전시를 하고 학생들에게 글씨 문화를 일깨워 준 교사가 있다. 바로 송림고등학교 사회과 조남형 교사가 주인공이다.
독서와 캘리그라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평소 인문학적 소양이 깊은 조남형 교사는 대표적인 취미로 독서와 붓글씨 쓰기를 꼽는다. 현재 보라도서관의 독서모임을 이끌기도 하고, 서예로 시작된 글씨 쓰기는 캘리그라피로 이어졌다.
“한 때 서예를 배우기도 했지만, ‘처음처럼’을 쓰신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를 보고 기절할 정도로 신선함을 느꼈어요. 그리고 생각해보니 한석봉이나 김정희는 명필가이지만 그 당시 잘 쓴 것이지 시대가 달라진 만큼 지금의 명필은 이 시대에 맞는 글씨체여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서예를 접고 캘리그라피를 시작할 때 수 백점에 달하는 신영복 작가의 글씨를 다 베껴서 연습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노력을 한 후에는 그 글씨체에서 탈피를 하려는 노력을 무척 했어요. 저만의 글씨체가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그의 글씨는 무척 개성이 강해 보인다. 그림 같기도 하고, 때로는 장난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안에 존재하는 힘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오와 열을 맞춰야 하는 예전의 문체와는 달리 캘리그라피는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무게중심과 수평의 조화가 굉장히 중요하지요.”
한 획이 ‘잘나거나’ 혹은 ‘바보같이’ 그어져도 다른 획으로 보완을 해 줄 수 있는 것을 보며 그는 ‘참 사회와도 같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고도 한다.
니체의 이야기를 담은 글씨에
환호하고 공감해 준 학생들
그렇게 ‘붓과 놀던’ 시간이 20여년 흘렀을 때 그는 문득 ‘이 글씨가 과연 10대에게도 어필이 될까’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이 글씨체가 학생들에게도 통할까 궁금한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전시를 준비하게 된 거죠.”
그리고 그 전시를 통해 그는 학생들에게 니체의 사상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니체와 함께 생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푹 빠져 살았다. 이렇게 읽은 책이 30여권,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안티크리스트’는 전문을 다 베낄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
“다른 사람들의 전시를 본 적이 있는데, 예쁜 글씨는 많지만 내용이 안 느껴진 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어떤 글을 쓸지에 대해서도 굉장히 신중히 생각했죠.”
이렇게 세상에 나온 작품은 약 60여 작품으로 교실 하나를 다 채우게 되었다. 그 안의 메시지는 전복(가치전환), 용기, 희열이었다.
“학교 동아리 축제기간이었는데 막상 전시를 오픈하고 보니 대성황이었어요. 저희 학교학생은 물론 옆 건물 중학생들도 단체로 와서 구경할 정도였죠.” 이때 조 교사는 학생들에게 원하는 글을 써 줄테니 포스트 잍에 남기라고 했고 약 150명의 학생들이 메모를 붙여놨다고 한다. 방학인 지금도 그가 바쁜 이유이기도 하다.
“전시 중 한 중학생이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라는 글귀 앞에서 이 글을 원한하다고 해 물어보니 본인은 연극을 전공하고 싶은데 부모님은 탐탁치 않으시고, 이 글이 용기와 힘을 준다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이처럼 저의 감성이 10대와 통하고 함께 공감하는 것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고 무척 기뻤답니다.”
음악과 커피가 있는
‘돈 안 되는 켈리 인문학 사랑방’이 꿈
조남형 교사에게 앞으로 계획을 묻자 올해에는 니체전 2를 진행할 예정이란다. “한 4~년간 니체에게서 못 벗어날 것 같아요. 니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아이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놀랍고 전시를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이 작업이 너무 즐겁습니다. 그리고 먼 미래 언젠가는 뜻이 맞는 사람과 모여서 ‘돈이 안 되는 켈리 인문학 사랑방’을 열고 싶어요. 독서와 캘리그라피 그리고 음악, 커피가 함께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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