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대여시장 프론티어가 전하는 ‘창업의 정석’

장덕성 커피랑도서관 대표

오미정 리포터 2019-03-20

잠실 석촌호수 부근에 2013년 문을 연 커피랑도서관 1호점. 카페 열풍이 불면서 개성 담은 개인 카페,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세를 불리던 무렵이었다.
장덕성(39세) 대표는 발상을 바꿨다. 커피랑도서관에서는 음료가 아니라 공간을 시간 단위로 팔았고 대신 커피나 차는 무료로 제공했다. 북카페 콘셉트로 스테디셀러, 베스트셀러를 고루 비치해 손님들이 맘껏 읽도록 했다.
집중해서 공부할 쾌적한 공간이 필요했던 청소년과 청년들 사이에 공간은 점점 입소문 났다. 5년이 흐른 지금 커피랑도서관은 전국 각지에 83개 가맹점을 운영중이며 지난해 매출은 57억 원, 올해는 100억 원을 목표로 달리는 중이다.
국내에 공간대여 시장을 만든 프론티어인 장 대표에게 창업, 그리고 버티며 직진하는 힘에 대해 물었다.



불변의 아날로그 향수를 브랜드에 녹이다

-스터디카페, 공유오피스 등 몇 년 사이 공간대여 시장이 커지면서 경쟁이 치열하다. 커피랑 도서관의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인가?
“유행을 쫓아서도 매출 확대에만 연연해서도 안 된다. 디지털시대에 ‘도서관’이라는 아날로그 향수를 공간에 넣는 게 우리의 핵심이다. 인건비 이슈 때문에 무인시스템을 도입하는 곳이 계속 늘고 있다. 우리 역시 무인시스템을 개발했지만 멤버십 회원들이 이용하는 야간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직원이 상주하며 고객을 맞이한다. 우리 사업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중요하며 무인으로 운영할 때 위험 요인을 5년 넘게 공간을 운영하면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트렌드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것도 장점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사람들은 공기의 질에 예민하게 반응하자 우리 공간에 맞는 고성능 공기정화장치를 개발해 가동중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만의 서비스를 만들어 나간다. ‘커피랑도서관’ 브랜드에 담긴 문화와 집중이란 키워드가 우리의 핵심 가치다.”

-공간대여사업 물꼬를 튼 1세대고 현재는 경쟁이 치열하다. 어떤 전략을 펼치고 있나?
“단기간 스터디카페가 많이 생겼고 상당수가 고시원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창업 당시 20대 여성이 주 고객층이었다면 지금은 1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어 졌다. 우리는 2018년 가락동에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의 사옥을 마련해 전시와 강의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 카페, 기업 워크숍 공간, 커피랑도서관, 루프탑 정원을 갖췄다. 조만간 1.5평 내외의 독립된 공간을 제공해 숙박이 가능한 캡슐형 도서관을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 안에 베트남에서 첫 매장을 오픈한다. 우리나라 공간대여시장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첫 사업 망한 후 얻은 것은?

-20대 창업해 망한 경험이 쓴 약이 된 듯싶다.
“경영학, 건축공학을 복수전공했다. 오래 고민하기 보다는 일단 행동하는 스타일이고 천성적으로 숫자에 밝다. 건물관리 사업을 눈여겨 보다 뛰어들었는데 주차관리업이란 틈새시장이 보였다. 하지만 돈이 술술 벌리자 오만해졌고 결국 사람 관리를 잘 못해서 망했다. 반성 많이 했다. 커피랑도서관 창업 후 예전의 나와 결별하기 위해 밑바닥부터 뛰었다. 처음에는 주택가에 전단지 돌리며 홍보했고 아침마다 아내와 간절히 기도했다. ‘오늘은 손님이 세 명만 왔으면 좋겠다’, ‘다섯 명만 왔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기적처럼 만석의 소원을 이룬 날의 벅찬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카공족, 1인기업 증가 같은 시대운이 따르기는 했지만 사업하며 마음고생도 많았다. 교육청에서는 공간대여 사업이 생소하니까 독서실로 허가받으라고 압박했지만 우리는 북카페라고 끈질기게 설득해 서비스업으로 등록할 수 있었고 그 뒤 우리와 유사한 스터디카페 창업붐이 일었다.”

-커피랑도서관 성장과 함께 인간 ‘장덕성’은 어떻게 바뀌고 있나?
“나는 천성적으로 리더 보다는 팔로우어 성향을 지녔다. 20대를 돌이켜 보니 호기롭게 사업 시작해 돈을 버니까 기고만장해졌고 건물주 접대하느라 허구한 날 술을 마셨다. 그러다 밑바닥까지 내려가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술과 담배부터 끊었다. 우리 가족 네 식구, 회사 직원 29명, 여기에 전국 83개 가맹점주와 그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을 매일 느낀다. 자연스럽게 겸손을 배웠다. 예전에는 양복 차려입고 사장 티를 냈다면 지금은 청바지, 점퍼 차림으로 직원처럼, 손님처럼 부지런히 현장을 돈다.”



만남이 축복이 되도록

-송파구일자리정책위원으로 활동중이며 사회기여 활동도 펼치고 있다. 창업 준비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취업에 비해 창업 경험은 사회를 빨리 넓게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가령 꼬박꼬박 내는 세금도 ‘왜 내야 하나? 절세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는 있나?’를 다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지금 경기 상황이 녹록치 않기 때문에 창업은 신중히 준비해야 하며 아이템은 오래 할 수 있는 걸로 골라야 한다. 경기가 좋을 때는 오픈했다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또 다시 오픈하는 식의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며 권리금 장사를 하며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정한 창업의 불문율은 ‘망하더라도 수습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하자’다. 커피랑도서관 창업 상담하러 오신 분들께도 임대보증금을 제외하고 50여평 규모로 시설비 약 1억 원, 월임대료 약 250만원이 드는데 1억 원 투자해 최악의 경우 망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지 냉정하게 따져보라고 한다. 사회 기여도 중요하다. 우리는 공부 공간이 필요한 청년들에게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군산, 경산 등 책 공간이 필요한 곳에는 커피랑도서관 실내 인테리어 서비스와 집기류를 제공하고 있다. 선한 영향력이 선순환되는 거, 만남이 축복이 되도록 만들어 나가는 걸 소중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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