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 - 금산군보건소 ‘행복 실은 이동보건소’ 한명화 주무관
“병원은 멀고, 가족은 더 멀리 있는 어르신께 갑니다”
어르신들 건강 돌보는 막내딸 같은 공무원 … 문 앞까지 찾아가는 서비스 최선 다해
디지털과 사물인터넷, 그리고 빅데이터의 시대. 우리는 더 이상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눈부신 디지털 시대를 꿈꾸는 사회의 가장자리, 농촌은 4차 산업혁명으로의 진입보다 더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병원은 멀고 가족은 더 멀리 있는 독거노인들. 그들을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을 만나봤다.
‘행복 실은 이동보건소’에서 치과 진료를 돕고 있는 한명화 주무관.
이동보건소 건강버스로 어르신들 찾아
금산군 군북면. 이곳 주민들은 금산읍에 있는 병원에 가려면 하루 두 번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오고 갈 기력이 있으면 다행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병원 치료는 언감생심 멀기만 하다. 도로를 한참 벗어난 산간 오지마을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제때 치료하지 못한 치아는 뿌리까지 상했고, 몇 해 전에 맞췄던 틀니는 잇몸에 맞지 않아 제 기능을 못 하기 일쑤다. 그래서 이들에게 가장 반가운 손님은 문 앞까지 찾아온 이동보건소 건강버스다.
이동보건소 차량에는 첨단의료장비가 탑재되어 멀리 가지 않아도 구강 진료와 치료, 내과와 한방진료 서비스를 편하게 받을 수 있다. 금산보건소 한명화 주무관은 올 2월부터 이동보건소 건강버스에 합류해 어르신들 건강 향상을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치과 장비가 정말 잘 구축돼 있어요. 그런데 정작 치료받을 치아가 거의 없는 분들이 대다수에요. 몸이 아프면 물리치료는 곧잘 받으시지만 치아는 큰돈이 들어간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참고 계세요. 부러진 이를 어쩌지도 못하고 고생하다 오신 분, 신경까지 상해 뺨까지 퉁퉁 붓도록 앓다가 이동보건소에서 치료받는 분도 계세요. 속상하죠.”
치위생사인 한명화 주무관은 이동보건소를 반가워하는 어르신들과 만날 때마다 슬며시 올라오는 안쓰러움을 어쩔 수 없다. 언제 맞췄는지 기억나지 않는 틀니가 덜그럭거리고, 씹지 못해 물에 만 밥만 마시는 식사가 전부인 노인들은 눈에 띄게 말라 보였다.
“치료 후 상담 시간에 좀더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어요. 일상에서 관리가 정말 중요한데 틀니를 소독하고 잘 조율을 해드려도 유지하기 힘든 고령인 어르신들이거든요. 경로당으로 찾아가 정기적으로 교육하기도 하고 치과 진료에 관해 상담하기도 해요. 건강이 걱정돼서 잔소리가 길어져요. 잔소리 많은 막내딸 같다고 하면서도 손은 꼭 잡고 계세요. 그럴 때 좀 더 바쁘게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명화 주무관은 금산군의 각종 행사장, 경로당, 생활터 등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주민들을 찾아 나선다.
홀로 있는 어르신, 외롭지만 서글프진 않도록
한명화 주무관은 올 초 이동보건소 업무를 맡기 전까지 국가 암 검진 사업을 담당했다. 국가에서 실시하는 검진임에도 정보가 부족한 농촌인 탓에 홍보 방법을 총동원해 어르신들께 알렸다. 전화는 기본이요 야간에 열리는 행사장과 수삼센터, 경로당과 생활터 등을 찾아다니며 검진 내용과 방법을 설명했다. 공무원의 특권 같은 정시 퇴근이란 한 주무관과 거리가 먼 얘기였다. 금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금은 대전에 사는 한 주무관은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몇 년을 보냈다. 금산읍에 사는 7000명 평가대상자를 찾기 위해 도로명을 일일이 구주소로 밤을 새워 변경했다. 한 달이 걸렸다.
“검사받을 때까지 주소로 찾아가고 전화 드렸어요. 조기 발견만이 살 길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게 설명하고요. 이장님, 부녀회장님, 새마을 지도자 등등 네트워크 중심인물도 닦달하고 대장암 검사에 필요한 대변 통도 직접 배달하고 수거했어요. 신문지 위에 용변을 봐야 해 싫다며 손사래를 치기에 뻥튀기를 차에 잔뜩 싣고 다니며 나눠 드렸어요. 물에 녹으니 신문지보다 처리가 간편했거든요.”
때와 장소를 불문한 잔소리와 기상천외한 발상 덕분에 작년 금산군보건소는 16개 시·군에서 검진율 4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접근이 편한 의료기관이 상주한 여타 시·군과 달리 출장 검사소도 없는 금산군의 현황을 감안하자면 1위보다 값진 검진율이었다. 무엇보다 본인의 노력이 지역 주민의 건강에 보탬이 됐다는 생각에 보람이 컸다. 그러다 가끔 반갑지만 슬픈 안부 전화도 받는다.
“워낙 정이 든 분들이라 검사 결과가 궁금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나 재검 받으라고 하네. 안 좋은가 봐. 그래도 고마워 덕분에 병을 빨리 알았어’ 하시며 제게 전화를 주세요. 재검 소리에 울컥하지만 그래도 발견했으니 더 나빠지진 않겠지, 만감이 교차하는 전화죠.”
한 주무관은 홀로 있어 외롭지만 아파서 서럽지는 않도록 어르신들의 건강을 돌봐드리는 것이 본인의 소임이라고 말한다. 함께 울고 웃는 막내딸 같은 공무원, 한명화 주무관은 오늘도 이동보건소에 올라 어르신들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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