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들이 가장 사랑한 꽃 매화. 눈보라 속에서 꽃망울을 맺어 초봄에 꽃을 피우며, 화려하나 넘치지 않는 고고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봄꽃. 그 기개와 미에 반해 매화도라 이름 지었다. 대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갑천을 바라보는 어느 골목길. 여기에 매화도가 있다.
매화도에서 찾은 ‘사람’ 이야기
누군가는 매화도를 일컬어 퓨전 일식집이라 칭하고 누군가는 전형적인 군산횟집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매화도의 음식은 고급스러우나 다양하고, 푸짐하나 특별하다. 이처럼 매화도는 하나의 수식어로 설명할 수 없는 성격의 음식점이다. 그러나 회를 파는 일식집이니 회 맛 하나는 한마디로 정의가 가능하다. 진검승부. 회는 칼의 맛이다. 날 것을 칼로 요리하는 생선회는 따라서 재료와 칼을 잡는 장인의 협업으로 완성되는 예술품이다.
일단 매화도의 회를 맛보기 전, 지리산에서 공수한 장뇌삼 진액과 고소한 전복 내장죽을 미리 만나야 한다. 이 둘을 시작하고 드레싱을 곁들인 연어 무 쌈과 아이 주먹만 한 전복 버터 찜, 멍게와 개불, 전복 초회와 칠리 대하 튀김, 맑은장국과 매콤한 가오리찜, 알이 꽉 찬 시사모와 청어 구이, 수제 새우튀김 등이 모둠회와 함께 등장한다.
빈약한 주메뉴를 상쇄하기 위한 용도로 등장하는 여타 음식점들의 곁들이 음식과 달리 매화도의 곁들이 음식은 접시마다 단품 메뉴로 내놓아도 손색없을 맛과 양과 질로 유명하다. 먹던 손님이 이렇게 다 퍼줘도 남느냐고 도리어 사장에게 질문을 하는 풍경은 매화도 곳곳에서 목격되곤 한다.
“제가 좋아하는 옛 구절 중에 ‘내 집에 오는 손님은 왕보다 더 왕이로소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신사임당이 ‘손님을 대접하는 도리’라며 자제들의 처신을 가르치는 대목이죠. 이윤이요? 남죠, 사람으로 남더라고요. 허허.”
매화도를 운영하는 김준동 대표는 1989년 어원 일식 창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문 경영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음식은 오두진 요리장이 경영은 김준동 대표가 철저히 분담해, 음식 걱정 없이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손님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30년 전 손님이 아직도 매화도를 찾는다. 장소도 달라지고 상호도 달라졌지만, 칼을 잡고 있는 오두진 요리장과 초심을 잃지 않은 김준동 대표가 이곳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화도에선 당신이 누구건 상 앞에 앉는 순간 아주 특별한 주인공으로 순식간에 변신한다. 정성 가득한 음식의 향연과 구구절절 사연을 읊어도 지루해하지 않고 귀를 기울여 주는 주인장이 곁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김 대표에게 사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그 자체라고.
장르를 넘나드는 한·중·일식, 멋과 맛이 공존하다
그래서 매화도의 곁들이 음식은 조금 사치스럽다. 싱싱한 횟감용 생선을 단번에 잡아 최적의 상태로 숙성한 선어가 기본인 매화도 회는 그 자체로 훌륭한 맛과 식감을 자랑하기에 따로 곁들이 음식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한상 가득 올라오는 음식 하나하나는 선어회의 맛을 방해하지 않으며 한 곳에서 한·중·일식을 음미할 매력적인 기회이기도 하다.
우선 계절 별미로 등장하는 과메기나 싱싱한 해산물, 음식을 남김없이 먹을 때까지 꿈틀거리며 살아 있는 산낙지회, 매콤하게 볶은 중국식 고추잡채, 일본식 볶음 우동과 사골 국물에 가까운 칼칼한 해물 매운탕, 그리고 더는 먹지 못할 때까지 배를 채웠어도 거부할 수 없는 못난이 김밥까지.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맛에 놀라고 재료의 신선도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알배추 하나까지 고랭지 산을 고집하고 회를 찍어 먹는 초고추장과 간장도 매화도만의 레시피로 제조하고 다려 나온다. 회 위에 올려 먹는 고추냉이와 간장에 풀어먹는 고추냉이도 종류가 다른 두 가지가 함께 나온다. 최고의 식재료를 최상의 상태에서 즐길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것, 이러한 신념으로 김 대표는 아직도 새벽 장보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저는 아직도 저를 기억해 주는 손님이 반갑고 고마워요. ‘김 대표는 어쩜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어?’라며 긴 시간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이 소중해요.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제가 느끼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손수 장을 봐서 좋은 재료만 골라 와요. 새벽잠쯤이야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어요. 이미 몸에 밴 습관이기도 하고요.”
섬 속에 섬, 섬을 품은 매화도
매화도(梅花圖)를 뜻하지만, 사람들은 전라남도 앞바다에 있는 매화도(梅花島)를 떠올린단다. 그도 그럴 것이 매화도 안 대형 연회석(40석)을 빙 둘러싼 8개의 방은 각각 섬 이름으로 구획돼 있기에 그림보다 섬을 떠올리기 쉽다. 울릉도, 독도, 홍도, 연평도. 아름답고 외로운 한국의 섬들을 매화도는 품고 있다. 넉넉하고 포근하게 품어주는 매화도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저녁 시간 홀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창 바쁠 시간에 혼자 4인석을 차지한 손님이 야속할 법도 한데, 김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횟집 저녁 시간에 홀로 탁자를 차지하고 홀로 잔을 기울이는 사람. 혼술, 혼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지만 김 대표는 어쩐지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쓸쓸하다.
“혼자 오셔도 됩니다. 매화도를 찾은 외로운 손님, 우린 두 번 안 죽입니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손사래를 치는 김 대표는 아무리 바빠도 말동무를 해 줄 테니 언제든 오라고 말한다. 옹기종기 떠 있는 여러 섬을 품은 매화도처럼 혼술 혼밥을 먹는 사람들을 넉넉하게 안아주는 웃음이다.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받은 마음이 많아서 음식도 퍼주고 정도 퍼준다. 그래서 매화도는 홀로 와도 여럿이 함께해도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다.
“많이 어려운 시기죠. 한 골목에서 문 닫는 음식점이 여러 곳인 요즘입니다. 불경기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여러분들 매화도에 오셔서 배도 채우고 마음도 든든히 채우고 가세요.”
눈 속에서 피는 매화처럼 초심을 잃지 않겠다던 김 대표는 다시 사람으로 말을 맺었다. 다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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