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

‘지명유래비’ 세우는 향토사학자 이현우

급격한 개발로 잃어버린 안산의 작은 마을들

박향신 리포터 2017-03-16

올해 안산에는 지명의 유래를 적은 비가 다섯 개 생길 예정이다. 단풍나무가 많았다는 ‘풍전(楓田)’과 선비가 태어날 땅이라는 빈유지(斌裕地)가 후대로 내려오며 변한 ‘비누지’ 등이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풍전은 공단지역으로 비누지는 선부동 아파트단지로 변해 마을과 지명도 이미 사라졌지만, 그 이름을 작은 비에 기록하고 기억하는 ‘지명유래비’가 만들어지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지명유래비는 변화의 바람에 밀려 고향을 잃어버린 이들에게는 추억으로 통하는 입구이며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내 고장을 알게 되는 잊지 못할 스토리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30여 년 간 안산의 지명과 문화재 발굴에 힘쓴 이현우 향토사학자를 만나 안산의 땅 이름 이야기를 들어왔다.    



지명, 역사를 담고
안산문화원 3층에 자리한 안산향토사연구소 이현우 전문위원은 “이름 없는 꽃이 없듯이 이름 없는 땅도 없다”며 “지명은 세월을 따라 변하지만, 잘못 전해져 와전되거나 뿌리 채 잃어버리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며 재미있는 지명이야기를 풀어냈다.
‘능길’은 신길온천역 건너편에 있던 마을로 ‘능으로 가는 길목’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능묘는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묘소를 의미한다. 이 위원은 “단종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세조의 이야기를 한 중학교 학생들과 연극으로 꾸며본 적이 있었다”며 “우리 지역에 담긴 이야기를 함축해서 담고 있는 것이 지명이고 이를 통해 역사를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2005년 안산 얼 찾기 사업으로 16개의 지명유래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담당자가 바뀌며 잠시 중단되었다가 2014년 다시 시작해 20개가 더 만들어졌고 올해 5개가 더 만들어지면 41개가 되는 것이다. 땅 이름 즉 지명(地名)은 문화재라 할 수 있을까? 예부터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고 곳곳에 알맞은 땅 이름을 지었고, 세월을 따라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었다. 대부분 지명에는 여러 가지가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인물 또는 역사속의 사건 또는 그 지역의 자연물 그리고 재미있는 설화까지 함축되어 있으니 후손에게 잘 전해야 할 살아있는 문화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명, 풍요를 예견하며
이 위원은 27년간 안산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안산지역의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안산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고 말했다.
“안산은 분명 예나 지금이나 풍요로운 도시이다. 또 인물이 많이 나왔다. 안산시 문화재가 유독 묘소가 많은 이유도 훌륭한 인재가 많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1914년 일제가 ‘안산군’이라는 이름 자체를 없앴다. 안산이 고려의 성군 문종의 탄생지이고 조선 후기 중흥시대를 이끈 인물이 많이 나왔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원곡동의 다문화거리에 대해 “일자리를 찾아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모이는 활기찬 도시임을 알린다”고 말했다.  
원곡동에 살던 정씨 가문 묘비에 백성촌(百姓村) 출신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백 가지 성을 가진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명을 통해 이 지역에 옛날부터 이주민들이 많았거나 또는 앞으로 많아질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지명, 바르게 전하는 것이 도리
집집마다 감나무가 있고 마을에는 대나무가 많아 ‘감대골’로 불리다가 음이 변하여 ‘감자골’이 되었다. 감자골의 세거성씨였던 양주최씨의 족보에는 시죽동(枾竹洞)이라는 기록이 여러 군데 나오고 ‘시우대’라고 불리는 작은 대나무가 근처 산에 자생하고 있다.
이 위원은 “사2동주민센터 옆에 감자골에 대한 지명유래비가 세워졌는데 ‘시곡’이나 ‘감골’로 불리는 것은 안타깝다”며 “원래 근본이나 뿌리는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명은 대부분 구전(口傳)되기 때문에 안산에서 오래 산 80~90대 어르신들에게 묻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집성촌이 많았던 안산은 대대로 내려오는 족보에 세세한 기록이 남아있어 향토유적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 위원은 안산지역에 전해오는 설화를 모아 삽화를 넣은 이야기책으로 만들고, 안산지역 향토사를 책임질 후계양성에 힘쓰고 있다.
“지역향토사는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아야 할 정도로 섬세한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애정이 남다른 '터줏대감들'의 역할은 사라지기 위운 향토사를 바로 잡는데 큰 몫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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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향신 리포터 hyang30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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