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시화전에서 만난 김미정, 정옥예 학생과 이원정 교사(가운데).
10월 31일까지 개최되는 시화전 ‘소풍’을 감상하다보면 예상치 못하게 눈가가 촉촉이 젖어온다. 남들보다 한글 배움이 늦었기에 겪어야 했던 답답함과 속상함이 고스란히 표현된 시에서 글쓴이의 마음이 그대로 읽혀졌기 때문이다. 군포여성회관 4층 로비에서 열린 특별한 전시회 ‘소풍’에서 여러 늦깎이 학생 중 김미정 씨와 정옥예 씨를 만났다.
한글 때문에 가슴 한편에 속상함을 묻다
“그 시절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시절
내 이름 석자 외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연필과 종이가 날 작아지게 만들던 시절
어린 손주의 손에 동화책이 들리면
동화책이 날 또 부끄럽게 만들던 시절”
소풍 네 번째 이야기에 수록된 김미정 씨(57세, 느티나무학교 지혜반) 작품의 일부분이다. 그 시절 그 손주는 내년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김 씨는 십여년 전 손주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수 없었던 그 시절이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픔을 가슴에 묻고 남들보다 늦게 한글을 시작한 만큼 원 없이 열심히 공부했다. “사실 처음에는 못 따라갔어요. 작년에 한글 배우기 시작했으니까 모르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요. 다른 거 하나도 안하고 공부에만 매달렸거든요. 달력 뒷장을 잘라서 빈틈없이 계속해서 쓰고 이해가 될 때까지 연습하니까 나중에는 알겠더라고요. 3~4년 정도 공부할 몫을 1년 동안 한 것 같아요. 이렇게 상도 받으니까 우리 손주가 할머니 진짜 대단하다고 그래요.”
김 씨는 작품 ‘그 시절’로 2016년 경기도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최우수상(경기도지사상)을 수상했다. 그 동안 제일 무서운 일은 연필을 손에 쥐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무언가를 써야 하는 상황이 오면 가슴이 막 뛰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더 속상했죠. 그런데 이제는 그런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너무 좋죠. 앞이 보이는 거 같아서 더 행복해요. 얼마 전에는 보험회사에 가서 혼자 청구서를 다 쓰고 왔어요. 약간 틀리긴 했는데, 너무 뿌듯했어요.”
이제는 영어 공부도 시작했죠~
“인생은 60부터라고
지금부터 알차게 배워보자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제는 ㄱㄴㄷ에서
ABCD로 가고 있다.”
소풍 네 번째 이야기에 수록된 정옥예 씨(68세, 한글교실) 작품의 일부분이다. 정 씨의 어린시절은 강원도 산골 외딴집에서 밥 먹고 살기도 쉽지 않았다. 장미 지면 다리가 끊어지고, 눈이 오면 길이 막히는 탓에 학교를 제대로 갈 수 없었다. 당연히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 그 공부가 한이 될 줄은 몰랐다. 애국가 4절을 모두 써오라는 큰 딸의 숙제를 도와주지 못했을 땐 정말 죽고 싶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공부를 했었더라면 우리 아이들 많이 가르쳐줬을 텐데, 그땐 나도 잘 모르고 먹고 살기도 바쁘니까 애들을 잘 봐주지 못했어요.”
그러다 나이 육십이 되었을 때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졸업장도 땄고, 중학교 시험을 보라는 추천도 받았다. 한참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는데, 어느덧 반복해도 쉽게 잊어버리는 나이가 찾아왔다. “다시 60살로 되돌아간다면 그때 시작하지 못했던 영어를 공부하고 싶어요. 요새는 커피집을 가도 그렇고 영어가 필요하더라고요. 작년부터 영어를 시작하긴 했는데 자꾸 잊어버려요. 그 때 제대로 공부했으면 중학교 졸업장도 땄을 거 같아요. 그게 제일 아쉬워요. 좀 더 빨리 못한 거.”
한글공부,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아
군포여성회관에서는 2002년부터 한글을 처음 배우는 수강생을 대상으로 초급과 중급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6년부터는 초등학력인정과정인 느티나무학교 지혜반이 1년 과정으로 운영 중이다. 이원정 교사는 “느티나무학교는 교육부 학력인정프로그램으로 국어뿐 아니라 초등학교에서 다루는 전과목을 공부하고, 학교생활과 똑같이 학습활동과 더불어 소풍, 영화관람, 수학여행 등 다양한 문화활동도 함께 이루어진다”며, “50대 후반에서 80대 까지 늦깎이 학생들이 중도 포기자 없이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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