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 배운 내용을 아이들은 얼마나 기억할까?’, ‘교사가 정한 학습 목표가 과연 학생들에게도 학습 목표일까?’ ‘수업 도사’ 소리 들으며 열정적으로 가르치던 이홍배 교사는 고민에 빠졌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는데 배움에 수동적인 학생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신기술이 쏟아지는 4차 산업 시대를 살아갈 제자들에게 꼭 필요한 자질을 가르치고 싶었다.
“문제를 발견해 스스로 해법을 찾아나갈 수 있는 힘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수업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배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어떤 질문이든 맘껏 해라!’
‘질문이 있는 교실’ 교수법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현장에 적용했다. 수업방식도 확 바꿨다. “엉뚱한 질문이라도 상관없으니 궁금한 건 맘껏 물어보라고 합니다. 비판적 사고력, 소통 능력은 질문을 통해 길러집니다.”
그날 배울 내용을 압축한 10분 내외의 동영상 강의를 집에서 예습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독려하고 숫기 없는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도 열외 없이 수업시간에ㅔ ‘질문’할 수 있도록 팀플앱을 적극 활용했다.
“엎드려서 자는 아이가 줄어들었죠. 온라인에 좋은 질문을 올리면 칭찬을 많이 해주니까 강의식 수업에서 소외됐던 중하위권 학생들의 자존감 역시 높아집니다.”
그간의 수업 경험을 전국의 동료 교사들에게 널리 알리며 질문이 있는 교실 전도사로도 맹활약중이다.
영재·발명교육 전문가의 색다른 수업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과학교육, 영재교육, 발명교육 전문가인 그는 지도한 학생들마다 과학탐구대회, 발명대회, 로봇대회, 국내외 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수상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6년 올해의 과학교사상, 2007년 교사들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교육부 인증 신지식인 선정, 2010년 한국창조인재양성 우수교사 표창을 받았다. 2013년부터는 수석교사로 활동중이다.
교직 입문 30년 세월동안 쉼 없이 성장시킨 힘이 뭔지를 묻자 “지식에 대한 갈망”이라며 빙긋 웃는다.
그는 공고 출신이다. 가정형편 때문에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하려는 그를 담임이 만류하며 대학진학을 권했다. 특유의 성실성과 집념으로 학비 벌어가며 공부해 대학을 마쳤고 25살에 교사가 됐다.
햇병아리 시절부터 과학교사로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교사월급 30만원 시절에 당시 우리 보다 앞섰던 일본에 가서 과학참고서 100만원치 사다 문제 유형을 분석했어요. 치밀하게 교재 연구한 끝에 고난도 문제집을 펴내 참고서 시장에서 당시 인기를 끌었지요.”
신암중, 가원중, 아주중, 잠신중 등 부임 학교마다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열성적으로 진행했다. 과학 심화학습에 갈증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자청해서 무료 강의까지 열었다.
“그 당시 가르쳤던 남학생이 3년 전쯤 찾아와 고맙다며 인사하더군요. 비닐하우스에 살만큼 가난한 청소년기를 보내던 무렵, 내게 1주일에 3시간씩 과학을 배우며 너무 행복했고 마음 속에 선생님이란 꿈을 키울 수 있었노라고 고백하더군요. 지금 그 녀석은 고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요.” 말썽꾸러기 제자가 지금은 어엿한 중소기업 사장이 된 사연부터 서울대 의대교수로 당당하게 성장한 학생 이야기까지 끈끈힌 사제지간의 인연을 들려주는 그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엿보인다.
삶의 지향점은 나눔
그는 늘 학생들을 살핀다. 동기 부여가 필요한 아이, 가정형편 때문에 속앓이 하는 아이... 마음을 보듬으며 친구처럼, 부모처럼 다가가려 애쓴다. “노상 지각한다고 혼만 내면 안되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야 하죠. 집 나간 부모님 대신해 어린 동생 밥 챙겨 먹이느라 늦을 수도 있잖아요. 1:1 상담을 해 보면 가슴 아픈 사연들이 참 많아요. 다독이면서 아이의 가능성을 찾아 꿈을 심어주는 게 교사의 역할이죠.”
이 교사가 늘 강조하는 ‘학생을 위한 양질의 교육서비스’에는 지식 전달 뿐만 아니라 인성 덕목까지 포함된다. “영재교육을 오랫동안 담당했어요. 영재는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늘 주목 받다보니 협업 능력 부족하고 이기적인 성향을 보이는 아이가 더러 있어요. 그래서 인성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고 아예 영재교육 커리큘럼 안에 포함시켰습니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운 지식을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 이 때문에 그는 다양한 현장경험 기회를 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며 교육청을 비롯해 여러 정부기관 문을 두드리며 예산을 지원받는다.
올해도 중소기업진흥청 지원 덕분에 창업동아리를 운영중이다. “아이들이 비즈니스를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팝콘 제조기를 샀어요. 이 기계 하나로 과학 원리부터 실물 경제까지 다양하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학교나 지역 행사에서 팝콘을 팔아보기도 하고요. 수익금으로 나눔의 가치도 직접 경험할 수 있지요.”
어려운 환경을 딛고 스스로 길을 만들며 ‘신지식인’의 영예까지 얻은 그는 감동을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속내를 밝힌다. “살아보니 세상에 공짜는 없더군요. 허나 애쓰고 노력하면 길은 보여요. 나눔의 삶 역시 중요해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 늘 다짐해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