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도덕성과 윤리를 양심의 힘으로 묻는다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송복남 작가

지역내일 2025-03-22

소설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의 저자 송복남 씨가 사는 곳은 파주시 운정의 하우개 마을이다. ‘하우개’는 ‘학’의 연음이다. 그가 이곳에서 살면서 펴낸 소설이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이다. 무려 원고지 4,000여 매 분량의 장편소설이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문학이란 그릇에 인문적 사유를 담은 장편소설

10년의 개작 끝에 처음 펴낸 작품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원고지 4,000여 매의 장편이라니. SNS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무모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책을 낸 이유가 있을 터.

“현대인의 극단적인 물질욕망이 주제인데, 욕망은 시대를 초월하는 담론이 아닌가. 역사는 변하지만 욕망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 얘기야말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우리의 욕망이 어떤 역사를 썼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욕망의 도덕성과 윤리를 양심의 힘으로 묻고 싶었다.” 작가의 말이다.

소설의 ‘그랑호텔’은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물질적 풍요를 상징하는 단어이며 이 체제에 동승한 사람들이 ‘투숙객들’이다. 이 작품은 1906년 대한제국 시대 청계천 무당의 영혼결혼식에서 시작해 1999년 IMF와 2008년 금융 위기, 리먼 브라더스의 몰락 그리고 21세기 서울 옥인동 그랑호텔까지 120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인간의 실존과 욕망의 긴 역사를 추적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서사가 중심이지만 동양적 사고와 20세기 초반 실존주의 철학이 주제를 이끄는 담론으로 작동하고 있다.

간결하고 명징한 ‘그랑호텔의 아포리즘’ 인상적

아무튼 이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책의 두께, 그리고 다소 현학적인 책 소개에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초반을 넘기고 나면 얘기가 달라졌다. 영상미를 연상시키는 묘사와 이야기의 흐름은 소설 속으로 점점 빠져들게 했다. 퍼즐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서사에다 때맞춰 등장하는 인물의 배치는 자연스레 소설 속으로 독자의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120년이라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무대 자체가 광활하다. 서울 옥인동과 뉴욕 맨해튼, 마이애미와 단양 도담삼봉, 충주 미륵대원지 그리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산하르비에라는 이야기의 무대는 지구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소설의 에필로그에 도달한다.

“생각하기는 쉬우나, 생각하게끔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번 읽은 책을 다시금 되짚게 하는 유쾌한 사유,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이 그 일을 해내고 있다. 한 세기를 훌쩍 넘나드는 시공간의 긴밀성과 등장인물 어느 하나도 헛되이 소비하지 않는 치열성은 마치 빼어난 영상 서사를 고증하는 듯하다.” 이 소설의 추천평을 한 이병준 무용평론가의 말이다.

『그랑호텔의 투숙객들』과 함께 할 독자 서평단 ‘오티움클럽’ 모집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의 바탕에는 인문적 사유가 짙게 깔려 있다. 인문적 질감에 문학적 형식을 직조한 양탄자 같은 느낌이다. 굳이 ‘인문적 사유’라고 한 데는 소설과 인문적 사유의 접목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은 소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아포리즘이 유독 그렇다. 주제와 캐릭터의 성격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아포리즘 (신조, 원리, 진리 등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은 이 소설이 사유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이 소설을 먼저 만난 텀블벅(크라우드 펀딩) 독자들은 소설 속 문장에서 간결하고 인상적인 아포리즘을 찾아내 필사하기도 한다. ‘아르케역사문화연구소’(blog.naver.com/people3701)에서는 매주 월, 수, 금요일 『그랑호텔의 투숙객들』 소설 속 아포리즘 카드뉴스를 발행한다.

또 ‘사유의 깊이’와 ‘인문적 시선’을 담은 명징하고 간결한 ‘아포리즘’을 함께 읽는   독자서평단 <오티움클럽>도 개설한다. 소설을 읽고 필사하며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인문적 특성을 감상하고 공유하는 게 오티움클럽의 목적이다. 신청 및 문의는 people3701@naver.com


******미니 인터뷰

송복남 작가는 지역지와 시사주간지, 월간지에서 오랫동안 기자 일을 했고, 시사월간「피플」발행인 겸 편집장을 지냈다. 2016년 김민이라는 필명으로 「현대시학」신인상에 당선돼 ‘국도’ 외 시 4편을 발표했으며 2025년 2월 장편소설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을 출간했다.Q.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은 언제부터 구상했나

소설을 구상하는 건 미래를 설계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번득이는 아이디어나 빛나는 문체 같은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물론 어느 예술이든 인간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시간과 사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표현양식은 각각 다르다. 인간이 창조한 예술 장르 중 소설처럼 구체적인 내용으로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장르는 없다. 그만큼 작업과정이 보다 지난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 소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20년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 구상한 게 20년 전이고 처음 초고를 쓴 게 10년 전이었다. 초고가 2016년에 창작과비평 장편소설상 본심작에 올려졌고, 욕심을 내 제대로 만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뒤 다시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개작을 하는데 10년이 걸렸다는 소리다. 처음엔 1,350여 매였는데 고쳐놓고 보니 4,060매가 됐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다. 예술작품을 보고 창조라고 하는데 틀린 말이다. 그냥 창작이라고 하면 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나 혼자의 영감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침 지외르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읽게 됐고 그 책의 서문에 ‘심연의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소설은 전적으로 그 관용어에서 영감을 얻었다.

Q. 이 소설은 메시지가 강하다. 무얼 말하고 싶었나?

사실 메시지가 분명한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강요나 폭력적으로 보이는 듯해서 그렇다. 하지만 이 소설을 쓰면서 오히려 정 반대가 됐다. 어떻게 하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노력했다. 모든 창작품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 문제의식이 내 깐에는 좀 절박했던 모양이다. 자본주의는 18세기 중반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모두가 고민해 온 문제의식이다.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도구화한 인간의 목적과 수단이 문제를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인문학이 더 필요했는지 모른다. 자본주의의 반대말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해다. 자본주의의 반대말은 인본주의다. 자본주의는 돈이 중심이라는 소리고 자본주의가 많은 문제를 일으키면서 인간의 존엄을 갉아먹기 시작하자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자는 인본주의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소설의 메시지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다시금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를 상기하자는 강조라고 볼 수 있다.

Q. 영혼 얘기가 중심에 있던데 어떤 의미인가?

영혼은 인류의 오랜 고민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과 죽음, 불안과 공포와 직접으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래적으로 불안한 존재다. 그래서 뭔가를 자꾸 한다. 뭔가를 하면서 불안을 잊고 불안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천 년을 노력해 왔지만 불안을 해소한 적이 없다. 당연하다. 불안은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생명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려면 그걸 받아들이고 같이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선험적으로 불안한 존재인 인간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는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이 극단적이다. 인간의 불안에 대한 공포는 영혼을 농단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진다. 영혼을 소유하고 소유하려면 영혼이 물질이어야 한다. 즉 영혼마저 물질이기를 원하는 욕망의 극단, 이게 이 소설의 주제다.

Q. 요즘 젊은 세대 얘기가 나오던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누군가의 삶은 누군가가 살아낸 삶의 결과다. 내 삶 역시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이 준 유산이다. 이 소설은 이 시대 주류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50대 60대 70대가 이 시대의 주류이자 이 시대를 만들어 낸 당사자다. 이들이 만든 세계에서 지금 MZ세대가 살고 있다. 맥락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으며 보다 잘 살기 위해서는 그 맥락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이 시대 주류 기득권들의 욕망이 극단적이라는 것이다. 물질을 추구함으로써 지금의 부를 만들 수 있었다는 신념과 확신이 강하다. 그게 결국 물질만능의 이 시대를 만들었다. 이런 세계에서 젊은 세대들은 더 궁지에 몰린다. 부의 세습이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부를 물려받는 것도 실력이라는 코미디 같은 말이 현실에서는 진짜 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그걸 다들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말이냐 하면 차별과 차이를 인정하겠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차이와 차별이 물질의 소유 정도에 따라 갈리며 이걸 모두 받아들인다는 이 얘기는 중세 신분제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소리와 같은 것이다. 소설은 거꾸로 가는 이 시대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말하자면 5,6,70세대에게는 성찰과 반성을, 요즘 MZ세대에게는 세계의 맥락을 볼 수 있는 눈과 저항을 말하고 싶었다.

Q. 향후 출간계획이 있다면

인간은 고뇌하는 존재다. 삶이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순간순간 찰나에 존재한다. 나머지는 고뇌의 시간이다. 이 고뇌는 자신과 세계의 부조화 혹은 부조리에서 온다. 이걸 이해하는 게 내 관심사다. 그걸 이해함으로써 차별이 사라지고 평등과 평화를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너만 잘 먹고 잘 살 게 아니라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는 소리다. 얼마나 아름다운 꿈인가. 이때 필요한 게 사랑이다. 이 소설의 궁극의 주제는 사실 사랑이다. 아마 앞으로도 쭉 소설 속에서 그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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