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의 삶은 어떤 것들로 채우면 더 행복해질까? 살아온 인생마다 사람마다 다 다른 답을 내놓겠지만, 여기 책과 함께 아이들 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이 있다. 파주 교하도서관 어린이자료실에서 지난 4월부터 전래동화 읽어주기 자원봉사를 시작한 최미세 씨를 만나 그의 인생에서 책 읽어주기 봉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 들어보았다.
태정은 리포터 hoanhoan21@naver.com
미국에서 온 전래동화 할머니
파주 교하도서관 매주 화요일 오후 4시 어린이자료실에는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할머니 최미세 씨가 있다. 책을 좋아해서 산책 삼아 걸어서 도서관에 다닐 수 있는 곳에 집을 마련했다는 최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랭귀지스쿨 교감선생님이었다. 미국에서 30년 넘게 살다 최근에 귀국한 최 씨는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의 도시 파주에 둥지를 마련했고, 취미삼아 다니던 교하도서관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책 읽어주는 할머니를 자청했다고 한다.
한국서 25년간 초등교사로
30년 전 미국으로 떠나기 전 최 씨는 한국에서 25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고 한다.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미국 생활을 시작했는데,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다는 게 알려지면서 주변에서 한국어를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최 씨는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그곳 사람들이 한국어를 잊지 않도록 어린이반부터 청소년반, 성인반까지 다양하게 한국어 수업을 이끌었다.
다양한 교육적 장치가 담긴 전래동화 교실
이런 경력이 배어있어서일까. 최 씨가 들려주는 전래동화 이야기에는 다양한 교육적인 장치가 숨어 있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 최 씨는 대여섯 살의 아이들 예닐곱 명을 앞에 두고 전래동화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읽어주었다. 책을 읽기 전 그는 아이들에게 전래동화와 관련된 질문을 던진다. “큰 동물에는 뭐가 있을까요?” 사자, 코끼리, 곰, 소 등 아이들이 저마다 씩씩하게 대답하자 오늘의 본격적인 책 읽기가 시작됐다.
옛말과 우리말에 담긴 아름다움 전하기
전래동화 그림책에는 오늘날 자주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들도 있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말들도 있다. 그는 책을 읽어주며 ‘꼴을 베다’라거나 ‘코뚜레를 끼우다’ 등 옛날 농경사회에서 자주 썼던 말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도 빼먹지 않는다. “소를 사려는데, 입 속을 왜 들여다볼까요?” 이야기 속 등장인물의 행동을 꼼꼼히 관찰하면서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유를 생각해보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작고 소소한 것들에도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아이들, 가끔씩 아주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는 다섯 살 배기의 수다도 여유롭게 받아주는 이야기 할머니다.
의태어와 의성어 따라하며 신체활동도 곁들여
전래동화 ‘소가 된 게으름뱅이’에는 각종 동물들이 내는 울음소리와 행동, 모양을 나타내는 말들이 담겨 있다. ‘소는 음메음메 울다가 우적우적 먹는다.’ 최 씨는 아이들이 우리말의 다양한 의태어와 의성어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몇 가지 놀이를 고안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을 이야기해보고, 동물 머리띠를 만들어서 머리에 쓴다. 아이들은 동물 머리띠를 하고서 그 동물처럼 울음소리를 내고 동물의 행동을 몸으로 표현한다. 개구리를 고른 아이는 개굴개굴 소리 내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면서 잠시 동안 개구리가 된다.
엄마 손 잡고 도서관에 오는 것만도 참 좋은 일
책 읽기가 끝날 무렵에는 아이들에게 동물 이름이 적힌 팔찌를 선물하며 이야기 할머니만의 미션을 제시한다. “집에 가서 글자를 모르는 동생이나 친구들에게 동물 팔찌를 보여주면서 글자를 알려주렴.” 전래동화 읽기가 모두 끝나면 최 씨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쌀과자를 나눠주며 책 읽기의 즐거움을 더한다. 어린 친구들에게 3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참으로 알차게 지나가고, 다음에 만날 약속을 하며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엄마 손을 잡고 도서관을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최 씨는 말한다. “교육에 있어서는 엄마의 열성이 참 중요합니다. 도서관에는 좋은 책들과 프로그램이 많으니 엄마 손 잡고 도서관에 오는 것만으로도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책 읽어주기 봉사는 기쁨이자 삶의 활력소
겉보기엔 젊은 할머니 같지만 ‘벌써 7학년’이라는 최미세 씨에게 자원봉사를 시작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저는 평생 일하느라 손주들이 자라는 걸 못 봤습니다. 도서관에서 봉사하면서 젊어지는 느낌도 들고 다시 직장 생활하는 기분도 듭니다. 집에서 이야기 소품과 자료를 준비하는 것도 제게는 기쁨이고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최 씨의 손에는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작은 종이 있다. 맑고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모이고 설레는 이야기 시간이 시작된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최 씨는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해 영어로 봉사하는 프로그램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전래동화’는 매주 화요일 오후 4시 교하도서관 어린이자료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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