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의 궁극은 답안작성이다. 논제에 대한 분석이나 제시문에 대한 이해를 아무리 잘하더라도 답안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실제 시험장에서 수험생이 논술 문제지를 받아들고, 시작종이 울린 후, 시험시간 안에 어떤 과정을 거쳐 답안작성까지 이르게 되느냐는 한 번쯤 머릿속으로 그려볼 만한 그림이다. 도대체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논술문제를 먼저 읽는다. 나는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논술문제를 눈으로 읽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럼 눈으로 읽지 무엇으로 읽는가? 눈으로 읽으면 출제자의 요구사항을 놓치기 쉽다. 그러니 시험장에 가면 나누어 주는 연습지에 문제를 한 글자도 빠지지 말고 직접 써보아야 한다. 그리고 출제자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내가 쓴 문제에 밑줄을 그어가며 확인한다.
이제 개요작성이다. 내가 말하는 개요작성은 주어진 분량에 맞게 출제자의 요구사항을 각각 얼마큼의 분량으로 써 줄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이다. 요구사항을 주어진 글자 수에 맞춰 답안으로 모두 담아내기 위해서는 출제자의 요구사항의 비중과 주어진 분량을 잘 배분해야 한다. 첫 번째 요구사항을 너무 길게 쓰다가 두 번째 요구사항을 쓸 공간의 부족으로 대충 마무리하는 경우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요작성 없이 성급하게 답안을 작성하게 되면 열심히 쓴 답안을 지우거나 답안지를 새로 교체하는 등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개요작성을 끝내면 제시문을 읽기 시작한다. 제시문을 읽을 때도 그냥 눈으로 읽지 않는다. 주요 핵심어라고 생각하는 구절을 메모해 두는 것이 좋다. 보통 학생들은 메모없이 시험지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다가 나중에 답안을 작성할 때도 밑줄이 그어진 제시문을 보면서 문장을 쓰게 되는데, 이때 예기치 못한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어느 대학이나 제시문을 그대로 옮겨 쓰지 말라고 주의를 하는데도 제시문을 그대로 베껴 쓰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시험지에 나온 제시문을 읽으면서 답안을 작성하기 때문이다.
제시문은 한 번만 읽는다. 제시문을 두 번 읽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때는 시간 안에 답안을 작성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제시문을 메모해 두는 이유는 답안을 작성할 때 시험지를 보지 않고 내가 메모해 둔 핵심어만 가지고 답안을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제시문의 문장을 그대로 베끼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시문의 내용을 출제자의 요구사항에 맞게 변형해서 쓸 수 있게 된다.
이제 제시문 분석이라 할 만한 메모도 끝났다. 시험지는 덮어 두고 내가 직접 작성한 논제분석, 개요작성, 제시문 분석만을 보고 답안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출제자의 요구사항에 맞게 원고의 분량을 미리 정해두었기 때문에 아무리 긴 답안이라 하더라도 단락이 나누어지는 글을 쓰게 되니 부담이 되지 않는다. 논제분석을 철저히 해 두었기 때문에 내가 쓰는 모든 문장은 출제자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정말 중요한 건 답안을 작성하는 순간이다. 메모를 보고 답안을 쓰는 과정 중에 일어나는 일, 다시 말해 수험생이 필기구를 붙잡고 원고지 위에다 글을 쓰는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순간을 철학자 들뢰즈의 용어를 빌려 ‘창조의 행위’라 부르고 싶다. 사실 어떠한 문장을 쓰든 그 행위는 아름답다. 인간이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비록 논술답안이라 할지라도 구체적인 문장으로 추상화된 사고의 힘을 표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의 답안작성으로는 ‘사고의 힘’을 길러낼 수 없다. 이는 운동과 비슷하다. 역기도 여러 번 들어보아야 무거운 역기를 들 수 있고, 열심히 뛰어 보아야 더 빨리 뛸 수 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논술 시험을 준비하는 일은 알고 보면 나에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다. 논술시간마다 답안을 작성할 때면 나도 모르게 ‘사고의 힘’이 길러진다. 마치 트레이너가 옆에 있으면 집중해서 근육을 키울 수 있는 것처럼 논술답안도 첨삭을 받으면서 부족했던 두뇌의 근육은 성장하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길러진 힘을 지니고 시험장에 앉아 논술답안을 작성하면서 인간의 아름다운 창조 행위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파주 운정 대입논술전문 스카이논술구술학원
김우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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