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여행가’는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엄마들이 모여 만든 동아리다. 회원들은 쉽고 간결한 글과 그림 속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 떠나는 그림책 여행기, 그들을 직접 만나 들어보았다.
함께 읽다 보면 눈시울 촉촉해지는 일 부지기수
동아리가 결성된 것은 2012년의 일이다. 이미 2010년부터 그림책 공부를 해보자며 알음알음 모인 엄마들은 ‘그림책 여행가’란 이름을 짓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회장 이은미씨는 1기 회원이자 모임의 산파 역할을 했다. 그는 두툼한 스크랩북을 펼쳐 보이며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부터 엄마들의 열정이 대단했어요.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목마름에 한국의 작가 계보를 전부 살펴보았죠. 모임이 결성된 이후엔 교과서를 정하자고 의견을 모았고, 그 책이 바로 ‘그림책의 이해’였어요. 교과서 학습을 마친 후 작가별 그림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발제자가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모두 찾아 빌려오면 회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읽었다. 이은미씨는 “함께 읽다 보면 눈시울 촉촉해지는 일이 부지기수”라며 “옆 사람이 울면 나도 울고 누군가가 웃으면 같이 웃게 되는 그 울림 때문에 엄마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율적으로 모이고 공부하며 그림책 탐독해
‘그림책 여행가’는 강력한 리더십을 뽐내는 이끄미 없이 자유롭게 공부하며 9년째 모임을 이어왔다. 모임 유지를 위한 특별한 조항도 없다. 새내기 회원의 적응을 돕는 간단한 절차만 있을 뿐이다. 1기 회원 계미미씨는 “신입 회원이 오면 그림책을 선물하며 환영 인사를 한다”며 “기수별 모임을 차례로 참관하며 전체적인 방향을 잡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운영을 돕는 회장과 기수별 대표는 1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맡는다. 모임은 기수별로 운영되고 요일이나 횟수, 커리큘럼 역시 제각각이다. 4기 대표 이미영씨는 “4기는 그림책과 다른 분야의 책을 병행해 읽는다”며 “우리가 원하는 방식과 내용으로 모임을 꾸려갈 수 있어 회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50여 명에 달하는 회원 모두가 함께하는 전체 모임은 1년에 4회 가량 열린다. 기수별로 공부하는 내용을 소개하고, 감명 깊게 읽은 그림책을 골라 낭독한다. 주제 도서로 선정된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도 갖는다. 여름엔 야외에서 도시락 소풍을 즐기며 책 나눔을 한다. 이은미씨는 “특별하게 나서는 이 없이 모두 어깨동무하며 걷기에 동아리가 잘 유지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프리랜서로 그림책 디자인 작업을 했다는 권영진씨는 20대 중반에 우연히 그림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아이들이 즐겨 보는 유치한 책이 아닌 마치 한 편의 작품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림책 공부할 기회를 놓쳐 아쉬움이 많았던 차에 지인의 제안으로 이곳을 찾아왔다. 그는 “함께 읽고 소통하면서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며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 경주마처럼 달리면서 어린 시절의 나를 잊고 지냈는데, 그림책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대면하는 느낌이다”라고 전했다.
회원 장희정씨는 그림책을 읽으며 무언가 결핍돼 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치유하는 기분이라고 고백했다. 이은미씨 역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해지면서 진짜 나를 찾아 가는 여정이 바로 그림책 여행의 매력이다”라고 했다.
‘그림책 여행가’는 2020년도 새해를 맞아 9기 회원을 모집한다. 그림책을 좋아하고 함께 읽을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회원들은 입을 모았다.
“좋은 그림책뿐 아니라 어른 책도 함께 읽어요. 영화나 강연을 함께 보고 듣기도 하고요. 유쾌한 수다도 빠지지 않는 답니다.”
문의 권영진 winter092@naver.com
미니 인터뷰
이은미씨
그림책의 매력은 더불어 읽을 때 배가되는 것 같아요. 각자 읽고 왔을 때와 누군가 읽어준 이야기를 함께 듣고 난 후의 이야기가 달라지는 걸 분명하게 느껴요. 같은 책이 완전히 다른 책으로, 보다 풍성하게 다가온답니다.
계미미씨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림책을 공부하게 될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요. 색다른 경험이라 좋았어요. 책엄마 봉사를 위해 골라둔 작품을 식탁에 올려놓으면 중학생 아들이 뒤적뒤적 읽어보고는 이 책이 더 재밌다며 추천해주기도 해요. 전혀 관심 없던 남편도 이젠 제가 못 본 디테일까지 설명해줘요. 가족이 그림책을 매개로 더 많이 가까워졌어요.
권영진씨
<마음이 아플까봐>라는 책이 있어요. 갑자기 할아버지를 잃은 아이는 마음이 아플까봐 자기의 심장을 꺼내 유리병에 가둬요. 성인이 된 후 매사에 시큰둥한 삶을 살다가 심장을 꺼내보려고 노력하지만 되질 않죠. 그런데 우연히 만난 어린 아이 덕분에 주인공은 심장을 되찾아요. 어른이니까 단단해져야 해. 감정을 드러내면 안 돼. 이런 닫힌 마음의 경계를 허물어주는 책이죠. 저는 그림책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영씨
그림책을 함께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속 이야기를 꺼내게 되요. 이 과정을 통해 친구가 되는 느낌입니다. 사실 학교에서 엄마들이 ‘친구’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삶의 지향점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데 그것을 드러내기가 조심스러우니까요. 그런데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잘 통한다는 기분이 들고, 그 점이 제일 좋아요.
장희정씨
아이가 다섯 살 때부터 여러 책모임에 참가했는데요. 그림책에 대한 갈증이 사라지지 않아 이 모임을 찾게 됐어요. 자유로움 속에 따뜻함과 깊이가 있어 좋고, 책을 돌아가면서 읽는 윤독은 다른 모임에서 해본 적 없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글을 읽어주는 엄마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정말 좋아져요.
손미경씨
‘그림책 여행가’는 품앗이 동아리예요. 그 날의 발제자가 아니라면 누구든 마음 놓고 와도 괜찮아요. 설거지를 하다가 와도, 조금 늦어도 부담 없어요. 슬쩍 앉아 있으면 발제자가 좋은 그림책을 모아서 읽어주고 작가 소개도 해줘요. 자기 차례에 품앗이 한 번만 하면 7~8번의 행복을 얻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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