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라고 하면 어떤 이는 지루한 책을 읽다 덮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속으로 빠져들던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잠시잠깐 찰나의 순간이라도 책 속의 이야기가 재미있고 짜릿했던 경험을 맛본 이라면 몇 년 후에라도 다시 책을 찾지 않을까. 평생 독자(讀者)를 만들기 위해 한 움큼의 마중물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파주 해솔중학교 학부모 독서동아리 <연탄재>를 만나 ‘책으로 사람 키우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아침 책 읽어주는 우리 동네 중학교
운정 해솔마을에 위치한 해솔중학교(교장 박상규)에는 책 읽어주는 학부모 독서동아리 ‘연탄재’가 있다.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한 구절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시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학부모 독서동아리 ‘연탄재’는 2013년 9월에 발족해 지금까지 만 5년이 넘게 활동해온 동아리로, 해솔중학교 전 학년을 대상으로 매주 금요일 아침 10분씩 책 읽어주기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초등학교에는 아침 책 읽어주기를 하는 봉사단이 많이 있지만 중학교에서 학부모 독서봉사단이 운영되는 경우는 드물다. 최경순 회원에 따르면 “어떤 책을 읽어줄지 장르를 특정하지는 않아요. 회원마다 자신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을 골라 중학생들에게 읽어줍니다. 어떤 회원은 그림책이나 소설을 읽기도 하고 시를 한편씩 낭독하기도 합니다.”
회원들 윤독하며 공감에서 공명으로 이어져
아침 책 읽어주기가 끝나면 연탄재 회원들은 도서관 옆 학부모 대기실에 모여 그날 읽어준 책에 대해 정보를 공유한다. 1주에 1명씩 순서를 정해 자신이 읽어준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작가의 특징이나 글의 배경, 본인의 해석과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날 읽어준 책에 대한 정보 공유가 끝나면 연탄재 회원들은 윤독 시간을 갖는다. 윤독은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책 한 권을 함께 읽는 것인데, 한명씩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서 책 속 이야기로 함께 빠져든다. 윤독을 할 때는 분량을 정하지 않고 회원 각자가 읽고 싶은 만큼 소리 내어 읽는다. 윤독에 참여하는 이희옥 회원은 “윤독의 가치는 직접 경험해 보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신영복씨의 <담론>을 읽었고, 올해는 까뮈의 <이방인>과 박웅현씨의 <여덟 단어>를 윤독하고 있어요. 혼자서 묵독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찾기도 하고 회원들마다 품고 있는 ‘사람의 온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윤독 활동은 연탄재 모임을 단단히 다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리 책을 읽고 와서 토론하거나 발제를 하는 것은 주부 입장에서 부담되는 측면이 있고 지속가능성이 낮다. 윤독은 그 시간 그 장소에 모여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기 때문에 부담이 적고 지속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희옥 회원은 “어떤 회원은 윤독할 때 눈을 감고 귀로 들으며 감상합니다. 눈으로 읽기보다 귀로 듣는 독서의 매력이 있습니다. 여러 회원들이 함께 책을 읽으며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 공감이 공명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책선배와 교장선생님도 책 읽어주기에 동참해
해솔중의 책 읽어주기 활동은 학부모만의 몫이 아니다. 처음에는 학부모 독서단으로 시작했지만 책 읽어주기의 주체가 점차 학생들과 선생님들로 확장됐다. 2015년부터 2~3학년 학생 중에서 책선배를 모집해 2~3학년 책선배가 1학년 후배들에게 아침 책 읽어주기 활동을 하고 있다. 또 2년 전부터는 해솔중 박상규 교장과 교사들이 아침 책 읽어주기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연탄재 회원들은 “아침 책 읽어주기가 마중물이 되어 학생들이 평생 독자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김소영(해솔마을)
아침 책 읽어주기 동아리를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새내기 엄마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사회생활을 하다 출산을 계기로 육아에만 전념하면서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진 주부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책 읽어주기를 통해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자신감을 얻어 가면 좋겠습니다. 학부모 독서봉사단은 나를 이끌어주는 좋은 계기가 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박유경(해솔마을)
연탄재 활동은 하면 할수록 활력소가 됩니다. 책 읽어주기와 윤독을 통해 멤버들에게 큰 힘을 받고 있어요. 저는 몇 해 전에 아이가 해솔중을 졸업했지만 연탄재 모임이 좋아 계속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그만큼 연탄재는 매력이 큰 모임입니다.
이희옥(해솔마을)
30명의 학생들이 똑같은 책을 읽으면서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각자 개성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아이들이지만 어떤 느낌을 공유한다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 아이가 졸업한 후에도 학부모회가 아니라 동아리에 소속돼 책 읽어주기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 좋고 넘치는 에너지를 받을 수 있어 좋아요. 이곳에서는 아이 교육이나 남편 얘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라 더욱 좋습니다.
최경순(해솔마을)
‘무슨 책을 읽어줄까’ 책 고민을 할 때가 참 좋고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연탄재 사람들이 참 좋아서 함께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어요. 다들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박상규 교장
저는 2017년에 학부모님들의 권유로 아침 책 읽어주기를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학생들을 자주 볼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책 읽어주기를 통해 학생들과 가까워졌습니다. 다음에는 무슨 책을 읽어줄까 고민도 해보고 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방학 때는 좋은 책 한 권을 정해서 전교생 독후감 과제를 내고 상을 주고 있습니다.
태정은 리포터 hoanhoa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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