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트일산복지타운’은 장애인 거주 시설이다. 해외입양기관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홀트’는 발달 장애로 미처 입양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지난 1961년 일산 탄현동에 홀트일산복지타운을 세웠다. 현재 이 곳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의 수는 약 200여명. 이들은 이 안에서 홀트학교를 다니며 청소년기를 보내고, 작업장에서 일을 하며 청장년기를 보낸다. 어떤 이는 이 곳에서 환갑을 맞았고, 또 어떤 이는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상당수가 중증 장애를 갖고 있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비장애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목욕, 청소, 미용, 이동의 자유 조차도 그들에게는 커다란 장벽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홀트에는 그들의 손과 발을 자처하는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원봉사자라는 이름의 또 다른 천사들. 이들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횟수로 벌써 30여 년 가까이 홀트를 찾아와 장애인들의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는 미용사들의 모임 ‘청솔회’도 있다.
“원하는 헤어스타일도 개성따라 제각각”
새해 첫 근무가 시작되는 지난 1월 2일. 이른 아침부터 홀트일산복지타운 내 ‘홀트기념관’이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댄다. 오늘은 매달 한 번 있는 ‘청솔회’ 미용봉사의 날. 청솔회 오는 날을 어찌 알았는지, 타운 내 장애가족들의 발걸음이 모두 건물로 향하고 있다. 삐끄덕 문이 열리고 저마다 자기가 마음에 드는 의자에 앉으면, 헤어디자이너들이 다가와 머리를 만지기 시작한다. “어떻게 손질해 드릴까요?” 어떤 이는 짧은 머리를, 어떤 이는 염색을, 또 어떤 이는 파마를 희망한다. 아무래도 남성보다 여성이 미용에 관심을 많이 두는 편이라 그런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다수가 여성들이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외모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아요. 각자 원하는 머리 모양이 다른데요. 가수 싸이 스타일부터 모히칸 스타일, 노랑색, 빨강색 염색까지 원하는 헤어스타일이 각양각색이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편한 기색도 드러내고 마음에 들면 활짝 웃으며 감사의 마음도 적극 표현합니다.” 봉사를 시작한 지 횟수로 10년째인 헤어디자이너 이승비씨(덕양구 화정동 미용실 운영)가 미소 지으면 얘기한다.
사랑의 가위손 연간 240여명 활동
‘청솔회’는 지난 1989년 자원봉사에 뜻을 함께한 미용실 원장들과 헤어아카데미 원장들이 모여 만든 미용봉사모임이다. 처음에는 적은 수로 시작했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연인원 240여명이 정기적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펼칠 만큼 단체의 규모가 커졌다. 홀트일산복지타운에 자원봉사 단체로 등록, 본격적으로 장애인을 위해 미용봉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 1991년 겨울부터다. ‘청솔회’ 회원들은 홀트 뿐만 아니라 경기도와 서울에 소재한 장애인시설, 노인복지센터 등 미용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봉사로 새해 시작 의미 남달라”
청솔회 회장인 박형자씨는 “오늘 이 자리에 온 미용인들은 새해 첫 업무를 홀트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가게 문을 닫고 이 곳에서 봉사를 하며 2019년의 문을 열게 된 것이지요. 그것은 우리의 새해 다짐이자 삶의 방향을 다잡는 의미 있는 행동이라 생각해요”라며 “저희는 홀트 가는 날을 ‘나들이 가는 날’이라고 표현한답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힐링을 받고 떠납니다. 저희들의 봉사로 행복해 하는 장애인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정화되죠”라고 말한다.
봉사가 주는 기쁨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어서일까? 이날 봉사에 참여한 헤어 디자이너들 중에는 자녀 또는 조카들을 데리고 온 사람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조항녀씨(일산 서구 미용실 운영)는 “홀트에서 목욕봉사를 오래 하고 계시던 단골 손님이 계셨는데 몇 해 전에 제게 ‘장애인들 머리를 예쁘게 잘라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때부터 자원봉사를 하게 됐는데 봉사를 통해 얻게 되는 보람은 말로 다 표현 못해요. 오늘 조카를 데려왔는데 사회 속에 우리 손길이 필요한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장애인들이 얼마나 감정을 순수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인지 등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말한다.
젊은 헤어디자이너들 참여 활발 ‘훈훈’
청솔회의 특징 중 하나는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의 나이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봉사해온 40~50대 회원뿐만 아니라 20~30대 젊은 회원들도 제법 된다. 이날 오후 3시까지 이어진 미용봉사. 5시간째 이어지는 봉사에 몸이 제법 지칠 법도 한데 중증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있는 방 안에는 젊은 헤어디자이너들이 가득, 장애인들의 머리손질로 눈코 뜰 새 없다. “처음에는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잔뜩 긴장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분들을 보면서 오히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하고 삶의 소중함을 배워 갈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라며 홍경이씨가 말한다.
자원봉사 신청의 문 ‘활짝’
홀트일산복지타운은 여느 장애인시설과 달리 1년 365일 자원봉사자들은 물론 지역민들에게 시설을 개방하고 있다.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비장애인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장애와 비장애인의 거리도 한 뼘씩 좁혀져 가고 있다. 현재 홀트일산복지타운에는 매월 40여 개의 단체와 개인 400여명이 자원봉사활동(미용, 의료, 전기, 교육, 나들이, 간병, 목욕 등)을 펼치고 있다. 일일 단체 봉사와 청소년 봉사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자원봉사 문의 031-914-6631
김유경리포터moraga20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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