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독서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늘 같은 책과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갇힐 우려가 있다. 함께 책을 읽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는 독서토론의 장은 나 자신을 넘어서 나와 남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하는 어울림의 가치를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독서와 토론이라는 두 개의 바퀴로 부지런히 구르며 성장해 가는 한빛도서관 독서토론동아리 ‘구르는 바퀴’를 만나 그들의 멈추지 않고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마을사람들의 소통의 공간, 도서관에서 만나다
운정신도시 한빛마을에 위치한 한빛도서관에는 독서토론동아리 ‘구르는 바퀴’가 있다. 한빛도서관 개관 초기에 진행했던 인문학 강좌 수강생들이 후속 모임으로 만든 독서모임이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운정신도시에서 마을 사람들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마을도서관이고 도서관 강좌를 통해 모인 마을 사람들이 지속적인 소통의 공간으로 독서토론동아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동아리명을 구르는 바퀴라 지은 뜻은 ‘바퀴의 본질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으니 우리 모임도 정체되지 말고 독서와 토론의 두 바퀴를 굴려 전진하자’는 의미라고 한다.
3년간 인문사회분야 서적 탐독해
흔히 주부들의 독서모임은 육아나 교육, 소설 분야에 치우치는 경우가 있지만 구르는 바퀴는 지난 3년간 인문사회분야 서적들을 읽으며 독서토론을 진행해 왔다. 동아리 회장 오현령씨는 “처음에는 저희 역량이 부족해 인문학 강좌 강사님께 커리큘럼을 추천받아 3년 동안 모임을 진행했어요. 어려운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읽어내면서 어느 정도 기본기가 다져졌다고 판단돼 지난해부터는 저희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구르는 바퀴는 1년에 한번 총회와 책 선정위원회를 열어 향후 1년간 읽을 도서를 고른다. 회원 각자의 관심 분야를 추천하고 각 분야별로 4~5권의 도서를 선정한 뒤 투표를 통해 분야별 2권씩 최종 결정한다. 올해는 고전과 철학, 페미니즘, 역사 분야의 책을 선정했다고 한다. 1년치 읽을 책들을 미리 정해 놓으면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완독(完讀)에 도움이 되고 한 해 동안 공부할 방향이 정해져 체계적인 접근이 가능하다고 한다.
주부들의 독서모임은 많지만 이들 모임이 빠지기 쉬운 오류는 친분이 쌓이게 되면서 독서라는 주제가 옅어지고 사교 모임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이다. 구르는 바퀴는 매번 모임에서 토론 진행자를 정하고 주제에서 벗어나 토론의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진행자가 중립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책 토론과 영화 감상 병행해
구르는 바퀴는 독서토론 동아리이지만 한달에 한번 영화를 감상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영화를 선정할 때는 독립 영화나 장르 영화, 평소 쉽게 접하기 힘든 나라나 감독의 영화를 주로 고른다. 그 달에 토론한 책과 관련된 영화가 있으면 회원들이 다 같이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나눈다. 다양성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헤이리 시네마에 회원들끼리 단체 관람을 가기도 한다.
토론의 지향점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독서 토론을 하다 보면 회원들끼리 첨예한 의견 대립이 생길 때도 있다. 지난 1월에는 기본 소득에 대한 책을 읽고 그 필요성에 대해 찬반 의견이 나뉘었다고 한다. 회원들은 치열하면서도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나누되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고 배우는 연습이 됐다고 말한다. 이미순 회원은 “예전에는 나와 같은 생각에만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나와 다른 생각에도 공감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라고 말했다.
독서의 힘은 결국 내 주변에서 시작해 사회 참여로 이어진다고 회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구르는 바퀴는 지난 4월 ‘세월호를 기억하는 운정주민모임’에서 주최한 4주기 추모제 행사 때 동참했다. 노선경 회원은 “신문과 뉴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곧이곧대로 믿었다면 이제는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하는지 의심하며 행간의 의미를 찾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구르는 바퀴는 1년에 2번 외부 회원을 모집한다. 주부의 입장을 고려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전에 모집하고 방학 동안은 활동을 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모임에 참가를 희망하는 신청자들에게는 사전 참관을 통해 신중히 결정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동아리 회원 모집에 지역 제한은 없다고 한다.
미니인터뷰
회장 오현령(한빛마을)씨
이 모임을 통해 주류의 가치관을 항상 의심해보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작년에 페미니즘 도서를 읽으면서 기존 인식을 전복시키는 데서 오는 충격과 기쁨을 느꼈고 내 머릿속 세계가 흔들어지는 계기가 됐어요. 멤버들도 40~50대로 비슷해지면서 공감대 형성이 잘 되고 제 생활에 1순위가 됐어요.
회원 박미진(정발산동)씨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밖을 보면서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게 됐어요. 십인십색이듯 가족 구성원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된다고 할까요. 제가 흔들릴 때 이 모임이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이 됐어요. 자녀 교육에서 넓은 시야를 갖고 다양한 방향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회원 최인경(한빛마을)씨
혼자 책을 읽으면 좋아하는 책들만 선택하게 되잖아요. 여기서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또 한 달에 한 번씩 책을 읽으면서 게을러지지 않고 1년 동안 적지 않은 책을 읽을 수 있어요. 똑같은 책을 읽어도 7~8명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그걸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회원 이미순(한빛마을)씨
독서모임을 하면서 아는 책이 많아지고 아는 문구가 많아지고 책과 책들이 연결되는 느낌을 받게 돼요. 아이들도 ‘내적 동기를 가져야만 스스로 공부를 하지’라고 생각하고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게 되고요. 다독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 어떤 책을 어떻게 만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회원 박진희(해솔마을)씨
저는 학창 시절에 읽었던 책을 동아리에서 다시 읽었는데, 그때는 단순한 우화로만 여겨졌던 내용이 역사적 배경과 함께 좀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가 됐요. 원래 실용적인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여기서 새로운 분야의 책을 보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태정은 리포터 hoanhoa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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