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사람들 / 운정 한울마을 4단지 실버미술동아리 <꿈의 그림>
지나온 삶을 그리고 못 이룬 꿈도 그려요~
마을공동체는 비단 아이들이나 젊은 엄마들만의 공간은 아니다. 자식들을 독립시킨 뒤 하루가 길게만 느껴지는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할 터. 지역 문화센터나 노인복지회관도 있다지만 고령의 어르신들이 다니기에는 현실적 장벽이 크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아이들에게만 치우쳐 있는 사회적 관심을 주위의 어르신들에게로 나누는 마을공동체 동아리가 있다. 운정 한울마을 4단지 실버미술동아리 ‘꿈의 그림’을 찾아가 ‘미술로 소통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어르신 건강에 도움 되는 공예 활동
운정 한울마을 4단지에는 단지 내 거주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실버미술동아리 ‘꿈의 그림’이 있다. 4년 전 파주시 평생학습 마을 만들기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단지 내 어르신을 대상으로 미술수업을 꾸렸던 것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외부 강사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미술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었지만 지난해부터는 수업에 참여했던 어르신들이 중심이 돼 회원들끼리 결속력을 다지는 동아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모인 동아리인 만큼 ‘꿈의 그림’을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주민들의 모임이 있다. 마을주민이자 미술심리치료사 5명으로 구성된 ‘마음 그림’이라는 모임이 그것이다. ‘마음 그림’은 미술심리치료와 통합예술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강사들의 모임이다. 한울 4단지 동대표이자 미술심리치료사인 김미정씨는 “마을공동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어르신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다 공예 활동에 주목하게 됐어요. 공예를 통한 소근육 활동이 어르신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고 또 완성된 작품을 집에 가져가실 수 있으니 어르신들이 좋아하십니다”라고 말했다.
파주시 미술공모전 대상 수상해
한울마을 실버미술동아리는 지난 2016년 파주시에서 개최하는 정신건강문화제 미술공모전에 참가해 대상과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행복팀’이라는 이름으로 어르신들이 공동 작업한 작품을 출품했는데 이 작품이 대상을 타면서 어르신들의 자존감이 매우 높아졌다고 한다. 한울마을 4단지에서는 1년에 2번씩 마을 축제를 여는데, 이곳에서 어르신들은 평소 작업한 작품들을 모아 정기 전시회를 개최한다. 어르신들은 작품을 구경하러 온 마을주민들에게 작품에 담긴 의미와 작품 제작 과정을 직접 설명해주기도 한다. ‘꿈의 그림’의 활동은 단지 내 작은도서관인 ‘무지개도서관’과 연계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동화책을 함께 읽고 빅북(Big Book) 형태로 만드는 활동을 했다. 어르신과 아이들이 모두 좋아하는 전래동화 <아씨방 일곱 동무>와 <빨간 부채 파란 부채> <깜빡깜빡 도깨비>를 골라 빅북으로 제작한 뒤 무지개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독후활동으로 이어갔다.
동아리 활동으로 건강 체크하기도
책과 함께 하는 미술활동은 어르신들의 건강을 체크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깜빡깜빡 도깨비>는 무엇이든 잘 잊어버리는 도깨비 이야기로, 아이들에게는 재미를 안겨주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자신의 인지능력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된다. 김미정씨는 “어르신들은 치매를 두려워하시지만 평소 치매 이야기를 하거나 치매 테스트 받기를 꺼려하세요. 이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치매에 대해 이야기하고 치매 예방 활동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고령의 회원들이 많다 보니 간혹 미술활동 중에 전보다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에는 가족들에게 알려 조기 진단을 통해 치료를 권하기도 한다. 김미정씨는 미술활동을 하면서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는 어르신들도 있다고 한다. “평생 미술이라곤 배워본 적이 없으실 텐데, 다른 분들에 비해 월등히 잘 하시는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또 시작(詩作) 활동을 할 때 남들보다 시를 잘 짓는 분도 계시고요. 자기 재능을 발견하실 때는 매우 기뻐하시고 자신감을 가지십니다.”
세대 간 공감과 소통으로 이어지길
매주 목요일 오후마다 모이는 실버미술동아리는 각자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되기도 한다. 손으로는 부지런히 공예 작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삶의 넋두리가 나오기도 하고 독후활동을 통해 지난 삶을 반추하기도 한다. “한번은 동화책을 읽고 생의 무지개 그래프를 그린 적이 있어요. 자기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표현하는데, 어르신들은 평소 혼자서 감춰두었던 아픔들을 나누면서 치유의 시간을 갖기도 했어요.”
‘꿈의 그림’ 동아리의 작품에는 단순한 공예 작품을 넘어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실버미술동아리에서는 하반기 프로젝트로 어르신들의 작품과 이야기를 동화책으로 엮어낼 계획이라고 한다. 김미정씨는 “작품 속에는 제각각 삶의 의미가 담겨있기 마련입니다. 어르신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녀와 손자 손녀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책으로 발간할 예정입니다”라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동아리 회장 신웅철씨
집에서 무력하게 있는 것보다 이곳에 나와서 미술을 하니까 만족감이 들고 소외감이 줄어들어요. 어렸을 때는 미술활동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 여기 와서 17~18개 작품을 만들었어요. 조각품도 만들고 직접 아이디어를 내서 그림으로 형상화하기도 하고 탁본을 채색하기도 하죠. 작품을 만들면서 집중하게 되니 어느새 시간이 빨리 흘러서 좋아요.
동아리 부회장 양순녀씨
한 단지에 있어도 서로 모르는데 여기서 소통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한가한 시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한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참 좋아요. 전에는 미술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특히 미술을 잘 못하는 편인데, 여기 와서 해보니까 참 재밌어요. 집에서 하루 종일 TV 보는 것보다 훨씬 좋죠. 이 모임이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쭉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회원 조혜자씨
재작년에 한지 붙이기를 해서 대상을 받았고 상금 20만원을 받아서 정말 기뻤어요. 여기 회원들이 재능이 있어서 다들 잘 하는 편이예요. 선생님들 말씀을 귀담아 듣고 잘 따라하면 좋은 작품이 나오더라고요. 사실 저는 성격상 먼저 다가가는 편이 아닌데, 여기서 사람들을 만나서 친하게 지내니까 그게 좋아요. 또 나눠 먹을 게 있으면 나누고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됐어요.
태정은 리포터 hoanhoa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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