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내 책일 때는 사유재지만 남과 함께 하면 공공재가 된다. 맛있는 음식은 내가 먹어버리면 사라지지만 내가 읽은 책은 사라지지 않고 남과 공유할 수 있다. 어쩌면 책 읽는 행위는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목적일 수가 없을지 모르겠다. 여기 책 읽어주기를 통해 내 아이에게만 향하던 사랑의 시선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햇살처럼 퍼지는 학부모 동아리가 있다. 파주 지산초등학교(교장 유영기) 학부모 독서도움회 ‘책 읽어주는 어머니’를 만나 그들의 ‘책으로 크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책과 함께 자라는 부모들
지산초 독서도움회는 2013년에 만들어진 이래 지금까지 5년에 걸쳐 꾸준히 활동하는 학부모 동아리다. 학교 도서관을 중심으로 모여 읽어줄 책을 선정하고 학부모 회원들이 매주 목요일 교실로 찾아가 지산초 학생들에게 15분씩 그림책을 읽어준다.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학부모들이 독서도움회를 거쳐가면서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기의 재미와 감동을 전하고 있다. 2013년 처음으로 책 읽어주기 봉사를 시작할 때에는 학부모 회원수가 적어 1~2학년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었다. 당시 책 읽어주기의 효과에 공감한 3학년 담임교사들의 요청으로 몇몇 회원들은 1주일에 2번씩 학교로 찾아가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이후 지산초 독서도움회는 매년 신입회원이 들어오면서 함께 커 나갔다. 그 결과 현재 지산초 독서도움회는 1기부터 5기까지 기수별로 많은 학부모 회원들로 구성돼 있고 회원수도 30여 명에 이른다. 회원 수가 늘어난 만큼 책 읽어주는 대상 학년을 확대해 2017년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책 읽어주기를 실시했다.
한달에 1번씩 그림책 세미나 열어
지산초 독서도움회가 생길 당시 여러 학부모 동아리가 있었지만 독서도움회가 가장 오래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책 읽어주기 외에도 한달에 한번씩 열렸던 그림책 세미나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지산초 도서관 사서 이민아씨는 매달 그림책 작가를 선정해 그의 작품들을 회원들과 함께 읽고 감상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그는 “어머니들이 그림책의 매력을 느끼면서 책 읽어주기가 더욱 재미있고 의미있는 활동이 되었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위즈너, 토미 웅게러, 앤서니 브라운, 권윤덕, 백희나 등 국내외 유명한 그림책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감상하면서 회원들은 점차 그림책을 보는 안목을 갖게 됐다.
연말에 책과 마당극, 책과 음악회, 책과 연극회 공연해
4월부터 시작해 11월에 마무리되는 책 읽어주기 활동은 전교생 대상 연말 공연으로 이어진다. 이는 또다른 형태의 독서로 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공연인 셈이다. 독서도움회는 매년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기획했는데 2013년 빅북(Big Book) 읽어주기, 2014년 책과 마당극을 접목한 그림자극 <떼루떼루>, 2016년 책과 음악의 만남 <성냥팔이 소녀 독서음악회> 그리고 2017년 책과 연극을 접목한 <단추수프 독서연극회>가 있다. 2016년 독서음악회에서는 회원들이 우쿨렐레, 해금, 플루트, 하모니카 등의 악기를 배워 음악회를 공연했고, 2017년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함께 참여해 <단추수프>라는 그림책을 극본으로 각색하고 음향 무대 소품 의상 분장 등의 역할을 맡아 독서연극을 공연했다. 학생팀과 학부모팀으로 나눠 공연한 이번 독서연극회는 지산초 학생들과 교사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었다고 한다. 이민아 사서는 “어머니와 아이들이 숨겨진 끼와 재능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공연에 적극 참여해주셔서 아이들에게 책에 대한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내 아이에게 향하던 시선이 우리 아이들에게로 넓어져
지산초 독서도움회 회원들은 여러 해 책 읽어주기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회원 모두가 공감하는 지산초 독서도움회의 철학은 ‘내 아이를 위해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위해서 책을 읽어주자’이다. 1기 조희은 회원은 “처음에는 내 아이가 있는 반만 보이다가 점차 옆반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고 다음에는 다른 학년 아이들이 눈에 들어와요. 동네에서 길을 가다 ‘책 읽어주는 어머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면 내심 뿌듯하면서 ‘지금 내가 잘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사서 이민아씨
저는 도서관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가급적 지속가능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주는 활동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어요. 지산초 독서도움회는 주변에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다수의 아이들을 포함해 지산초 학생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전하고자 ‘책 읽어주는 어머니’ 활동을 시작했어요. 어른을 모방하며 자라는 아이들은 도서관에 와서 친구들끼리 서로 책 읽어주는 놀이를 하곤 해요. 평소에 책을 읽지 않던 아이들도 매주 한편씩 이야기를 들으며 ‘내 인생의 그림책’을 한권쯤은 추억하게 되겠지요.
1기 회원 정지연씨
아이의 학교생활이 시작되면서 엄마로서 같이 할 무언가를 찾다가 독서도움회를 알게 됐어요. ‘어머니들의 탁월한 선택’이라는 담당교사의 말씀을 듣고 시작했는데 올해로 벌써 5년차가 되었네요. 그간 독서캠프, 그림책 세미나, 책과 관련된 공연들을 하면서 혼자서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크나큰 감동을 느꼈어요. 또 여러 회원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나 자신을 찾고 동심을 오래토록 간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2기 회원 윤혜천씨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면역력이 떨어져 아픈 첫째 아이로 인해 독서도움회와의 인연이 시작됐어요. 아픈 아이를 좀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에 책 읽기 봉사를 시작했어요. 벌써 4년째 독서도움회에 참여하고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책 읽어주는 마지막 날에 6학년 학생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박수를 쳐주었을 때입니다. 그간 힘들었던 기억이 뿌듯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어요.
3기 회원 황유정씨
책 읽어주러 가기 전날 밤의 설레임과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서 망설여졌지만, 첫날 활동이 끝난 후 부담감은 설렘으로 바뀌었어요.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과 재치발랄하고 조금은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제가 아이들에게 주는 즐거움보다 더 큰 에너지를 받고 돌아옵니다.
4기 회원 정명희씨
“엄마, 내일 읽어줄 책 골라요. 내일은 이 책으로 당첨!” 제가 책 읽어주는 어머니가 된 후 아이들은 저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됐어요. 예전에는 제 입에서 먼저 ‘책 읽어라’고 했다면 이제는 아이들 입에서 먼저 책 읽자는 말이 나와요. 독서는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엄마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놀이가 된 거죠.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독서도움회 활동은 내년에도 첫번째 찜입니다.
5기 회원 황규리씨
아침마다 세 아이를 챙겨 책 읽어주러 가는 길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선생님과 학생들이 저희를 반갑게 맞아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아마도 신출내기 엄마가 아이들과 더불어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독서도움회 어머니들과 사서선생님도 그런 저를 따뜻하게 챙겨주셨고요. 되돌아보니 독서도움회 덕분에 큰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적응, 그리고 저 또한 엄마로서 초등 학부모 역할을 무난히 해낸 것 같아요.
태정은 리포터 hoanhoa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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