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년 전 변경수 목사(50세)는 목회자에서 평범한 아빠로, 그것도 딸, 아들에게 일주일에 2~3번 손 편지를 쓰는 아빠로 변신했다. 그리고 지금은 지역의 아동, 청소년들과 함께 ‘편지공책’ 운동을 펼치고 있다. “가정과 사회가 청소년들의 안전한 울타리가 돼줘야 한다”고 강조하는 변경수 목사를 만나보았다.
딸, 아들에게 쓰는 ‘편지 이야기’
변 목사는 17년간 있는 힘을 다해 목회만 하던 당시의 자신을 두고 “마치 화상 입은 환자 같았다”고 회상한다. 많이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 주변을 돌아보니 목회 사역이 우선순위였던 까닭에 가족은 늘 뒷전이었다. 이미 자녀들은 중2(아들)와 고2(딸) 사춘기를 맞았는데 아빠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이렇게 살다간 아이들에게 불편하고 서먹한 아빠가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손 편지’ 쓰기였다.
“말은 한계가 많더라고요. 말은 잔소리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글은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어서 좋은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편지쓰기를 시작하고 6개월이 지난 즈음 고3이 된 딸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아빠의 생활을 알 수 있어서 좋았어”라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아예 ‘편지공책’을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10여권으로 쌓여 ‘아빠와 딸의 이야기’,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로 가족의 역사가 됐다.
변 목사는 자녀뿐 아니라 청소년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2002년부터 동녘지역아동센터(이하 동녘센터)에서 공부방 운동을 해온 그는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 최성복(센터장)씨와 함께 지역 아동, 청소년들을 위한 일에 몰두했다. ‘동녘센터’는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만화책 4,000여 권을 갖춘 만화방이자,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할 수 있는 PC방, 그리고 노래방 기계와 다양한 종류의 기타를 갖춘 밴드 연습실이다. 또한 객석이 있는 공연장인 두레플러스 아트 홀까지 갖춘 청소년들과 소통하는 문화공간이다. 2년에 한번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자전거 국토순례 모임이 있는데, 지난해에는 제주도 해안도로 220km를 완주하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 ‘편지 공책’ 운동 확산되길
변 목사는 자녀의 응답편지에 힘입어 동녘센터 청소년들에게도 아빠 같은 마음으로 손 편지 쓰기를 시도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황에 맞게 손 편지를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관계가 중요했기에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러다 2년 전 10여년 가까이 돌보던 한 학생이 사고를 치고 갑자기 센터를 나가는 사건을 겼었다. 변 목사는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편지공책 나눔이었다. 그 때부터 시작한 편지공책 나눔은 이제는 동녘센터의 청소년들에게 삶의 일상을 나누는 정기모임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망원경>, <목사님>, <추억노트>, <나의 진실 된 이야기>, <거꾸로 흐르는 시계>, <해결책> 등은 청소년들이 직접 붙인 편지공책 제목들이다. 편지공책은 정갈하게 쓰인 변 목사의 글 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마구 휘갈겨 쓴 답장도 있다. 대부분이 남학생들이라 처음엔 어떻게 편지를 써야할지 막막하고 쑥스러워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열고 부모님과의 일상, 친구들과의 갈등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편지를 쓸 줄 알게 됐다고 한다.
편지공책에는 신영복 선생님의 시나 좋은 문장, 그리고 그림도 있다. 청소년들이 쓴 글의 중요한 단어나 문장에는 변 목사가 일일이 밑줄을 긋고 피드백을 한다. 현재까지 변 목사가 자녀들을 비롯해 동녘센터 청소년들과 함께 나눈 편지공책은 모두 22권이다.
변 목사는 “사진이 시간을 찍는 것이라면, 편지공책은 시간을 퇴적시키는 역사 같은 것”이라며 “가족의 사적 이야기로 출발한 편지 이야기가 편지공책 운동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변 목사는 ‘나무꽃 공예’ 활동을 통해 나무꽃 연필과 볼펜, 연필꽂이, 꽃반지와 귀걸이 등 다양한 액세서리를 만든다. 또한 서울시 주관 ‘밤도깨비 야시장’에서 나무십자가 작품들을 4년째 전시, 판매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저녁은 센터 청소년들의 엄마들과 나무꽃 공예 체험 수업을 하고, 편지공책 쓰기 강좌도 한다. 최근에는 안산지역 목공방에서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과 함께 나무꽃 공예 체험을 했다.
현재 변 목사는 파주에서 다시 목회 활동을 하며, 사단법인 ‘해 뜨는 자리’ 이사장으로 활동을 넓히고 있다.
위치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앙로 1123 흰돌마을 상가동 203, 204호
문의 031-907-2760
강영미 리포터 youngmi.kang@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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