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는 색만 골라 모아서는 한꺼번에 흩뿌려 놓았나 보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생기를 뿜어내니 눈길 닿는 곳 발길 딛는 곳 어디에나 봄기운 가득하다.
굳이 먼 곳을 바라볼 필요 없다. 동네 뒷산에도 조금 벗어난 옆 마을에도 봄은 활짝 피어있다. 생활에서 접하는 익숙한 곳이기에 더 편안하고 반갑다.
한마음고등학교 구자명 교장은 이 기운을 잊지 않았다.
“명산이나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을 많이 다녔습니다. 킬리만자로나 히말라야 트래킹도 다녀왔어요. 그럴수록 우리 고장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학 시절과 군생활을 제외하고는 천안에서 지낸 오롯한 천안 출신으로, 소중한 고장을 가까이 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둘레길 걷기를 시작했지요.”
구자명 교장은 천안 곳곳을 걸으며 고장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끼고 천안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천안 사랑 뽈레 뽈레 도솔 둘레길 걷기’를 통해서다.
오룡쟁주 기반으로 조성한 둘레길 12구간
‘천안 사랑 뽈레 뽈레 도솔 둘레길 걷기(이하 도솔 둘레길 걷기)’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걷기 열풍이 이어지며 각 지자체도 북한산 둘레길, 대전 둘레길 등 걷기 길 조성에 열심인 때였다. 그런데 천안은 예외였다. 충남에서 가장 큰 도시인데다 자연적인 요건은 충분한데 그저 조용했다. 그래서 구자명 교장은 천안 곳곳을 찾았다. 경관이 수려하고 자연적인 요건을 갖춘 동시에 천안의 이야기까지 녹일 수 있는 길이 많았다.
그렇게 한 곳 한 곳 밟으며 조성한 길이 모두 12구간. 오룡쟁주를 이루는 5개 산을 기반으로, 성거상 왕자산 망향봉 노태산 수도산, 그리고 광덕산 태학산 성산 은석산 흑성산을 중심으로 구간을 나누어 구성했다. “오룡쟁주는 용 다섯 마리가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는 의미로, 옛 이야기에서는 오룡쟁주를 일컬어 천안을 상징할 수 있는 말로 전하고 있습니다. 용 다섯 마리가 사는 다섯 산이 일봉산 월봉산 태조산 구성산(장태산), 그리고 단국대 뒷산 국사봉 있는 곳이고, 여의주가 있는 곳을 남산으로 들지요. 이것만으로도 천안의 재밌는 이야기가 생겨나는 거예요.”
구자명 교장은 이후 틈나는 대로 길을 걸었다. 그리고 곧 내용을 알게 된 지인들이 한 명 두 명 동참하며 모임으로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곳곳에 숨어 있는 천안의 이야기보따리 한아름
모임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진행한다. 오전 8~9시 모여 함께 걷기 시작하는데, 20~30명 정도 참여한다. 4월에는 8일 유량고개 구간을 함께 걸었다. 5월에는 13일 광덕산 구간을 갈 예정이다.
누구나 편안히 걸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코스는 무난하게,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도록 했다. 걷기 모임 명칭에 포함된 ‘뽈레 뽈레’는 마사이족 언어로 ‘천천히’란 의미를 담아 모임의 성격을 잘 설명해준다.
느려진 걸음 사이에는 천안의 지명이나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이야기, 자연에 대한 해설을 채웠다. 문화해설사 숲해설사 자격을 갖춘 구 교장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함께 걷는 이들의 관심을 불러 모은다.
5월에 예정하고 있는 광덕산에도 기가 막힌 사랑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광덕사 인근에는 부용묘가 있는데, 누구의 무덤인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평안감사 김이양과 부용의 사랑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절절해 이 둘의 이야기를 하면 지나던 사람들도 멈춰서 듣고는 끝날 즈음 박수를 칠 정도예요.”
이외에도 곳곳에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박문수 묘소가 왜 은석산에 자리하게 됐는지, 그리고 병천의 인물들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배경 등을 이야기하면 다들 관심을 갖고 재밌어 한다.
천안시민들부터 자주 찾아 고장에 대한 애정 갖게 되길
이를 통해 구자명 교장이 하려는 것은 천안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지역의 장소를 조성하는 것. 지역 가까운 곳을 걸으며 그곳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가족, 아이들과 나누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를 통해 천안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키우도록 하고 싶다.
물론, 천안시민 누구나 편안히 찾는 도솔 둘레길이 되려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대중교통 연계다.
유량고개에서 태조산을 오르는 구간은 구 교장이 가장 추천하는 구간. 대부분 태조산을 각원사에서 오르기 시작하는데, 이 구간은 경사가 가파르고 길어서 태조산을 힘들다고 생각하게 하지만, 유량고개에서 오르는 곳은 능선길이라 경사가 완만하고 누구나 쉽게 편안히 걸을 수 있다. 문제는 대중교통이 조성되어 있지 않아 불편하다는 것.
가까이 대전의 경우 대전둘레길 구간끼리도 대중교통이 연계되도록 대전시에서 버스노선을 지원해 걷기 환경이 좋다. 천안시가 둘레길 구간을 조성해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대중교통이 원활히 연결될 수 있게 한다면 시민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천안에 대한 애정을 높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 구자명 교장의 의견. 구 교장은 “누구에게 자랑하고 찾아오라고 하기 이전에 천안에 사는 사람들부터 자주 찾고 다닐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며 “자연과 더불어 천안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길을 오가며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봄이 펼쳐진 도솔 둘레길 걷기에 나선다.
구자명 교장이 조성한 도솔 둘레길 경로
1구간(박물관 길) : 천안박물관 - 청수고 - 삼거리 변전소 - 굴울마을 - 구성산(장태산) - 유량고개
2구간(왕건의 길) : 유량고개 - 태조산 - 유왕골 약수터 삼거리 - 각원사 - 24번 종점
3구간(깨달음의 길) : 청송사 - 태조산 구름다리 - 태조산 삼거리 - 유왕골 약수터 - 왕자산 - 상명대
4구간(“나비날다” 길) : 상명대 - 성거산 - 성거갈림길 - 운암저수지 - 망향봉 - 망향의 동산(석교리)
5구간(근대화의 길) : 망향의 동산(석교리) - 망향휴게소 - 요방1리 - 국사봉 - 천안 IC 전망대 - 두정동공단 - 두정역 - 두정동 선사유적지 - 노태산 - 백석동 현대A
6구간(선사시대의 길) : 백석동 현대아파트 - 봉서산 - 불당동 선사유적지 - 쌍용도서관 - 월봉산 - 쌍용고 - 삼일원앙A - 용곡중학교
7구간(오룡쟁주의 길) : 용곡중학교 - 일봉산 - 천안 상수도 관리소 - 남산 - 수도산 청수신시가지 - 천안박물관
8구간 : 태학산(풍세면, 태학산 자연휴양림 - 태학산 - 태학사 - 주차장)
9구간 : 광덕산(광덕면, 주차장 - 부용묘 - 장군바위 - 광덕산 - 광덕사 - 광덕사 주차장)
10구간 : 사산(성환읍, 직산읍, 남서울대 - 성산 - 직산 시름새)
11구간 : 은석산(북면, 병천면, 주차장 - 정자 - 은석산 - 박문수어사묘 - 은석사 - 주차장)
12구간 : 흑성산(목천면, 유량고개 - 패러글라이딩 장소 - 흑성산 - 일출장소 - 독립기념관)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