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사람들_문발리 헌책방 골목 <블루박스> 대표 김형윤씨]

“오래된 것은 보석이 됩니다”

지역내일 2017-03-31

문발리 헌책방 골목 <블루박스>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이런 책이 있구나!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자랍니다. 헌책은 일찍이 나왔으나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책. 헌책방은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책들이 모여서 당신을 기다리는 곳. 나라 안에서 가장 널널한 헌책방. 책도 사람도 편해지는 공간. 문발리 헌책방 골목입니다.”
자칫 라면 받침대나 불쏘시개로 쓰일 수도 있었던 헌책들이 귀한 대접을 받는 곳, <블루박스>의 김형윤 대표를 만나 ‘오래된 것이 보석이 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헌책들이 귀한 대접 받는 공간
문발리 헌책방 골목 ‘블루박스’는 파주출판단지 내에 위치한 북 카페 겸 소극장이다. 정확히 말하면 헌책방 북 카페로 세월의 흔적이 담긴 헌책들을 읽거나 사갈 수 있는 곳이다. 보통 헌책방이라고 하면 발 디딜 틈 없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쌓여 있는 헌책 무더기를 떠올리지만, 이곳 ‘블루박스’의 헌책들은 고풍스런 통나무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팔자 좋은’ 헌책들이다.
“새 책이 헌책이 되는 것은 누군가가 그 책을 소유하는 순간부터입니다. 새 책이든 헌책이든 책은 누워 있지 말고 수직으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게 평소 제 지론입니다. 선반에 책이 너무 많아도 또는 너무 적어도 똑바로 꽂아두기 어렵지만, 가급적 그렇게 하는 것이 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 재현해
‘블루박스’뿐 아니라 기업용 책자들을 편집・제작하는 ‘김형윤 편집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 대표는 십 수 년 전 출판단지에 북 카페 붐이 일던 시절에 헌책방 북 카페를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파주출판단지에는 대부분 출판사와 인쇄소뿐이라서 시민들이 구경할 거리가 많지 않았어요. 그때 각 출판사별로 북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저희 회사는 편집회사로서 남의 책을 제작하다 보니 딱히 내놓을 책들이 없었죠.” 고민 끝에 김 대표는 평소 헌책에 대한 사랑을 담아 헌책방 북 카페를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제가 부산 출신인데 부산 보수동에 헌책방 골목이 있었어요. 어릴 적엔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 찾아가 교과서나 참고서를 사곤 했습니다. 요즘은 새 책이 흔하다 보니 헌책을 사는 경우가 드물지만 파주출판단지에도 보수동 헌책방 골목 같은 헌책방 거리를 조성하고 싶었습니다.”
문발리 헌책방 골목 ‘블루박스’는 이름 그대로 북 카페 내에 헌책방 골목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애초에 헌책방 거리를 조성하고 싶었다는 김 대표는 ‘블루박스’ 내에서라도 헌책방 골목의 추억을 느낄 수 있도록 오래된 한옥에서 쓰던 폐자재를 구해 책장과 선반 등을 제작했다. 또 50~60년대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슬레이트 지붕을 세우고 판잣집 골목에 나무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오래된 레코드판도 전시・판매해
‘블루박스’에 있는 헌책들은 김 대표의 지인들과 많은 사람들이 기증해준 도서들이다. 헌책방 북 카페를 준비한다는 김 대표를 위해 오래된 책부터 최근 책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책들이 기증됐다. “감사하게도 지인들이 아끼는 책들을 많이 기증해주셨어요. ‘블루박스’ 1층에는 정치, 경제・경영, 소설, 어린이, 외국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있고, 2층, 3층에는 더 가치 있는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료사적으로도 가치 있는 책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지요.”
북 카페 겸 소극장인 ‘블루박스’에는 헌책뿐 아니라 오래된 레코드판도 전시・판매되고 있다. “지인 중에 한 분이 레코드판을 많이 보유하고 계셔서 ‘블루박스’ 소극장 공간을 빌려드렸어요. 수천 장이 넘는 레코드판들이 있는데, 카페 손님들이 오셔서 듣고 싶어 하는 노래가 있으면 틀어 드리기도 합니다.”


헌책들은 언제나 사람을 기다린다
‘새 책의 전성시대’에도 헌책은 나름의 희소성으로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고 있다. “헌책방은 자원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도 기여합니다. 새 책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 종이를 만들고 인쇄기를 돌리는 대신 이미 나온 책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니까요. 또 인문학이나 예술학처럼 찾는 사람이 적은 분야는 신간 서적이 많지 않아서 헌책들이 가치를 인정받기도 합니다.”  
‘헌책들은 언제나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김형윤 대표는 헌책들에 대한 재미난 상상을 들려주었다. “신간으로 나왔을 때 ‘이 책 괜찮네. 다음에 읽어야지’ 하면서 깜빡 잊고 놓칠 수도 있고, 그냥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나이가 든 책들은 서점에서 밀려나 헌책방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어요. 마치 책들이 ‘그때 나랑 했던 약속 안 지켰지? 난 항상 기다리고 있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죠.(웃음)”

위치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40-21
문의 031-955-7440
   

태정은 리포터 hoanhoa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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