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던가. 이화피닉스요양병원 김석화 대표원장(83)과 만남을 마치고 나서는 길에 떠오른 말이다.
김석화 대표원장은 반평생을 봉사에 앞장섰고, 20여년 동안 후원을 통해 천안의 문학 환경을 윤택하게 바꾸어 놓았다. 그럼에도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있었기에 했던 것이고, 오히려 내가 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끝없이 낮춘다.
하지만 그저 자신만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으로 넘기기에는 주변의 칭찬이 적지 않다. 자신의 나눔과 후원에서 그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또한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후배들이 더 큰 재목으로 커갈 수 있도록 이끌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국제로타리3620지구 총재(1997~1998년)와 한국로타리 총재단 의장(2012~2013년)으로, 천안문인협회 후원회장(1992~2011년)으로 활동해오는 동안 김석화 대표원장은 봉사와 후원이라는 잔잔한 물결을 통해 지역 발전의 큰 물줄기를 만들어냈다.
문학청년의 마음으로 천안문인협회 후원회장 20년
김석화 대표원장과 천안의 인연은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카톨릭의과대학병원에서 산부인과 수련 및 전공의를 수료한 김석화 대표원장은 천안시 대흥동에 ‘김석화산부인과병원’을 개원하며 정착했다. 앞선 의료기술에 남다른 자신감과 특유의 자상함을 바탕으로 짧은 시간에 천안의 대표 산부인과 병원으로 자리 잡았다.
1973년부터는 로타리 활동을 통해 지역과 함께하는 나눔의 삶을 시작했다. 1997년에는 국제로타리 3620지구의 총재, 2012년에는 한국로타리 총재단 의장이라는 중책을 맡으며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왔다.
김 대표원장은 ‘정말 향기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는 천안문인협회 후원회장 활동도 함께했다.
“어느 날인가 한 여성이 찾아와서 천안문학을 위해 도움을 부탁한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천안문인협회 지부장을 맡은 아동작가 소중애 선생이었어요. 처음에는 문학에 동떨어져 있던 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소중애 지부장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문인들이 영 어려운 환경에서 집필하고 있더란 말이지요. 그래도 젊었을 적 한 때나마 시와 소설에 매료됐던 문학청년이었는데,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후원회장을 맡겠노라고 약속을 했어요.”
그것이 1992년의 일. 이후 김석화 대표원장은 20여 년간 천안문인협회 후원회장으로 활동해왔다.
천안문학을 전국 제일로 우뚝 세운 아낌없는 후원활동
김석화 대표원장은 후원회장을 하면서 많은 시민들이 후원회원으로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후원회비를 낮추어 회원수는 나날이 늘어갔다. 알짜 회원이 60명을 넘겨 그때 당시 우스갯소리로 ‘문인보다 후원회원이 더 많다’고 할 정도였다.
이를 바탕으로 회원 작가들이 집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작품 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물론, 수준 높은 신인들이 발굴되어 천안문학에 등단했다. 자연스레 문인들과 후원회원들의 유대와 친목도 돈독해졌다. 연 1회 발행도 건너뛸 적이 있던 ‘천안문학’을 연 2회씩 안정적으로 발행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도 생겼다. 현재도 천안문학은 겨울호와 여름호를 발행한다.
함께 한 문인들과 후원회원들은 당시를 떠올리면 한목소리로 “김석화 후원회장님이 있어 문인들은 걱정 없이 작품 활동을 활발히 했다. ‘천안문학’ 발간에 아무런 장애가 없던 시기였다. 특히 문인들과 후원회원들이 함께 하계 체육대회와 동계 윷놀이, 문학기행을 하는 등 일체감을 가질 수 있어서 재미있고 즐겁게 보냈다”고 회고한다.
천안문학 후원회는 김석화 대표원장에 이어 문은수 후원회장(문치과병원 대표 병원장)이 2011~2016년 활동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한주희 후원회장(전 대림산업 석유화학사업부 대표이사)이 활동을 잇는다.
“할 수 있는 한 내 역할 다 하는 것이 기쁨”
40여 년간 소중한 생명을 받아내고 지역과 함께한 김석화산부인과병원은 2009년 문을 닫았다. 이후 지역의 어른으로, 선배로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며 잠시 휴식을 취한 김석화 대표원장은 2014년 8월 개원한 이화피닉스요양병원 대표원장으로 취임했다. 이제는 연로한 생명을 보듬고 위로하며 인생을 마무리하는 분들의 안락을 위해 분주하다.
김 대표원장이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강조하는 것은 노인병원 특유의 냄새와 낙상사고, 화재사고가 없는 ‘삼무(三無)’다. 수준 높은 의료진과 프로그램, 첨단의료시스템을 갖추어 열심히 살아온 분들의 여생을 조금이라도 더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원장의 생각이다.
여든 셋의 고령에도 흔들림 없이 일에 전념하는 김 대표원장은 오늘도 더없이 행복하고 기쁜 하루를 보낼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일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일 하고 가고 싶은 곳 갈 수 있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반겨주고, 사랑받는 남편이자 아버지로 인정받고 있으니 이만하면 괜찮게 살아온 인생 아닌가? 그래서 난 하루하루 아주 행복해요.”
어디 그뿐일까. 오른손이 한 일은 개인의 행복함을 뛰어넘는다. 2009년 이후 비어있던 김석화산부인과병원 자리는 2015년 ‘429갤러리’로 새단장을 했다. 지역 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아기자기한 피규어나 레고 전시를 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조성되고 있다.
봉사와 나눔으로 지역과 함께 숨 쉬고 특히, 천안문학의 환경을 그 어느 지역보다 우수하게 조성해놓은 업적은 천안의 큰 자랑거리다. 왼손이 모를 뻔했던 김석화 대표원장의 시간은 큰 물줄기로 지역 곳곳을 적시며 흘러간다.
이화피닉스요양병원 김석화 대표원장
부인과 전문의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육군 군의관
카톨릭의과대학병원에서 산부인과 수련 및 전공의 수료
카톨릭의과대학 의학박사
김석화산부인과 원장
국제로타리 3620지구 총재
한국로타리 총재단 의장
대담 : 천안아산내일신문 이기춘 본부장
정리 : 김나영 리포터 naym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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