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은 한 쪽에 내팽개쳐 놓고,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한 자세로 게임을 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엄마가 말합니다. ‘oo아 게임 그만하고 공부해라’ 학생은 준비된 대답을 합니다. ‘네’
여기서 ‘네’라는 대답은 동상이몽 그 자체입니다. 엄마는 자녀가 이제 곧 컴퓨터를 끄고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할 것을 기대합니다. 그렇지만 자녀의 대답은 ‘알았으니까, 잔소리 좀 그만해’, ‘여기 까지만 하고 공부 할께’, ‘게임을 계속할 건데, 엄마가 뭐라 하니깐 일단은 네 라고 대답할께’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수업을 하다 보면 ‘이거 알겠어?’, ‘이해했어?’라고 물었을 때 학생이 ‘네’라고 대답을 하면, 많은 생각이 지나갑니다. ‘진짜 이해했다는 것일까, 어디까지 알았다는 것일까’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을 보면 선생의 생각과 학생의 이해 사이의 싱크로율이 높습니다. 수학이 부족한 학생들은 그 반대인 것이죠. 그래서 한 문제를 두고도 상이한 반응을 보입니다. 학생 입장에서는 ‘선생님 이 문제 어느 단원이에요?’, ‘어떤 공식을 써야 됩니까?’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왜 똑 같은 문제를 또 물어보니?’인 것이죠. 수학을 잘한다는 것은 이 싱크로율을 높이는 과정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싱크로율을 높이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은 1시간 이내 배송을 목표로 맨해튼 시내에 물류창고를 만들었습니다. 비싼 임대료를 더 많은 수익창출로 상쇄하겠다는 것인데, 그 내용이 주목할 만합니다. 보통 마트처럼 물건을 카테고리별로 나누는 방식, 즉 라면끼리, 냉동식품끼리와 같이 모아두는 방식 대신에 물건이 창고에 들어오는 순서대로 쌓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쌓는 것이 최소 20% 이상 공간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서로 다른 물건이 섞여 있어서 배송실수를 줄인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물건을 창고에 쌓는 소터(sorter)가 선반에 놓은 위치 정보를 컴퓨터가 저장하고, 물건을 카트에 담는 피커(picker)가 최단 거리로 담을 수 있는 동선을 컴퓨터가 계산해준다는 것입니다.
어느 단원인지를 구분을 못하는 학생, 같은 문제를 다른 문제로 인식하는 학생은 이 분류에 실패한 학생들이죠. 상위권을 결정짓는 변별력 높은 문제들은 어느 한 단원에 국한되지 않는 여러 개념을 알아야 하는 내적 문제해결능력에 속하는 문제들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저장해 놓은 선반, 방을 찾으려고 하니 애초에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학을 좀 한다는 학생들은 개념, 공식들이 한 방에 마구잡이로 쌓여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지러워도 필요한 공식, 개념을 정확하게 가져와 쓴다는 것입니다. 흔히 수학을 암기과목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마트의 선반처럼 분류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가르치는 일이 자신이 학습한, 경험한 방법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때, 어떤 방법으로 수학의 지식 체계를 쌓아가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혼란스러운 저장방식(chaotic storage) 속에 최상위를 향한 열쇠가 숨어 있습니다.
이태우 원장
히즈매쓰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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