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는 아랍문명으로 이어진다. 7세기 무렵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우마이야 제국은 최초의 아랍 통일 왕조였고 그 후 아랍 학문의 최전성기인 압바스 왕조때 수학은 발전했다. 꿈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기도 한 왕도 있고, 유클리드를 동경해 성곽을 원모양으로 만든 왕도 있었다. 칼리프(왕)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고대문헌들이 이슬람 제국에서 번역되고 연구되었다. 여기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수학대전(알마게스트), 유클리드의 원론 등이 포함되었다. 압바스의 외교사절들은 적대국인 비잔티움(동로마)로부터 많은 그리스 서적을 들여왔다. 당시 아랍은 인종과 학문의 용광로였다.
5부는 중세를 훌쩍 뛰어넘어 17세기의 미적분학의 이야기이다. 미적분을 둘러싼 뉴턴과 라이프니치의 치열했던 싸움은 17세기 영국과 유럽대륙은 지적 재산권 전쟁에 휘말렸다. 학계는 서로 100년 동안 서신 왕래를 끊었다. 전쟁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은 영국의 뉴턴과 독일의 라이프니츠. 그들이 서로 먼저 발견했다고 주장한 것은 미적분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로 유명한 데카르트는 철학자이지만, 수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밤하늘의 별을 보며 좌표계를 생각했다. x축과 y축 그리고 원점으로 이루어진 좌표계에 별의 위치를 놓고 설명하면 명료하다. 데카르트 좌표축에는 다양한 그래프를 표현할수있는데 그 양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흐름을 보여줄 뿐 아니라 선에 내포된 성질을 패턴(수식)화할수있다. 또한 기하와 수가 합쳐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발견해냈다.
라이프니츠는 수많은 원고를 남겼는데 대부분 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였고 수학, 과학, 철학에 뛰어났지만, 체계적인 논문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레오나르도다빈치처럼 모든 학문을 두루 배우고 그것을 연결시킨 학자이다. 이로써 움직이는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액체의 부피, 가격의 순간변화, 시시각각 변하는 대기압도 알게 되었다. 1684년 라이프니츠는 이를 학술잡지 학술기요에 실었는데 몇 년 전 똑같은 생각을 뉴턴이 했다. 그래서 결국 라이프니츠는 표절자로 몰렸다.
뉴턴은 케플러가 행성이 타원으로 돌때 늘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고 어느 때는 빠르고, 어느때는 느리게 돈다. 타원을 돌때 그 순간의 속도를 알아내기 위해 뉴턴은 미분(유율)을 사용했다. 이는 속도에 대한 변화율인데 라이프니츠보다 10년이 빨랐다. 미분개념을 발견한지 20년 후에 프린키피아를 출간했는데 그 내용은 수학적 표현들을 이용해 우주의 원리를 풀었다. 즉, 자연철학에 대한 수학적 원리 이다.
18세기에 들어 라이프니츠와 뉴턴의 싸움은 대륙과 영국학계간의 대립으로 번졌는데 최종발표문은 이러했다. 연구는 뉴턴이 먼저, 최초의 논문발표는 라이프니츠가 먼저다. 당시에는 일단 뉴턴의 승리였다. 하지만, 후세에 남겨서 전해진 미적분내용은 라이프니츠가 썼던 용어들이 남았다.
6부에서는 현대수학인 앤드루 와일스의 ‘페르마의마지막정리’의 증명과 페렐만의 위상수학등을 언급한다. 1963년 영국 케임브리지 밀턴가의 작은 도서관에 수학사가인 에릭템플벨이 지은 ‘마지막문제’라는 책에 열살소년 앤드루 와일스는 빠져들었다. 그책에는 350년전 프랑스의 툴루즈의 재판소 판사였던 피에르 드 페리마가 증명을 시도했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페르마는 프로수학자를 울린 아마추어였는데 생애동안 극대극소값 이론으로 미적분탄생에 계기를 마련했고, 해석기하학, 정수론, 확률론 등 수많은 분야에 업적을 쌓았다. 그는 항상 디오판토스의 아리스메티카(산수론)을 탐독했는데 거기 있는 문제를 풀거나 직접문제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마추어답게 수학적 아이디어를 제대로 정리하지는 않고 여기저기에 메모만을 남겼다. 이 책 여백에도 이렇게 남겼는데 피타고라스정리를 바탕으로 ‘을 만족하는 정수 a,b,c는 없다라고 했고 지수가 3 이상이 되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것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이다. 주석을 하나 더 달았는데 ‘나는 경이로운 방법으로 이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여백이 좁아서 여기에다 옮겨 쓰지는 않겠다.’ 이 한마디에 전 세계 수학자들이 이 문제에 뛰어들었다.
그 이후 수많은 수학자들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도전했으나 누구도 완벽한 성공은 이루지 못했다. 1975년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의 박사과정이던 앤드루 와일스가 타원곡선연구에 몰두하다가 1955년 일본수학자 타니야마와 시무라가 추론해낸 모든 타원방정식을 모듈형태로 바꿀 수 있다는 추론으로 인해 페르마의 정리가 타원곡선의 방정식과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후 7년이 지나 모교인 케임브리지대학 아이작 뉴턴 수리과학연구소에서 페르마의 마지막정리를 증명했다.
문명의 역사는 곧 수학의 역사이다. 나폴레옹은 유럽 정벌에 앞서 프랑스 과학기술연구의 전위가 되는 에콜폴리테크니크를 설립했다. 18세기 독일은 수학과 과학연구에 대한 투자로 국가증흥의 기초를 마련했고, 미국은 2차세계대전중 히틀러를 피해 망명한 유럽의 많은 학자를 받아들임으로써 20세기 최강국이 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21세기 초강대국에 이르기까지 문명을 선도한 나라들에게 과학기술은 빼놓을 수 없는 무기이고 그런 첨단 과학 문명이 수학이라는 학문을 젖줄로 하고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다큐를 원작으로 하는 만큼 5부작으로 구성된 EBS다큐프라임을 보는 것도 괜찮을듯하다.
크림슨수학
이진혁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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