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차 직장인으로 앞만 보고 달리던 남편은 어느 날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과 파업을 겪으며 가장의 위치가 흔들리게 됐다. 프로그래머로 10여 년간 워킹 맘으로 일하던 아내는 컴퓨터와 씨름하면서 얻은 직업병으로 직장생활을 그만두게 됐다. 두 딸이 일곱 살, 세 살이 되던 2012년 유형선, 김정은 부부의 이야기다. 파업으로 직장이 불안정해진 아빠와 워킹 맘에서 전업주부가 된 엄마.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온(?) 엄마와의 시간이 낯설었다. 이런 혼란 속에 가족이 선택한 것은 책이었다. 유형선 김정은 부부는 가족이 함께 책을 읽으며 성장한 이야기를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에 담아 펴냈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 아내, 아이들과 갈등 겪어
“유학 중에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일곱 살, 세 살이 될 때까지 여느 맞벌이 부부와 마찬가지로 육아는 부모님에게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죠.” 부부는 큰 딸 수민이가 태어나자 2년 반을 대전 친가에 맡겼다가 동생 수린이가 태어나자 함께 부산의 외가에 1년 반을 맡겼다. 양가 부모들이 육아로 힘들어하시자, 서울로 데려온 아이들을 다시 육아도우미에게 맡겨 1년 반을 보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월화수목금금금이었을 정도로 워크홀릭이었죠. 둘째 아이를 낳고는 육아휴직기간을 채 쓰지도 못하고 3개월 만에 회사에 나갈 정도였으니까요. 일도 많았지만 저도 또 커리어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요.” 그러다 심한 목 디스크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자 엄마도 아이들도 갑작스런 상황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엄마는 늘 일하는 사람이었고 자기들을 돌보아주는 사람은 할머니 아니면 도우미 아주머니였으니 엄마와 충분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던 아이들과 갈등만 쌓여갔다. 설상가상 남편 유형선씨도 파업으로 직장이 불안해지면서 서울에서 파주로 이사를 하게 됐고 가정경제가 휘청하면서 아이들은 유치원도 학원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 김씨는 “책 속에서도 밝혔지만 할머니의 건강한 밥상 대신 제가 준비한 엉성한 식탁을 마주해야 하는 아이들에도 미안했고, 익숙지 못한 살림에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한심한 생각이 들었어요. 건강 때문에 그동안 열심히 일했던 프로그래머의 일을 그만두게 됐다는 것에도 회의가 들었고 수치심마저 들었지요”라고 털어 놓았다.
위기의 가족, 책에서 해답을 얻다
그렇게 갈등 속에서 힘들어하던 어느 날 아내 김씨는 우연히 들른 주민자치센터에서 육아에 어려움을 겪는 엄마들을 위한 무료 집단 상담과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열 명의 엄마들과 그 과정에 함께 하면서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과 우쓰기 미호의 <치킨 마스크>를 읽었어요. 그런데 그 책 속에서 ‘스스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랑하라‘는 말이 마음 속 깊이 와 닿더군요. 제 스스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회의감에 빠져 있던 아내는 그때부터 유치원도 학원도 그만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서 같은 고민을 가진 엄마들과 예기를 나누고 아이들과 열심히 도서관에 다녔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아이들이 이런 엄마의 변화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돈 들이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었어요.(웃음) 처음엔 아이들이 짜증을 내고 그러기도 했지만 제가 노력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도 서서히 변하고 그 효과가 나타났지요.” 이런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도 함께 책읽기에 동참했다. 가족이 함께 책을 읽으면서 행복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딸 수민, 수린이와 함께
구조조정, 파업 겪으면서 철학 책을 집어든 남편
책 한 권 읽기도 바쁜 직장생활, 남편 유형선씨의 일상도 다를 바 없었다. 그런 남편이 회사에서 위기를 겪으면서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회사가 어느 날 매각을 발표했어요. 구조조정, 파업 이런 단어들이 제게 현실로 다가온 거죠. 그런 상황이 닥치자 이런저런 고민에 빠지게 됐고 그때 떠오른 것이 ‘철학’이예요. 원래 철학이 전공이기도 했고요.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3개의 독서모임에 다녔어요. 그중 구본형 선생님의 ‘꿈벗여행’ 프로그램은 매주 1권의 고전을 읽고 A4 20쪽짜리 리뷰와 칼럼을 내야했는데 월요일 12시까지 내지 않으면 그 독서모임에서 퇴출을 당했죠. 잘리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1년 동안 50권의 고전을 읽게 됐고 중심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여전히 회사에서 책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는 남편 유형선씨는 2014년 ‘꿈벗여행’ 9기 연구원이며 아내 김정은씨도 이어서 10기 연구원 과정을 마쳤다.
가족이 겪은 지난 3년간의 이야기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딸들과 함께 책을 읽던 아내와 회사에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책을 읽게 된 남편.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가정의 위기를 딛고 행복의 길을 찾았다고 한다.
“꿈벗여행 과정을 마치면서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책을 한 번 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함께 읽으면서 변화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었죠. 그러다 우연히 진짜 책을 만들게 됐고 책에 담은 내용을 공감해주는 분들도 있어 신기하고 기뻐요.”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은 3년 동안 부부와 딸들이 함께 읽고 공부했던 것을 가족 이야기와 잘 버무려 소명, 가족, 형제, 우정, 배움, 국가 등 10개의 주제로 정리한 책이다. 각 장마다 아빠 유씨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쓴 ‘아빠의 편지’가 있고, 주제에 맞는 책을 어린이, 청소년, 성인으로 나누어 권하고 있다.
“아이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함께 한 도서관 나들이가 제게 프로그래머가 아닌 또 다른 일을 하게 될 줄 몰랐어요, 아이들보다 제게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셈이죠”라는 아내 김씨. 그는 초등학교에서 ‘따뜻한 나눔이 함께 하는 HUNGRY FOR ENGLISH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2012년 경기도교육감상 최우수상을 받았고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 아이 초등학교 입학 때문에 운정으로 이사를 오면서 한빛도서관에서 6명이 모여 엄마들 독서 모임 ‘그림책 여행가’를 만들어 올해로 5기째가 진행 중이다.
일곱 살, 세 살이던 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 1학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도서관 나들이를 함께 하며 행복을 찾는 보물찾기를 하고 있는 부부. 아내 김정은씨는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이 나온 후의 이야기가 곧 책으로 만들어질 것 같다고 귀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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