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느끼는 교육의 단상

지역내일 2016-07-13

올 해 3월부터 풍동에 위치한 ‘자유농장’에서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 화학약품인 농약이나 비료를 일체 쓰지 않는 유기농이자  검정 비닐조차 덮지 않는 생태농업을 실천한다.


  ‘잡초’라는 말은 안써
  자유농장에서는 잡초라는 말을 안쓴다. 이름 없는 풀도 아니다. 이름 모를 풀이거나 야생초라 한다. 실제로 왕성한 생명력 때문에 농부들을 괴롭히는 바랭이, 쇠비름, 쇠뜨기 등을 그 의약적 효능 때문에 작물로 키우는 곳도 있다고 한다. 내가 선택한 상추나 감자 등의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고 해서 뽑혀버리는 풀들이기에...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풀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학생들은 어떠한가. 다행히 국영수 위주의 현행 교과과정이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 것과 맞아떨어지는 학생도 있지만 그 수는 매우 적다. 결국 다수의 중고생들은 개인의 특성과 자질, 적성이 무시된 채 매일매일 꿈을 빼앗기는 일상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저 ‘잡초’에 불과한 것일까.


  순지르기를 하지 않아
  가지, 오이, 토마토, 참외 등의 열매채소와 넝쿨채소들의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곁가지를 제거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맥없이 생명을 잃어야 하는 곁순들의 입장은 또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자유농장에서는 순지르기를 하지 않고 작물을 키운다. 경험많은 농부는 말하기를 상품으로 내다파는 것이 아니면 순지르기를 하지 않아도 수확량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오히려 무성한 가지와 이파리들이 한여름 뙤약볕을 방지해주고 장마비에 토마토 등이 물러터지는 것을 막아주는 순기능도 해준단다. 혹시 교육현장에서는 학생들의 동의도 없이 ‘순지르기’라는 폭력이 행해지지는 않는가. 성적이라는 잣대로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 어느 선 아래는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짓. 시대에 뒤처진 권위주의적 규칙을 강요하며 자라나는 아이들의 자유로운 자기표현들을 막아버리는 짓. 다문화가정, 차상위계층, 장애를 가진 학생 등 우리 사회 소수자에 속하는 학생들을 분별하고 소외시키는 짓... 반성해봐야 할 것들이다. 


  웃거름과 생태뒷간
  화학비료를 쓰지 않다보니 오줌과 막걸리를 섞어 웃거름을 준다. 오전에 웃거름을 얻어먹은 작물들의 오후 모습이 눈에 띄게 다르다고 하는 말이 초보농부인 내게 아직 실감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주일, 이주일, 한 달여의 시간차를 두고 보면 작물의 생육상태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배설물이 채소들에게 영양분으로 공급되고 그렇게 자란 작물을 다시 사람이 섭취하는, 자연의 생태 사이클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화장실에서 소변 뒤치다꺼리로 소모되는 물의 양이 생각보다 엄청나다. 대충 계산해도 성인 1인당 한 달에 1~2톤의 물이 쓰인다. 공장 폐수에 의해 하천이 오염되는 것보다 생활 하수를 정화시키는 비용이 훨씬 크다고 한다. 편견과는 달리 오줌을 폐쇄용기에 모으면 냄새도 거의 없다. 약간의 수고로움만으로 하천의 오염을 크게 줄이고 그렇게 모인 오줌은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훌륭한 웃거름이 되니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생명교육의 좋은 재료가 될 수 있지 않는가.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마다 생태뒷간(대소변이 자동적으로 구분되는)이 설치되어 학생들이 작은 실천을 통해 환경과 생명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기다림의 미학
  한여름에 작물들에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안된다. 뙤약볕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러 자기 몸속의 수분을 내보내 풀이 죽어 있는듯 보이는 채소들이 안쓰러워 물을 주면, 채소는 그것을 내보내기 위해 더욱 괴로워 한다. 수확시기를 앞당기거나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너무 자주 거름을 줘도 작물에게는 좋지 않다고 한다. 종류에 따라서는 과한 열량에 쪼그라들기도 한단다. 벌레를 잡기 위해 유기농 농약(난황유, 제충국, 목초액 등)을 쓰는데 그것도 주기를 잘 지켜야 한다. 급한 마음에 너무 자주 주면 오히려 작물이 피해를 입는다. 작물과 작물 사이는 충분한 공간을 주어야 하는데 수확 욕심에 너무 촘촘히 심어도 농사를 망친다. 이 모든 것이 조급함과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자녀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 앞서서 소화하지도 못하는 과도한 선행학습을 시키거나 마음의 준비 상태를 살피지도 않고 과도한 학습노동으로 내모는 학부모들이 있다. 결국 학생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런 학부모들은 부디 텃밭농사를 통해 기다림의 미학을 배울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장마와 파프리카
  지난주에 며칠동안 큰 비가 내린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텃밭을 찾았다. 아니나다를까, 파프리카 한 녀석이 거의 넘어져 있었다. 지지대를 세우고 고추줄로 잡아주고 빵끈으로 묶어주고, 나름대로 방비를 했는데도 허점이 있었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파프리카를 바로 세워서 줄로 묶어주느라고 등허리가 흠뻑 젖는지도 몰랐다. 만약에 텃밭을 찾지 않았다면 파프리카는 그대로 꺾여버렸거나 땅에 닿아 썩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위기에 처한 파프리카가 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내 불안한 마음을 자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어이없어 피식 웃기도 했다. 이처럼 생명을 키우는 일은 수고로운 일이다. 그리고 경이로운 일이다. 우리 학생들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어떨까 잠시 생각해본다. 나의 손길과 눈길을 기다리는 무언의 신호들을 혹시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본다.



최 재 용 원장
24년간 대입지도
수학전문 베리타스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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