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모노를 입을까, 드레스를 입을까 고민하던 일본인 소녀는 외국에 시집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생에 단 한 번 입는 전통 혼례 기모노를 마음에 묻고 있었던 소녀는 결국 캔버스에 본인의 꿈을 이루었다. 다문화 생활예술동호회의 한 일본인 주부 회원의 이야기다.
문하영 리포터 asrai21@hanmail.net
다양한 국가의 이주민과 내국인 문화예술 동호회
미조구치 마끼(54·태평동)씨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다. 여러 가지 여건 상 그림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그녀에게 5년 전 그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대한민국에 이주해 온 다양한 나라의 이주민과 내국인의 문화예술 동호회인 ‘다사랑회’에서 전문 미술지도 교수로부터 미술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막상 그림을 배우고 싶어도 주변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원은 많지만 나이 든 주부들이 마음 편히 그림을 배우고 그릴 곳은 없었는데 ‘다사랑회’를 만난 것이 꿈만 같고 행복하다”며 특별히 “매년 전시회를 열어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벅찬 감동”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작년 11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다섯 번째 ‘다사랑회’의 전시회에 미조구치씨가 출품한 작품명은 바로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었다.
지역 전문 미술 강사들의 순수한 재능기부로 운영
중국에서 온 서단(41·백현동)씨도 한 달에 한 번 막내 딸 김은결(7)양과 함께 ‘다사랑회’에 와서 그림 그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엄마는 고운 코스모스를, 딸은 거북이와 빛나는 비눗방울을 그리며 그림에 열중해 있는 모습이 똑 닮았다.
“전시회 할 때마다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와서 격려해 주는데 정말 기분이 좋다”며 “팔레트가 하나라서 딸과 함께 쓰고 있는데 각자 하나씩 별도의 팔레트를 쓰면 그림이 더 잘 그려질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다사랑회’는 전문 미술 강사들의 순수한 재능기부로 운영되고 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나 전시할 수 있는 공간 등의 후원은 성남시와 성남문화재단으로부터 받고 있지만 고가의 미술 재료 등의 후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턱없는 예산 부족으로 제한되는 활동 아쉬워
모임의 회장인 박봉덕(58·야탑동)씨는 “‘다사랑회’는 좀 더 편안하고 익숙한 한국문화를 나누며 동아리 활동을 통해 문화시민이 되는 소통의 공간이자 그림, 한지공예, 서예 및 문인화 등 다양한 예술을 통한 문화교육과 교사와 학습자를 떠나 돈독한 우정을 키워가는 예술 문화동아리로 처음 출발했다”며 “올해는 예산이 많이 줄어들어 그림에 국한된 활동만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현재 ‘다사랑회’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전에 성남시청 모란관 또는 율동관에서 모여 함께 그림을 그린다. 리포터가 찾아간 4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박봉덕 회장과 함께 학생들에게 “아, 색감이 좋습니다”, “제가 잠깐 붓을 들어볼까요?”라며 따스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던 이종렬(53·성남동)씨는 ‘다사랑회’에 들어온 지 아직 1년이 되지 않았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국적의 회원들이 가지고 있는 이국적인 느낌과 정서, 분위기 등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것이 재미있고, 특별한 지도 경험을 쌓을 수 있어 기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각자의 문화 뿌리 내리며 삶 속에 스며들다
이날 한 회원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작품명은 ‘후지산의 봄’. 박 회장이 수업시간 내내 “히토미씨, 이거 무슨 꽃이라고요? 낮은 벚꽃? 그림 참 좋네. 오늘 이거 완성합시다”라며 격려해 주던 회원이었다. 같은 고향을 가진 이들끼리 고향의 풍경그림을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모국어로 이야기하는데 알아듣진 못해도 잔잔하게 흐르는 애틋함이 느껴진다.
가만히 그동안 ‘다사랑회’ 회원들의 전시회 팸플릿을 펼쳐 보았다. 그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것에서, 그저 생색내기에 그치는 단발성 다문화 가족 수업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몇 년 간 수차례의 작품 전시회를 하며 개인의 기량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문화를 가진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본인들의 문화를 뿌리 내리며 수준 있게 한국인들의 삶 속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사랑회’에 뿌려진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 땀방울이 값지게 발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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