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8일 저녁,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는 조금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앞니가 빠진 초등학생부터 인생의 황혼을 깊은 주름에 간직한 노년의 여성까지 한 무대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악기삼아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전 세대가 음악에 젖어들며 행복을 느낀 음악회였다.
콘서트홀 입구에는 ‘제19회 분당구어머니합창단 정기연주회-Shall we go’라는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문하영 리포터 asrai21@hanmail.net
올해로 결성 20주년 맞은
‘분당구어머니합창단’
1995년 창단해 올해로 결성 20주년을 맞은 분당구어머니합창단은 분당지역에 사는 만 59세 이하 여성들로 구성되었다. 시민의 문화 복지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분당구에서 단원을 모집해 창단했으며 그 운영을 자치적으로 하고 있는 예술단체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고 있으며, 성남시와 분당구의 공식 행사 참여는 물론이고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는 음악회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28일 개최된 정기연주회는 창단 20주년을 기념하여 ‘Shall we go’라는 주제로 지역 내 어린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 화합하는 무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올해 새롭게 분당구어머니합창단의 지휘를 맡게 된 지휘자 주광영(분당동)씨는 “‘함께, 같이’라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빛난 무대였다”라면서 “개인적으로는 분당구어머니합창단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방향을 설정하게 된 계기가 된 무대”라고 정기연주회가 끝난 후 소감을 덧붙였다. 이어 “앞으로 계속 발전하는 모습, 좋은 무대를 선사하겠다”는 포부도 전했다.
은퇴 단원들이 함께한
‘제19회 정기연주회 SHALL WE GO’
분당구어머니합창단의 류호신 단장은 “이번 정기연주회에는 창단 20년을 기념해 단원으로 활동하다 은퇴한 선배들을 초대해 무대를 꾸몄다”면서 “현직 단원들의 무대의상인 드레스를 은퇴 선배들에게 입혀드리니 눈가가 촉촉해진 분들이 많았다”는 후문도 전했다.
1995년 창단 때부터 20년간 단원으로 활동한 신미순(정자동)씨는 “20년간 단원으로 활동했던 세월이 필름처럼 지나간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국내외 합창대회를 한마음이 되어 준비하고 함께 무대에 섰던 일이란다. 분당구어머니합창단은 2002년 부산국제합창올림픽 여성 체임버합창 부문 금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4년 독일 브레멘 국제합창올림픽, 2006년 타이완 샤먼 국제합창올림픽, 2008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세계합창대회, 2012년 이탈리아 리바 델 가르다 합창대회 등 유수의 국제 합창대회에서의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단순히 국제대회 수상경력이 해가 지날수록 쌓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 합창의 실력과 아름다움을 전하는 국제문화 교류사절단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유수의 국내외 대회에 출전하여 수상하는 것 이상으로 분당구어머니합창단이 비중을 두는 무대가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 환우들을 찾아가는 음악회이다. 올해 마지막 무대 역시 연말연시를 맞아 보바스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로비에서의 공연으로 마무리된다.
너와 함께 부르는 노래는 ‘나의 힘’
‘내 삶의 활력소’
분당구어머니합창단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분당구청 대회의실에서 연습을 한다. 올해 지인의 소개로 합창단 신입단원으로 들어온 박정민(야탑동)씨는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이다. “대부분 주변 엄마들을 보면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도 아이가 고3이 되면 모든 활동을 접고 수험생 뒷바라지에 올인 하는데, 체력적으로는 조금 힘들었지만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오히려 아이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고 편하게 수험생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20주년 정기연주회 첫 무대에 떨리는 마음으로 섰는데 가족과 초대한 지인들이 모두 너무 멋지다며 ‘엄지 척’ 해주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고.
분당구어머니합창단 4년차인 김지연(이매동)씨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연습에 나온다. 다양한 연령대의 주부들과 함께 호흡하며 연습하고 크고 작은 무대를 준비하는 일이 아직 어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다소 몸이 힘들 때도 있지만 주부로서, 엄마로서의 삶에 활력을 주고 더 부지런하게 살도록 만들어준다며 “주부로서 이만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없다”고 합창이 가진 특별한 힘을 이야기했다.
분당구어머니합창단이여, 영원하라
분당구어머니합창단의 현재 단원은 42명으로 연령대는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소프라노 13명, 메조소프라노 14명, 알토 15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단은 만 47세 이하의 여성으로 소정의 심사기준에 합격해야 한다. 올해로 합창단 생활 15년차인 류 단장은 “내 소리를 드러내려 하면 합창이 어그러진다”면서 “내 호흡을 다른 단원들과 맞추려 연습하다 보면 짜릿하게 선율이 맞아떨어지며 온 몸으로 쏙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합창의 맛”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노래를 조금 못해도 내 옆 사람이 내 것을 메워주기 때문에 누구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합창을 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내년의 계획을 묻는 리포터에게 류 단장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국제대회 참가를 후원해 주는 곳이 있었는데 경기가 안 좋다 보니 그곳의 재정이 악화돼 후원이 어려워진 상태”라고 한다.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국제합창올림픽이 내년 소치에서 열린다”며 참석여부에 대해서는 말끝을 흐린다.
지역의 문화예술단체로 음악을 통한 시민들의 정서를 풍부하게 하고, 특별히 지역의 여성문화와 화합을 도모했던 20년 전통의 단체가 재정상의 이유로 날개를 접어야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더불어 사는 삶’의 장으로 직접 뛰어들어 지역사회 곳곳에서 봉사활동 및 음악활동을 하며 손을 내밀었던 그들에게 누군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20년이란 시간 동안 음악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을 차곡차곡 쌓아 오늘에 이르렀듯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과 감동을 남겨 줄 10년 후, 20년 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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