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나 병문안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꼭 가게 되는 분당 서울대병원. 병원의 신관과 본관을 오가면서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그림들이 얼마 전 눈에 들어왔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월터 길버트(Walter Gilbert) 특별 사진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년 10월부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왜 이 전시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서브타이틀이 마음에 들어 아이들과 다시 한 번 이 전시회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벨화학상 수상한 하버드대 교수가 사진작가
하버드 대학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은 분자생물학자 월터 길버트 박사는 하버드 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DNA염기서열의 분석을 위한 연구에 전념했다. DNA가 갖는 유전정보의 문자에 해당하는 핵산염기의 배열을 간단히 결정하는 방법을 고안했고, DNA의 해석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2000년대에 들어서는 사진작가 활동에도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창작을 나누는 활동을 시작하면서 노벨상을 탄 과학자가 아닌 사진작가 월터로서 사람들에게 더욱 친숙하고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도록 분당 서울대병원 갤러리 SPACE-U에서 사진전을 열게 됐다.
길버트 박사의 추상적 사진세계
지난 10년 동안 길버트 박사는 디지털 아트 작업을 해왔다. 그는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해 세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피사체들의 형태와 질감, 색상에 초점을 두어 큰 이미지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사진들은 때론 기계나 건축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매사추세츠 미술대학의 교수가 그의 작품을 알아보고 2004년에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했고, 그 이후 폴란드를 비롯해 뉴욕, 워싱턴 D.C,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샌디에고 등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그는 사진에서 파생된 초기 실루엣에 기반을 둔 추상기법을 시도했다. 생물학적 곡선의 가벼운 잔상이 지니는 패턴을 추상화하면서 컴퓨터 수작업으로 기하학 형태에 기초한 디지털 화상을 생성해냈다. 작품들은 겹쳐지고 축소된 사각형과 삼각형, 강한 색상 또는 흑백의 패턴, 단선들로 표현됐다. 최근 그는 흑백 이미지와 동영상을 탐구하고 있다고 한다.
STEAM(융합) 동아리 학생들의 전시회 감상
용인 신촌중 STEAM 동아리 학생들과 다시 찾은 ''월터 길버트 특별 사진전’. 사전에 월터 길버트 박사에 대해 조사를 하고, 그의 전시회와 작품 세계에 대한 소개 글을 읽고 온 아이들은 꽤 진지하게 작품들을 감상했다.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온 권미성(신촌중 3) 학생은 “길버트 박사에 대해서 모르고 병원에 왔더라면 작품을 그냥 지나쳤을 텐데 사진작가가 노벨화학상을 받으신 세계적인 박사님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 좀 더 의미 있게 감상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승호(신촌중 1) 학생은 “과학자이면서 예술가로 활동한다는 것이 멋지고 놀라운 것 같아요.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전시회였지만 색다른 것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였어요”라고 감상을 표현했다.
분당 서울대병원 2동(동행) 1층 갤러리 SPACE-U에서 열리고 있는 월터 길버트 특별 사진전은 아쉽게도 4월 30일에 끝난다. 병원에 갈 일이 있다면 창가 햇살이 잘 드는 그 공간에서 길버트 박사의 심오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사진 작품에 잠시 눈길을 주어 보길 바란다.
오은정 리포터 ohej0622@navd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