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계절, 봄이 오고 있다. 제주 올레길을 비롯해, 서울 북한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내로라하는 길들이 봄햇살에 빠진 상춘객들을 유혹한다. 수원에도 걷기 좋은 팔색길이 뻗어 다채로운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200년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5.7㎞의‘화성성곽길’을 걸어보자. 2시간 남짓 천천히 걸으며, 책이 아닌 체험으로 정조의 효성과 꿈이 담긴 화성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사통팔달 팔달문을 바라보고 화성성곽길 출발~(1코스)
팔달문에서 걷기 시작한다. 보물402호인 팔달문(八達門)은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의미의 남쪽 문. 돌로 쌓은 무지개 모양의 문은 왕의 행차 시에도 가마가 드나들 만큼 널찍하다. 2층으로 누각을 세우고, 성문 앞에는 항아리를 반쪽으로 자른 모양 같아 옹성(甕城)이라 불리는 또 한 겹의 벽돌성을 둘러 세웠다. 성문에 불이 붙었을 때 불을 끄는 역할의 오성지도 보인다. 팔달문 주변으로 도로가 나 있어 자세히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그 마음을 잠시 접고, 팔달문 관광안내소 앞에 이르면 팔달산 산등성이를 따라 성곽이 나타난다. 화성은 팔달산과 평지에 쌓은 성이라 산 정상의 서장대까지는 가파른 산길이다. 성곽을 따라 오르면 남포루와 서남암문, 서남각루(화양루) 등이 보인다.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아 가까이 접근하는 적군을 공격하기위한 치에 지붕을 씌운 포루,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만들어 적에게 들키지 않고 군수물자를 성안으로 공급하도록 만든 암문 등이 신기하다. 각루는 높은 위치에 건물을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성곽길의 곳곳에는 자연지형을 잘 이용한 치, 포루, 암문, 각루들이 있어 눈길을 붙잡는다.
팔달산 정상에 다다르니 서장대와 서노대가 반긴다. 장대는 장수가 올라서서 군사를 지휘하던 곳으로 정조도 여기서 군사훈련을 지켜보았단다. 서장대에 오르면 시가지와 화성행궁이 눈앞에 펼쳐진다. 서장대 뒤로는 정팔각형 평면으로 위로 올라가면서 전체 폭이 좁아지는 모습의 서노대(西弩臺)가 있다.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해 벽돌을 쌓아 높이 지었단다.
■서쪽 대문 화서문을 지나 임금을 처음 맞이하던 장안문으로(2코스)
서장대 뒤편의 돌계단을 지나니 화성의 서쪽에 있는 문, 화서문(華西門)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원형을 잘 유지하여 보물403호로 지정됐다. 좌우 성벽에 연결되는 석축에 무지개 모양의 성문이 있고, 그 위에 1층의 누각이 있다. 문 바깥쪽으로 한쪽 팔이 구부러진 모양의 옹성을 쌓았다. 화서문 옆에는 방어를 위해 벽돌로 삼면을 높이 쌓고 그 가운데를 비워 둔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이 나온다. 3층으로 된 내부의 2·3층은 사다리를 통해 위 아래로 오르내릴 수 있다. 벽에는 구멍을 뚫어 외부의 적을 엿보고 무기를 쏠 수 있게 했다. 정조도 신하들에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공심돈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만족을 표시했단다.
장안문 좌우로 북서적대와 북동적대를 볼 수 있다. 적대는 성문과 옹성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문의 좌우에 설치한 방어시설물이다.
좁다랗게 이어지는 성곽길을 걷다보니 드디어 현존하는 국내 성문 중에서 가장 큰 장안문(長安門) 앞이다. 보통은 남문이 정문이지만, 화성은 임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북문인 장안문에게 그 자리를 양보했다. 수도를 뜻하는 장안이란 말에서 화성을 대도시로 만들려던 정조의 의지가 엿보인다. “팔달문과 장안문, 화서문과 창룡문이 짝을 이뤄 모양과 크기가 같다. 화성 축성에 관한 모든 기록이 담겨있는 ‘화성성역의궤’가 있어 쌍둥이처럼 지을 수 있었고 복원도 가능했다” 는 사실은 기록유산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화홍문, 창룡문을 거쳐 남수문에서 끝나는 성곽길(3코스)
화성 안에는 수원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다. 화홍문(華虹門)은 홍수를 대비해 그 위에 세워진 북쪽 수문(북수문)이다. 화홍문 위로는 누각을 지어 사람들이 지나다니게 하고, 다리에 무지개 모양의 7개의 수문을 뚫어 물이 흐르도록 했다. 화홍문에서 흘러나오는 장쾌한 물보라는 ‘화홍관창’이라 하여 수원팔경의 하나로 손꼽힐 정도. 화홍문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면 동북각루(방화수류정)가 있다. 용연이라는 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주변경관의 아름다움은 화성팔경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친다.
평상시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지휘하던 곳인 동장대(연무대)가 가까워 온다. 드넓은 잔디밭을 만나니, 언뜻 장용영외영 병사들의 무예훈련 모습이 스쳐 지난다. 지척에 있는 큰 원통모양의 동북공심돈으로 간다. 3층까지 오르는 계단이 벽을 따라 둥글게 이어져 마치 소라를 닮아 ‘소라각’이라고도 했다. 화성에서 가장 특이한 모양인 동북공심돈의 3층 망루에서는 화성 전체를 보는 즐거움도 한껏 누린다.
음양오행설에 푸를 ''창''자가 동쪽을 의미해 그 이름이 유래한 동문, 창룡문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한국전쟁 당시 크게 소실된 것을 복원했다는 대목은 전쟁의 아픔을 맛보게 한다. 성곽길이 끝나가는 지점에서는 봉돈을 만난다. 불빛과 연기를 신호로 비상사태를 알렸던 봉돈은 5개의 화두 중 평상시는 남쪽 첫째 것만 사용하고, 전투가 시작되면 5개를 모두 피웠다. 유적들과 반가이 인사하며 역사의 발자취를 되짚어온 화성 성곽길은 동남각루를 지나 2012년에 복원한 남수문에서 끝이 난다. 남수문과 팔달문 사이에는 시장과 도로가 들어차 아쉽게도 성곽길은 더 이어지지 못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속에서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아름다운 성곽의 꽃, 화성의 가치를 새삼 느낀 행복한 걷기는 마무리를 짓는다.
■화성 성곽길에서 만나는 체험
▷팔달산 -효원의 종 타종체험 :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효원의 종에는 수원시의 상징물과 주요 문화재가 새겨져 있다. 체험자 스스로 3타를 타종하면서 1타 부모의 건강, 2타 가족의 건강, 3타 개인의 발전을 위한 소원을 빌 수 있다. 체험비는 1~2명 1천원, 3~4명 2천원.
▷동장대(연무대) - 국궁체험 : 정조대왕 시대 군사들이 무예를 연마하고 훈련했던 장소인 동장대(연무대)에서 전통 활쏘기인 국궁체험을 할 수 있다. 활시위를 당겨보며 주몽의 후예임을 확인해 보자. 초등학생 이상 가능하며, 1회(10발)당 2천원의 체험비가 있다.
사진 수원시 제공
참고 수원화성행궁(수원시)/수원화성(김영사)/화성기행(문학동네 스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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