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팔자와 부자팔자

지역내일 2015-09-19
 퇴근 무렵 20대의 아가씨가 필자의 사무실에 찾아왔다. 아가씨의 걸음걸이에는 힘이 없었고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였다. 큰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아가씨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떤 특정사안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주 전반에 대해 알고 싶어서, 지나가다가 간판을 보고 필자의 사무실에 들렀다고 했다. 
대개 평소에 신문을 통해 필자의 사주칼럼을 봐왔던 분들은 직접 찾아와선 친밀감을 보이고 필자 또한 첫눈에 친밀감을 느끼지만, 그동안 신문을 통해 안면을 튼 적이 없고 그냥 길을 가다가 들른 분들은 거리감을 두고 경계심을 보이고 필자 역시 단박에 저 사람은 내 독자가 아니라고 직감하면서 조심성을 보인다. 그리고 자면을 통해 구면이 된 분들은 고민을 곧잘 털어놓는데 비해 생전부지의 상태에서 방문한 분들은 처음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이나 아가씨가 고민을 감춘 채 당장 드러내지 않고 있는 건 상담사와 그의 실력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전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아가씨의 생년월일시를 물으니 아가씨는 자기 생시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오후 7시쯤 배가 아파서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너를 낳았노라고 어머니가 말씀했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생시를 추정해 보았다. 택시를 기다리는 시간, 이동시간 등을 감안하면 오후 7시 40분쯤이 출생시각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생시를 술시로 보고 아가씨의 사주를 들여다보았다. 

아가씨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올해 운이 매우 좋았다. 남자친구가 없다면 훌륭한 반려자를 만날 수 있고, 취직시험을 본다면 합격의 기쁨을 얻을 수 있고, 직장인이라면 영전하거나 승진할 운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아가씨는 “하나도 맞지 않는데요.”라며 크게 실망하면서 필자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올해 남자친구와 해외에 나가 함께 지내다 임신을 했고, 출산문제로 다투다 이별까지 했고, 아기는 끝내 유산했노라고 털어놓았다. 

 아가씨의 불신에 필자도 당황했지만, “술시로 봤을 때 올해는 대길인데도 대흉의 시기였다면  생시가 잘못 되었을 겁니다.”라며 생시를 술시 앞 시간대인 유시로 보고 다시 아가씨의 사주를 살펴보니, 아가씨의 올해 불행과 그대로 일치하였다. 아가씨는 본래 배우자와 생사이별할 팔자요, 유산 혹은 낙태하기 쉬우니 자식복 나쁜 팔자인데 올해가 바로 남자와의 관계가 파탄 나는(심하면 사별하는) 해인 데다 더욱이 5~6월은 이게 극심하고 건강악화로 자녀문제가 생기는 달이었다. 

 아가씨의 생시가 술시냐 유시냐에 따라 이렇게 올해의 행불행이 극명하게 갈린다. 올해 운뿐 아니다. 술시생이라면 과부팔자지만 유시생이라면 부자팔자다. 또한 술시생이라면 그 배우자는 병들어 골골하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유시생이라면 그 배우자는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다. 생시가 앞뒤로 한 단계가 다르면 행불행에 별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이처럼 천양지차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누가나 생년, 생월, 생일까지는 알지만 생시를 잘 모르니 사주를 볼 때 생시확인이 더없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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