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국의 대학으로 진학한 사촌동생이 여름방학을 맞이해 한국에 나왔다.
뭐가 제일 먹고 싶냐 물었더니 갖가지 나물에 된장을 넣어 비벼 먹고 싶단다.
부엌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르는 요즈음, 도저히 ‘갖가지 나물’을 데치고 무쳐낼 자신이 없다.
그때 마침 딱 머리에 떠오른 곳이 있었으니, 바로 고기리에 위치한 ‘비수구미’다.
지난 주말, 우리 대가족이 다녀온 ‘비수구미’를 소개한다.
문하영 리포터 asrai21@hanmail.net
‘비수구미’, 밥상 받기 전 후각·시각 만족
고기리 산 속을 들어가다 보면 아무리 날이 더워도 에어컨 끄고 어느새 차창을 내리게 된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몸이 반응한다. 도심의 여느 음식점과는 달리 널찍한 주차장에 여유 있게 주차하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주차장이 협소하거나 불편하면 식사 초대를 한 이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아는지 주차선도 그어 놓지 않았다.
너른 주차장만큼이나 넓은 마당과 정원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정원에는 작은 호수도 꾸며 놓았다. 이제 막 개구리가 된 듯 아직 꼬리가 얼핏 남은 개구리가 뛰어다니고 잔잔하게 피어 있는 들꽃들과 장독대가 보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고기리 유원지 산 속 높은 지대에 위치해 전망도 탁 트여있다.
밖에서 먹는 식사는 음식의 맛도 중요하지만 음식을 맛보기 전 그곳의 분위기, 음식점을 방문했을 때의 기분, 같이 가는 구성원, 음식점에서 받는 서비스 등에 따라 그 식사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수구미’는 밥상을 받기 전에 이미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곳이다.
‘비수구미’, 밥상 받으며 미각 만족
좌식 룸과 입식 룸, 그리고 홀로 나뉘어져 있다. 사촌동생을 배려해 입식 룸을 선택했다. 1인분에 15,000원인 비수구미 산나물정식을 시켰다. 먼저 달큰한 옥수수 죽이 나오고 샐러드를 비롯해 장떡, 더덕구이, 명이나물에 돌돌 만 돼지고기 수육 등 기본 찬들이 깔린다.
주 메뉴는 너른 접시에 조금씩 담겨져 나오는 산나물. 청정지역 화천에서 공수해온 곰취, 취나물, 다래순, 곤드레, 단풍취, 광대싸리순, 참머늘치, 뽕잎, 엄나무순, 얼러지, 참나물 등 30여 가지의 나물이 번갈아 나오는데 보통 한 상에 7가지가 올라온다. 오늘 밥상에는 곤드레, 공심채, 방풍취, 풍년초, 고사리, 곰취, 다래순이 올라왔다. 나물마다 이름이 쓰인 작은 깃발을 꽂았고, 식탁에 올린 매트에도 각 나물의 사진과 이름, 조리법이 씌어져 있어 먹는 재미에 아는 재미를 더해준다.
먹는 재미라 함은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직접 내린 들기름과 집 간장으로만 무쳐내는 할머니 손맛이 흡족하고 각 나물의 고유한 맛을 혀끝으로 구분해 가며 맛보는 쏠쏠한 재미가 포함된다. 한 젓갈씩 나물들을 맛본 후 큰 대접에 밥을 넣고 나물을 넣어 된장에 쓱쓱 비벼 한 술 뜨면 건강한 포만감이 느껴지는 게 그 또한 재미있다. 식후에 내주는 곰보배추효소차로 즐거운 마음으로 잘 먹은 한 끼에서 약이 되는 밥상으로 격이 올라간다.
‘비수구미’, 밥상 물린 후 청각·촉각 만족
1,000여 평 너른 마당에 한쪽으로는 캠프파이어, 바비큐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텐트도 빌릴 수 있다. 식당 옆으로 자리한 카페 ‘꿈틀’에서는 라바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아이들을 모두 출가시킨 부부에서부터 아직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기를 키우는 부부, 이제 학부형이 된 부부, 세 자녀의 연이은 대학입시라는 긴 터널을 막 벗어난 부부, 이렇게 네 쌍의 부부와 그들의 자녀가 우리 일행이었다. 각 부부 당 한 잔씩 커피를 들고 식당 마당 정원에 자리한 테이블에 앉아 아기 키우는 이야기, 아이 학교 보내는 이야기, 손주 보는 이야기 등 귀가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다.
우리들이 식사하는 내내 유모차에서 자고 있던 20개월 된 조카가 막 깨어 배고프다 칭얼거리자 ‘비수구미’의 임승규 대표님은 쟁반에 닭죽을 담아내 주신다. 식혀 주라고 닭죽 담긴 그릇 외에 빈 사기그릇 하나에 담긴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다. 그 마음을 아는지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 조카, 향기로운 커피 향, 청량한 공기, 개구리를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 둘, 너무도 그리웠던 한국의 음식을 실컷 먹었다며 행복해 하는 사촌동생, 가족들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열심히 담는 흰머리 그득한 우리 아빠까지 7월의 어느 푸르른 날, 두 돌쟁이부터 고희를 바라보는 할아버지까지 ‘행복하게 기억될 추억’이 각자의 가슴에 각인되는 순간이다.
바로 이 곳 ‘비수구미’에서 말이다.
위치 수지구 고기동 596-3
문의 031-261-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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