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살아났어요” 현정승집도 재현

시 읊고 거문고 타는 조선시대 복날 풍경

지역내일 2015-07-16

미술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림이 살아서 말을 건네는 특별한 경험 한 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화가를 지배했던 ‘그것’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이렇게 그림이 말 하는 것을 넘어서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살아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초복을 이틀 앞둔 7월 11일 부곡동 ‘청문당’에서는 강세황이 그린 ‘현정승집도’ 재현 행사가 열렸다. 286년 전 청문당 복달임 잔치. 그 현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복날의 옛 풍경과 현대 풍경이 공존했던 그곳으로 달려갔다.


청문당 - 조선후기 실학이 성장한 곳
조선시대 복날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청문당’에 찾아가는 길은 쉽지도 멋지지도 않다. 안산지역사연구모임 회원들의 노력으로 버스정류장 이름이 ‘청문당입구’로 바뀌지만 아쉽게도 청문당 주변은 어수선하기만 한다.
수리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개천 옆으로 기름진 논이 펼쳐졌던 옛 마을 풍경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주유소와 식당, 작은 공장이 작은 농로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있고 흙먼지 날리는 그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보면 나지막한 담벼락이 청문당을 알린다.
청문당은 진주유씨 16세손 유시회(1562~1635)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는 전통가옥이다. 조선 후기 진주유씨는 기호남인의 3대 집안으로 손꼽히며 남인들의 교류의 장소이자 실학의 산실이 되었다. 2000년 청문당이 경기문화재로 지정된 후 이앟리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은 날로 기록될 정도로 앞마당과 사랑채 앞 마당, 뒷 마당까지 관람객으로 가득 찼다.
사랑채 마당에는 부채 그림그리기 체험공간이 마련되었고 우물이 있는 안마당에는 구경꾼들을 위한 차양막이 펼쳐졌다. 286년 복날 풍경을 담기 위한 카메라까지 줄지어 늘어선 모습에 청문당에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현정승집도 - 286년 전 안산의 복날  풍경
‘현정승집도 재현’ 행사는 대금 산조와 거문고 단소 병주로 분위기를 잡은 후 변영섭 문화재청장의 ‘현정승집도’ 설명으로 시작됐다.
표암 강세황 연구가 변 청장은 “세계역사에서 그림과 글 그리고 그 현장이 이렇게 오랫동안 보존되어온 사례는 없다”며 “현정승집도에는 유경종, 유경용, 유겸, 유성 등 진주유씨일가와 강세황, 강세황의 아들 강인과 강완 그리고 인근지역 선비들, 머슴 귀남 등 11명이 등장한다”고 소개했다. 강세황에게 이날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줄 것을 부탁한 후 그 아래 각자가 지은 시를 적은 것이 현정승집도다.
변 청장의 해설에 이어 대청마루에는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선비와 아이들이 등장했다. 재현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머슴 귀남은 그림 속 등장인물들을 소개했고 아홉 살 강완(강세황의 셋째아들) 어른들 앞에서 글을 읽어 칭찬을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있을 법한 일이다. 바둑을 두며 훈수를 하는 상황도 그려졌다. 이어 이날의 느낌을 각자 시로 지어서 낭송하며 모임을 마무리했다.
극단 이유가 충실히 재현해 낸 모습은 당시의 풍경을 느끼게 했다. 재현행사를 관람한 윤미영(사2동 거주)씨는 “오늘 날씨가 더워서 이렇게 더운날 옛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복날을 지냈는지 공감이 간다”며 “무엇보다 옛 어른들은 생활 속에서 그림도 그리고 시도 지으며 지내셨다니 문화가 생활 속에 녹아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아주 부럽다”고 말했다.


다시 청문당-오늘날 우리의 모습
재현 행사가 끝난 후에는 청문당을 어떻게 가꿔 나갈지에 대한 집단 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역사적인 장소 주변이 정리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오랫만에 의미 있는 행사를 마련한 데 대한 감사” “앞으로 안산의 문화를 잘 계승 발전시켜 나가자”는 다짐의 약속들이 이어졌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참석자들은 2015년 판 복달임 행사를 진행했다. 행복예절관에서 준비한 떡과 시원한 차, 과일을 먹으며 참석자들은 한 낮 더위를 달랬다. 286년 전 복달림 행사의 주인공이 모두 남성이었던 것에 비해 요즘 행사의 주인공은 여자와 아이들. 남성들의 전용공간이었던 사랑채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아이들과 소감을 나누는 엄마의 모습에서 시간의 변화가 실감된다.
현정승집도 재현행사는 안산학연구원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었다. 경기문화재단의 후원과 안산시 후원을 받아 재원을 조달했으며 문화를 사랑하는 안산사람들이 힘을 보탰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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