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3년, 나도 공부 욕심 내보며 180도 달라져 보자’ 안지혜양은 입학식 날 입술을 깨물었다. 일단 휴대폰부터 2G폰으로 바꿨다. 시간을 촘촘하게 보내기 위해 일부러 학교 기숙사를 택했다.
국제중에서 그는 색다른 경험, 공부 좌절이라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맛보여 중학시절을 보냈던 터였다. “토플 만점자, 수학의 천재 같은 떠르르한 친구들과 한 교실에 경쟁하다 보니 주눅이 들어서 중학교 3년 내내 공부를 소홀히 했어요. 고교생이 됐으니 교과 공부든, 수행평가든, 교내 경시대회든 뭐든 열심히 해서 내 한계를 뛰어넘자 다짐했지요.”
매일 30문제 풀며 수학 트라우마 극복
기숙사 기상은 오전 6시. 후다닥 일어나 텅 빈 자습실 자리를 꿋꿋하게 지켰다. 시끌벅적한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이어폰 끼고 수학 문제를 풀었다. “수학은 벼락치기가 불가능한 과목이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30문제 넘게 풀었어요. 수학 개념, 공식을 혼자서 증명해 보고 도저히 풀리지 않는 대목은 수학선생님께 SOS를 보냈습니다.”
그가 보여주는 십여 권의 수학 연습장에는 수학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과 싸운 치열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노력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과목별로 효과적인 공부법을 터득하게 됐다고.
“무작정 외우는 걸 질색하는 스타일이라 모든 과목을 100% 이해하고 머릿속에 공부 내용이 명쾌하게 그려질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어요.” 학습플래너는 주간 단위로 작성하며 1일 공부 과목과 분량을 꼼꼼히 체크하며 빈틈없이 공부하려 애썼다. 성적은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영어말하기대회 예선 탈락 후 1등상으로 역전하기 까지
교내 경시대회도 놓치지 않고 참여했다. 특히 2년 연속 참가한 영어말하기 대회를 통해 자신이 부쩍 성장했다고 고백한다. “어렸을 때 4년간 영어권 나라에서 살았고 국제중 출신이라 내심 영어 말하기는 자신 있었는데 예선에서 탈락했어요. 충격이었죠. 고민 끝에 심사를 맡았던 선생님을 찾아가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조심스럽게 여쭤봤어요.”
자신감 없는 단조로운 말투가 실패 요인이라는 걸 깨닫고 1년 뒤 재도전에 나섰다. 공들여 대본 쓴 후 달달 외웠고 억양, 표정, 동작 하나까지 철두철미하게 연습했다. 친구들 앞에서 리허설도 여러 번 했다. 결과는 1등.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하는 법, 간절히 노력해 목표를 이루는 과정, 무엇보다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는 내 안에 있다는 걸 배웠죠.”
안양이 지독할 정도로 자시 자신을 몰아 부치는 건 외교관이란 꿈이 주는 에너지 때문이다.외교관을 동경하는 청소년들이 멘토로 꼽는 김효은 현직 외교관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간절한 꿈 덕분이었다.
“정성껏 손편지를 써서 보냈더니 이메일로 바로 답장을 주셨어요. 외교관 직업에 대해 평소 궁금했던 점을 메일로 여쭤볼 수 있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직접 만나는 행운까지 얻었어요.”
덕분에 우리나라 주도로 출범해 서울에 본부가 있는 국제기구 GGGI(글로벌국제성장기구)를 견학하고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총성 없는 외교 전쟁터에서는 정치외교 전공 뿐 아니라 경제, 기술, 법학 같은 한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들었어요, 국제 외교는 문서로 공식화되기 때문에 말 보다 글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외교관 꿈 향해 직진
외교관의 필수덕목인 말솜씨, 글솜씨를 갈고 닦기 위해 학교 토론동아리 활동도 열심이다.
“1~2시간 토론을 위해 10시간 넘게 준비해야 할 만큼 규율이 엄한 동아리죠. 온갖 자료 검색해 논리를 세우고 입론서 쓰며 설득력 있게 말하는 노하우를 강도 높게 익혔습니다. 실력이 쟁쟁한 선배들에게 많이 배웠죠.”
아시아사랑나눔 봉사단체로 통역 봉사를 틈틈이 나가며 뜻밖의 행운을 거머쥐기도 했다. “고등학생은 본래 허드렛일 봉사를 주로 해요. 행사 당일 갑자기 통역 담당자가 펑크를 냈는데 대학생 언니가 내게 기회를 주더군요. 무조건 해보겠다고 했죠. 초긴장 속에서 외국인 청소년 80여명을 앞에 두고 80분간 강연 통역을 맡았어요.”
통역 데뷔 무대에서 야무지게 제몫을 해내는 안양을 눈여겨 본 봉사 단체 총재는 그 뒤로 여러 차례 비공식 만찬 자리의 통역 기회를 주었다. “내게는 꿈같은 기회였죠. 전문 통역사 보다는 고교생 통역사를 내세워 한국을 효과적으로 홍보하며 만찬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고 싶은 총재의 의중이 담겨있었죠.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키르기스스탄 친구도 사귈 수 있었답니다.”
뚜렷한 꿈이 고교생을 얼마만큼 성장시키는 지 안양의 고교생활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공부할 때는 자존심, 오기, 그리고 공부 감옥에 스스로를 가둘 수 있는 동기부여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한마디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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