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에니어그램 성격유형론을 공부하는 파주시 주부들의 동아리다. 에니어그램은 우주를 설명하는 상징으로 오랜 옛날부터 비밀로 전해오다가 20세기 초 G.I. 구르지예프가 세상에 전파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성격유형론으로 알려져 있다.
‘나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에니어그램 강사인 도임방주씨를 초빙해 2011년부터 매주 화요일에 공부하고 있다. 목요일에는 한국사, 가족 세우기, 글쓰기, 미술사 등 다양한 주제로 배운다. 회원들은 삶의 고비에서 만난 절박한 물음을 에니어그램으로 하나씩 풀어왔다.
왜 남의 애보다 내 아이에게 함부로 할까
‘나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 시작된 건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끊이지 않는 물음이 있어서였다. 2010년 즈음 도은주씨는 ‘왜 남의 아이에게는 잘 하는데 내 애한테는 함부로 할까’를 고민했다. “남한테도 잘해야 되고 우리 가족한테도 잘하는 게 맞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힘든 거죠.”
심리학을 함께 공부해보자고 에니어그램 강사를 모시고 다섯 명의 주부들이 처음 시작했던 모임이었다. 고민 하나가 풀리면 또 다른 고민이 생겨났다.
도은주씨는 “공부하면서 아이나 남편 문제에서 관대해졌어요. 이제는 남한테도 가족한테도 잘 하게 됐는데 나한테는 어떻게 대할지가 남았네요. 왜 나는 나한테 잘하지 못하나, 이렇게 물음이 오는 거죠.”
부모와 자녀, 배우자와 관계 풀기
나와 부모, 부모인 나와 자녀, 아내와 남편 사이에 얽힌 문제들을 절실하게 풀고 싶을 때 에니어그램은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곽지은씨는 아이와 소통을 위해 에니어그램을 공부했다. 7살이 되면서 달라지는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열쇠는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제가 먼저 보여줬던 거죠. 그동안 나만 인식하지 못했을 뿐 아이만 나쁘다고 다그쳤던 나를 보게 됐어요.”
4년이 흐른 지금 아이와 관계는 파란불이다.
“대화를 많이 하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어요. 어릴 때 제 모습과 비교하면 아이가 더 낫던걸요.”
분명 똑같은 아이인데 예전에는 걱정되던 모습이 이제는 스스로 잘 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지켜보게 됐다. 엄마가 먼저 내면 여행을 시작한 덕분이다.
가족 아닌 내 문제 직면하면 풀려
김환이씨는 주부로서 가정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에니어그램을 공부했다.
“전에는 주부와 엄마의 역할을 잘 하고 싶었고 열심히 했어요. 어느 순간 그 역할이 힘들어지고 가족들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죠. 제 스스로 빠져나와야 되는 걸 모르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얽매여 있었어요. 그게 갈등으로 커지고 가정불화를 만들었죠.”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기보다는 받아들이지 않는 가족을 탓했다는 김환이씨.
“내 어려움이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찾아보니 어린 시절부터 풀어지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어요. 처음에는 부모님한테 뭔가 사과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공부를 통해서 누구에게도 원망을 돌리지 않고 소화할 수 있는 나로 바뀌었어요.”
문제를 직면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피하거나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풀어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나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파주시 동아리로 소속돼 지원을 받고 있다. 모임 장소는 금촌 주공 5단지 관리사무소 2층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다.
문의 도은주 010-8872-8694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나와 함께 떠나는 여행’ 회원들과 풀어보는 부모 고민 QnA
Q. 무기력한 중학생 아이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A. 아이 유형 파악하고 대화로 풀어가세요.(김환이씨)
중학교 3학년 아들이 무기력해 고민하던 때가 있었어요. 학습이나 장래 고민도 자꾸 제가 주려고 했죠. 내 아이만의 성격 유형을 알면 도움이 돼요. 아이가 좋아하는 것 중심으로 대화를 하다보면 관심사를 알고 꿈을 찾아 가게 되던걸요.
Q. 엄마 차지하려는 아이들 다툼으로 힘들어요.
A. 각자의 마음 알아주는 게 약이죠.(배영자씨)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저도 공부하기 전에는 아이들을 많이 밀어냈어요. 하지만 안아주는 것도 타이밍이 있잖아요. 사춘기에 접어들면 엄마 손에서 떨어져나가니까요. 아이들의 마음을 각각 알아주는 게 중요해요.
Q. 수학 못하는 아이의 엄마 역할은?
A. 아이의 선택과 결정 존중하고 기다려주세요.(곽지은씨)
3학년이 돼서 아들의 수학 점수를 보니 마음이 급해졌죠. 문제집을 하루 한 장씩 풀자고 하니 아이는 한 쪽만 풀겠다고 고집 부려 우울했어요. 그래도 아이를 이해하고 존중했더니 몇 달 후 한 장을 푸는 날이 오더라고요. 처음에 한 장만 고집했다면 지금도 싸우고 있었을 것 같아요. 아이 얘기를 끝까지 듣고 이해하면서 극복하게 도와주세요.
Q. 형제가 싸울 때 엄마는 어디까지 개입하나요?
A. 따로 들어주고 안아주세요.(윤소라씨)
10살, 12살 형제를 키우고 있어요. 전에는 제 틀 안에서 큰애를 혼내고 작은애는 마냥 귀엽다고 봐줬더니 어느 순간 형을 무시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죠. 지금은 따로 불러서 얘기를 들어 주다가 안아줘요. 그러면 둘 다 감정이 수그러들어요.
Q. 외동아이 사회성 고민돼요.
A. 스스로 하도록 맡기고 지켜보세요.(김정순씨)
외동으로 자란 7살 딸아이는 너무 잘해주니 자기가 대장인 줄 알아요. 밖에 나가서 힘든 일이 생기면 고자질을 하고 의지를 많이 해요.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맡기고 옆에서 지켜보면서 간섭하지 않으니 자신감을 얻던걸요. 엄마가 너무 끼고 받아주는 건 좋지 않아요.
Q. 아이가 울고 들어왔을 때 대처법은?
A. 사건 정황보다 아이 마음 먼저 알아주세요.(도은주씨)
아이가 울고 들어오면 부모들은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어디 다쳤어?” 하면서 어떤 일인지 캐물으려고 하죠. 왜 그렇게 속상했는지 아이의 마음 상태를 먼저 돌아봐주세요. 당황한 감정을 추스르고 아이를 먼저 보면 물어보지 않아도 아이가 스스로 말하고 풀어 나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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