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1996년 나는 아직 개념도 생소했던 영어유치원에서 1~6단계로 되어 있는 수입 영어코스 북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 날 진도가 일찍 끝나면 아이들에게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추가 자료를 찾고 있던 중 학원데스크 뒤쪽에 영어학원임을 표시하기 위해 전시용으로 놓여있던 영어동화책 몇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부터 한 권씩 꺼내가 5분씩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근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코스 북을 할 때는 딴 짓만 하던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스토리를 들었다. 영어 스토리를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영어동화책으로 가르치는 것에 마법처럼 빠져 들어갔다. 서울에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국내최초 영어동화책 전문서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서 ‘The very hungry Caterpillar by Eric Carle’을 사오면서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책도 있구나’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2000년 나는 무모한지도 모르고 영어전문 읽기 센터를 차려버렸다. 학원도 아니고 서점도 아니고 영어동화책 읽기센터가 무엇인지 학부모들이 생소해하기는 말할 것도 없고 나 자신도 운영해가면서 배워야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학생들이 재미있어했고 실력도 자연스럽게 늘어서 힘이 났다. 결국 10여년이 지났을 때는 보통 대형학원 크기만큼의 영어도서관으로 커졌고 마치 공공도서관 같은 모습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다. 여기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환경도 아니고 EFL(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환경이기 때문에 영어동화책에 뭔가 체계화된 coaching system이나 teaching이 결합해야 했다. 세 달에 네 권씩 선생님이 영어책을 가르치는 program을 병행했다.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빌려갈 수 있었고 컴퓨터로 이해력 테스트도 하게 했다. 그런데 EFL 환경에서는 네 권의 책을 너무 자세히 분석하듯 하는 워크북보다 한 권당 간단한 워크시트로 하며 많은 책으로 input 양을 늘리는 것이 훨씬 실력을 빨리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방학 때 특별반으로 선생님과 30~40권을 읽어내는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훨씬 빨리 느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 많은 책을 학부모 부담으로 사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학부모에게 사지 않도록 하고 학생들이 레벨 별로 몇 십 권씩 선생님과 수업 중 읽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첫째로 완만하게 올라갈 수 있는 각 레벨 별 30~40권 정도의 책 리스트가 있어야 했다. 각 책의 권수도 학생 수만큼 갖춰야 했고, 나누어 주고 걷는 시스템도 찾아야 했다. 미국 3학년 레벨까지 무리 없이 가기 위해서 각 레벨 30~40권의 리스트를 찾으려면 결국 전체 20개의 레벨 총 800여권이상의 리스트, 또 각 책 타이틀당 13권씩(선생님 것 포함)이 있어야 했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모두 13권으로 맞추고 책 리스트를 재배열했지만 결국 국내에 있는 책 리스트로는 부족해 전 세계 책 박람회를 찾아 다녀야 했다. 유명한 작가들의 책도 좋지만 leveled literacy 개념이 고려되어 언어선택이 완만하면서도 EFL 환경의 학생들에게 흥미로운 책이 필요했다.
다음 작업은 이 리스트를 각 레벨에 다양한 장르로 easy / appropriate / challenging 한 책들을 섞어 넣어 학생들이 무리 없이 자기레벨을 소화해 내면서 다음 레벨로 가도록 했다. 레벨에 맞지 않는 책은 빼고, 더 좋은 책이 나오면 넣고 책 리스트가 완성되는데 3년이 걸렸다. 지금도 더 좋은 리스트를 향해 끊임없이 현장의 강사진과 연구부가 노력하고 있다.
Worksheet도 책의 내용을 자세히 묻는 질문보단 간단한 graphic organizer 방식으로 간소화하고 차라리 Dream레벨은 read aloud, Genius레벨은 retelling이나 presentation 방식으로, Global 레벨은 debate나 discussion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됐다.
Beyond Reading
개인적으로 한국 어린이영어교육의 흐름을 두 시대로 나눈다면, 영어동화책으로 많은Authentic English의 input이 가능한 시절을 modern English education이라면 체계적인 영어동화책(Leveled Literacy Intervention)을 기반으로 한 거침없이 쓰고 말하게 하는 영어교육을 post-modern English education 시대라고 하고 싶다.
현재 라시움에서는 읽은 내용을 많이 정리해서 말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토론하고, 비판하는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라시움의 뜻이 A place of literature, art, and philosophy인 것처럼 다루는 주제의 영역도 굉장히 다양화돼있다.
유기농 영어
나는 연구실장으로 최근 4년 동안 외국에 있으면서 한국을 오가며 라시움 프로그램을 기획 총괄했다. 살았던 곳은 유기농 라이프스타일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으로, 아침마다 그린 주스를 먹고 주말이면 Farmer’s Market에 가서 거칠고 못생겼지만 신선하고 맛있는 채소들을 사왔다. 라시움 영어도 좀 거칠지만 신선하고 재미있으면서 실력도 느는 프로그램이길 바랐다. 거침없이 많이 읽고 쓰고 말하는 유기농영어 말이다.
단어외우고 문제 풀고 시중교재나 외국교과서라고 두껍게 들고 다니는 버거운 교재를 쓰면 편하긴 하다. 또한 워크시트도 제본하면 관리하기도 쉽다. 하지만 다음 책은 무엇일지 잔뜩 궁금해 하게 한 후 책을 나눠주고, 다양한 방식의 워크시트로 학생들이 식상하지 않고 늘 새롭고 거칠게 단련되는 기쁨을 포기할 수가 없다. 거칠지만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건강한 영어교육이 유기농 영어교육이기 때문이다.
20년 전 영어유치원에서 만나 영어 리딩센터까지 와서 배우고 영어도서관에서 책을 빌려가던 아이들이 이제는 성년이 되었다. 지금도 만나면 많은 아이들이 도움이 많이 되었고 영어는 걱정 없다고 말할 때 제일 큰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거칠지만 건강한 영어교육 라시움이 되길 바란다.
Susan Woo 라시움러닝 영어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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