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_ 요리하는 우리 집 남자들의 이야기
요리하는 남자 전성시대… 오늘 뭐 해줄까?
최근 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 ‘요섹남’이 대세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무엇이 떨어진다고 하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요즘은 요리에 관심을 갖고 직접 요리를 하는 남성이 대접받는 시대가 됐다. 아내를 위해, 엄마를 위해 부엌을 점령한 남자들. 요리하는 우리 집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리포터 공동취재
신정동 김은미씨 세 아들 제현, 제영, 제혁군
“엄마 아빠 결혼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벽 4시, 사내아이 셋이 살금살금 부엌으로 들어선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고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즐겁다. 김은미씨는 듬직한 아들 3형제를 두었다. 어릴 때부터 우애 좋게 지내 고마웠단다. 어느 날 새벽, 일찍부터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깨워 나가보니 식탁 위에는 샌드위치가 하얀 접시 위에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다.
의아해하는 엄마, 아빠 앞에서 3형제는 ‘엄마, 아빠 결혼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크게 노래를 불렀다. 알고 보니 그날은 결혼기념일! 샌드위치는 으깬 감자와 계란도 흰 자와 노른자를 나누어 색을 내었고 소금에 절인 오이로 간도 맞춰 감칠맛이 났다.
평소 간식을 잘 만들어주는 김은미씨 옆에서 유심히 지켜본 둘째 아들의 지휘로 3형제가 합심해 그들만의 방식으로 결혼기념일을 축하해준 것. 마냥 어린 줄 알았던 아들들이 기특하게 자랐구나 하는 생각에 김은미씨는 목이 메었단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다섯 가족이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하자 그제야 창문 너머로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염창동 이현숙씨 남편 신중헌씨
“여보, 편안한 여행하고 와~”
이현숙씨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친정 부모님 모시고 상해 여행을 계획했는데 학교 가는 아이들을 먹이고 챙길 게 답답했단다. 평소 자상한 남편을 믿긴 하지만 3박 4일의 기간이 부담스러웠다. 배웅하는 남편과 불안하게 공항에서 헤어졌고 상해에서도 일정을 마치는 저녁이면 SNS로 늘 뭘 먹고 있는지부터 물었다. 하지만 전해진 사진을 보곤 걱정 털고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즐겁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남편 신중헌씨는 샌드위치, 볶음밥, 된장국 등을 척척 만들어내 아이들을 잘 먹이고 있었다. 딸 둘과 일이 바빠 밀렸던 대화도 나누며 요리를 만들다보니 딸들과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단다. 아빠 최고라고 아이들이 꼽은 요리는 ‘매운 언양식 불고기’였다. 고기를 다져 매콤하고 달콤한 양념을 한 다음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구워 밥반찬으로 먹기 알맞게 만들었다. 어릴 때 먹어본 기억이 좋아 딸들에게 꼭 한 번 해주고 싶었다는 남편의 말에 일주일간 여행을 가도 걱정이 없겠다면서 이현숙씨는 웃는다.
화곡동 홍정은씨 남편 김태원씨
“요리초보 남편의 제육볶음은 감동 그 자체!”
맞벌이를 하는 홍정은씨는 깨가 쏟아지는 신혼이다. 결혼 직후 남편이 일주일 정도 휴가를 얻은 적이 있었는데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제육볶음을 해놨더란다. 남편은 결혼 전 요리라고는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조선시대 남자. 처음 해본 요리라는 남편의 수줍은 고백치고 제법 잘 차려진 식탁에 깜짝 놀랐다고. “남편의 고생담(?)을 듣고 나니 고맙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어요.”
남편은 난생 처음 도전하는 제육볶음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가며 이사람 저 사람의 레시피를 짜깁기했다고 전한다. 마트를 몇 바퀴 돌아도 ‘맛술’이라는 양념이 보이질 않아 옆에 계신 아주머니께 여쭤봤더니 ‘맛술’이 아닌 ‘미림’을 골라 주셔서 당황했었다고.
정은씨는 “처음 받아보는 남편의 밥상인데다 고생하며 만들어 준 요리라 감탄을 연발하며 맛있게 먹어 줬다”고 전한다. “이후 남편이 자신감을 얻었는지 된장찌개며 김치찌개도 만들어 주고 가끔씩 스파게티도 하는데 실력이 점점 늘고 있답니다.”
신도림동 김령옥씨 남편 장민호씨
“결혼 후에도 변하지 않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요~”
김령옥씨는 결혼 전 출근을 못할 정도로 심하게 위가 아팠던 적이 있었다. 당시 교제 중이던 남편 장민호씨가 밖에서 파는 죽을 먹이고 싶지 않다며 누님에게 달걀죽 만드는 법을 배워왔더란다. “아시다시피 죽이란 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만들기는 꽤 까다롭잖아요. 행여 뜨거울까 후후 식혀서 먹여주고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해가며 살뜰히 챙겨주더군요.”
언젠가 감기몸살로 꼼짝 못하고 누워있을 때 뜨끈뜨끈한 쌍화탕을 가슴에 꼭 품고 와서는 얼른 마시라며 건네주던 일도 생각난다고.
남편은 결혼 후에도 직접 육수를 우려 해물탕을 끓이고 두부김치, 덮밥, 비빔국수, 찌개류 등 별별 요리를 뚝딱 해낸다. 매년 아내의 생일 때마다 잊지 않고 미역국을 끓여주는 건 물론, 맞벌이하는 아내를 위해 평소에도 간단한 식사는 기꺼이 차려준다고.
“남편은 가족에게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에요. 말보다 먼저 행동으로 표현해주는 남편이 고맙고 지금껏 변함없는 그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신정동 김은정씨 남편 노정현씨
“양념 최소화하고 재료 본연의 맛 살려요”
김은정씨의 남편 노정현씨는 매주 주말이면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대학시절부터 요리를 했다는 남편은 결혼 후에도 자신의 취미생활을 이어갔다.
원래 남편이 좋아하는 튀김, 볶음, 면 요리 위주로 요리를 해 함께 먹다가 어느 날 문득 “나 밥 먹고 싶어”라는 부인의 요구에 국과 밥 위주의 한식에 도전하게 됐다. 이후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이 아닌 가족이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무용을 전공하는 중학생 딸 영서를 위해 다이어트 음식을 만드는데도 일가견이 생겼다. 몸매관리에 도움이 되도록 닭과 소고기, 두부와 야채를 재료로 소금, 간장, 설탕, 고춧가루 등을 사용하지 않고 맛을 내는 것이 요리의 핵심. 은정씨는 남편의 요리로 딸의 다이어트가 성공적으로 이뤄져 뿌듯하다. “처음에는 간이 없어 잘 못 먹겠더라고요. 그랬더니 남편이 재료에 신경을 많이 쓰고 레시피도 나름대로 연구해 이젠 꽤 괜찮은 다이어트 식단을 구성하더군요.”
여의도동 안은향씨 남편 김세규씨
“음식 맛은 요리하는 사람의 기분에 좌우되죠”
안은향씨의 남편 김세규씨는 20대 때부터 캠핑요리를 즐겨했다. 일하는 부인을 대신해 시간적 여유가 있는 세규씨가 어린 두 딸의 끼니를 챙겨주면서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은향씨는 회사일로 바쁜 자신을 대신해 아이들을 챙겨주는 남편이 항상 고맙다.
“특별하고 거창한 요리보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파게티, 카레, 자장면 같은 요리들을 자주 해줘요. 요리 후 쌓이는 설거지도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처리하는 편이에요.”
세규씨는 색다른 요리를 접하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여러 가지 관련 레시피를 구해 꼭 집에서 만들어 볼만큼 요리에 열정이 가득하다. 고3, 고1인 두 딸을 위해 간식거리도 만들고 최근에는 연잎밥, 방울토마토 장아찌, 콩 찹쌀로 만든 비스킷, 과일청까지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음식 맛은 요리를 하는 사람의 기분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아요. 남편이 기분이 좋을 때 음식을 하면 먹는 우리도 맛있게 먹고, 짜증내고 기분이 안 좋은 채로 음식을 하면 먹는 사람도 똑같이 느끼죠.”
신정동 최옥란씨 남편 이창근씨
“음식이 맛이 없을 땐 정성이 부족한 거죠”
최옥란씨 남편 이창근씨는 평일에는 밑반찬을, 주말에는 TV에 출연한 스타 셰프들이 만든 특선 요리를 식탁에 내놓는다.
남편이 처음부터 요리를 좋아한 건 아니다. 부인이 일을 하게 되면서 집안일을 버거워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 설거지나 빨래 같은 것을 도와주다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요리를 도맡아 하게 됐다.
“처음엔 재료와 양념을 일일이 일러주었어요. 그러면 재료를 사다 밑손질도 하고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더라고요. 이제는 TV 요리 프로그램을 흘러보지 않고 할 수 있겠다 싶은 건 계획을 세워 요리를 하니 지금은 아내인 저보다 요리를 더 잘 해요.”
술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북엇국도 끓여주고 생일날에는 두 딸들과 함께 잡채며 갈비찜, 무쌈말이도 내놓는다.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대충 밖에서 사먹자는 부인의 의견에 “집에서 먹자”며 냉장고를 뒤져 후딱 저녁상도 차린다. “남편은 음식이 맛이 없을 때는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며 요리에는 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답니다.”
목동 서인숙씨 아들 김영수군
“스타 셰프 못지않게 요리에 도전해요~”
가족들을 위해 어떤 요리든 뚝딱 만들어내는 김영수군은 학창시절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서인숙씨는 “학교에서 요리 관련 수업이 있을 때면 담을 그릇을 먼저 생각했고, 외식을 하고 나면 그 음식을 집에 와서 만들어 볼만큼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한다.
안양에 있는 조리 관련 고등학교를 가고 싶었으나 서울권 학생은 지원이 되지 않았고 서울에서 갈 수 있는 요리 관련 특성화고는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일반고로 진학해 재수까지 해서 IT 관련 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본인의 적성이 요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영수군은 이제야 엄마의 지지를 등에 업고 요리사의 꿈에 도전한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거기서 본 요리를 집에서 해주는 거예요. 이제야 영수의 꿈을 인정하고 지지하게 됐습니다.”
영수군은 요리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가족이 맛있게 먹어줄 때 행복하단다. 요즘 닭요리에 재미를 붙여 후라이드부터 깐풍 치킨, 허니치킨, 닭 탕수육 등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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