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컬러링에 빠진 사람들 ‘해뜨는 민화’

화려한 민화로 삶을 색칠하다

지역내일 2015-04-30

스케치 실력이 없어도 맘에 드는 색칠만으로 멋진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컬리링 열풍이 뜨겁다. 한국판 컬러링의 원조가 민화로 선 긋고 채색하는 기초만 익히면 그럴듯한 작품을 뚝딱 완성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송파에서 활동중인 민화동아리 ‘해뜨는 민화’가 컬러링 열풍과 맞물려 인기 고공행진중이다.

 거여동에 위치한 빌딩의 지하 1층. 서너 평 남짓한 방 안에 들어서자 모란, 산수도, 십장생도 화려한 작품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테이블에 예닐곱 명이 둘러앉아 분주히 붓질을 한다. 15년 경력의 전문 작가부터 민화에 입문한 지 6개월 남짓의 초보까지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배움’을 나눈다. 

민화


누구나 그릴 수 있는 문턱 낮은 민화
 회원들의 그림 이력은 각양각색. 수십 년간 서예를 하다 화려한 색상의 민화에 반해 새롭게 배우는 서정교, 정인향씨를 비롯해 오랫동안 유화를 그리다 우리 옛 그림인 민화에 반한 김미정씨, 그림에 문외한이었지만 처형 권유로 붓을 든 유일한 청일점 이현우씨 등 사연도 다양하다. 동아리 공간은 24시간 개방되기 때문에 언제든지 와서 그릴 수 있다.
 민화 동아리의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파도서관에서 민화를 배우던 오경숙 회장, 이금란, 이희순 총무 등 7명이 뜻을 모아 조촐한 모임으로 시작했다. 매월 회비 1만원만 내면 무료로 그림을 배울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회원이 24명으로 불었다. 현재는 대기 인원만도 여럿이라고 귀띔한다.


입문과정부터 고급기술까지 1:1 지도
 오 회장이 갓 입문한 초보자를, 이 총무가 중급 이상의 고난도 기법을 도제식으로 지도한다. “컬러링과 마찬가지로 민화도 밑그림 도안이 많기 때문에 맘에 드는 걸 골라 한지를 대고 본을 뜨면 되니까 스케치 실력이 없는 초보자도 쉽게 그려요. 물감의 농도를 조절하거나 색을 섞어 맘껏 칠하면 되니까 쉽죠. 채색에 집중하면서 맛보는 힐링, 그럴듯한 작품이 손끝에서 나오는 기쁨 때문에 더욱 몰입하게 됩니다”라고 오 회장이 설명한다.
 옅은 색에서 짙은 색을 내는 그러데이션 기법인 ‘바림’, 돌가루에 색을 입힌 분채를 활용해 깊은 색감을 내는 노하우, 그림을 완성한 후 배접(종이나 헝겊을 여러 겹 포개 붙임) 기술까지
골고루 배울 수 있다.
 “민화는 매력적인 장르입니다. 십장생, 화조도, 문자도 같은 전통 민화 뿐 아니라 작가의 개성을 담은 과감한 스케치, 색감이 세련된 현대 민화도 멋지죠. 민화가 좀 더 대중화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힘들여 터득한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합니다”라고 이 총무가 말한다. 수준급 솜씨를 갖춘 몇몇 회원은 외부 강의도 나간다. “개인 화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고급 기법을 다양하게 배울 수 있는 것도 이곳의 장점”이라고 정인향씨가 귀띔한다. 
 특히 한지 뿐 아니라, 나무, 천 등 다양한 소재에 응용이 가능한 것도 민화의 장점이다. 부채에 민화를 그려 선물하거나 티셔츠에 독특한 문양으로 개성을 뽐내는 등 실생활에 활용 범위가 폭넓다. “얼마 전 아들을 결혼시켰는데 며느리가 일본인입니다. 일본 사돈한테 내가 직접 그린 문배도(문에 붙여 잡귀를 막는 그림)를 선물했더니 무척 기뻐하더군요”라고 이현우씨가 경험담을 들려준다.
 동아리의 ‘왕언니’인 서정교씨(73)는 “색칠에 집중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세필로 섬세한 작업을 하면서 손과 머리를 계속 써야 하니까 치매 예방에도 좋습니다”라며 예찬론을 펼친다.


민화 그리며 만드는 ‘내 일’
 송파구평생학습센터 우수동아리로 해마다 선정되면서 회원들은 더욱 신이 났다. 석촌호수축제, 송파마을예술창작소 아트마켓에  참여하며 문화 비즈니스의 가능성도 타진중이다. “야외에서 부채에 민화그리기 가족 체험을 진행하거나 미니 액자 같은 생활소품을 판매해요. 무슨 그림 어떤 소재에 그리는 걸 좋아하는 지 일반인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죠. 특히 민화소품을 외국인들이 좋아하더군요”라고 이희순 총무가 귀띔한다.
 지난해 12월에는 인사동 갤러리에서 작품전시회를 열며 ‘민화 작가’로서의 뿌듯함을 만끽했다. 올해는 송파구청 갤러리에서 두 번째 전시회를 준비하며 한껏 들떠있다.
 “그림이 좋아 취미로 생각했는데 전시회까지 열고 아트마켓에 참여하며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에게 그림도 가르쳐요. 몇몇 회원은 공모전에 당선되고 출강까지 하지요. 그림을 통해 꾸준히 성장해 나가는 기쁨을 함께 맛볼 수 있어 좋아요. 열심히 그리다보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기겠구나 하는 ‘자기 성장’의 기대감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줍니다”라고 오 회장이 솔직하게 말한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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