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책과 함께 할 것 같은 사람들 중 하나, 학교 선생님들이다. 하지만 책이 많은 공간에서 일을 하는 것 뿐, 선생님들도 교과서 아닌 책을 보려면 일부러 짬을 내야만 한다. 혼자서는 잘 읽히지 않는 책, 그래서 함께 모여 읽는다. 파주시독서토론교육연구회 선생님들 이야기다.
파주시독서토론교육연구회는 2011년 경기도 교육청에서 지원한 독서토론실기 직무연수에 참여한 교사들이 헤어지기 아쉬워 만든 모임이다. 파주시 중고등학교 교사 16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모인다. 책을 보면 즐겁고 치유가 된다는 교사들의 모임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학교에서 퇴근하고 책 읽으러 간다
저녁 8시 하나 둘 모여드는 교사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한 뒤라 지쳐 보일 법도 한데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 때문인지 다들 환하게 웃고 있었다.
2011년 이들이 처음 모인 직무연수에서는 토론기법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뤘다. 지금 이어가고 있는 후속 모임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한다. 매번 한 명의 발제자가 책의 내용을 간추려 요약본을 준비하고 나머지는 책을 읽으며 남은 느낌을 나눈다. 한 번 모이면 2~3시간 정도는 훌쩍 지나간다.
교육연구회지만 이 모임에 참여하는 교사들은 치유되는 기분을 갖는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책을 통해 지운다. 수업 했던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교사로서 갖는 고민들. 어쩌면 교사라서 더 조심스럽고 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이곳에서는 마냥 편안하게 풀려 나온다.
모임에서 힘을 받은 교사들은 각 학교 현장으로 돌아가 나눈다. 학생들 독서토론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동료들과 비슷한 모임을 꾸리기도 한다. 이들은 매년 2명씩 짝을 지어 회장과 부회장을 맡는다. 특별한 이벤트보다 현재처럼 소박하게 꾸려가는 모임을 지향한다. 단 하나 욕심은 60살 넘어서까지 같이 하자고 약속한 일이다.
연륜 교과 다양해 풍성한 모임
최아름(일산동중), 조남신(수억중) 씨 부부는 모임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조남신 교사는 “전에는 독서시간에 감독만 했는데 이 모임 통해 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학급문고를 중점 사업으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아름 교사는 “초임 교사 시절부터 모임에 나왔는데 연륜 있고 다양한 선생님들 만나 배우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최아름 교사의 말처럼 파주시독서토론교육연구회에는 다양한 연령과 교과의 교사들이 모여 있다. 컴퓨터 보건 수학 등 저마다의 색깔로 한 권의 책을 읽어낸다.
주종훈(한빛중) 교사는 “경기도의 독서토론교사모임은 대부분 국어과인데 파주독서토론모임은 독특하다. 한 개 과 선생님들이 모였을 때 생기는 한계를 깨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초임 발령을 받은 전지예(한빛고) 교사는 선배들의 연륜에서 도움을 얻는다. 그동안 심리학 분야 책만 많이 읽었다는 전 교사는 “다양한 사회 경험이 많지 않아 학생들에게 모범적인 것만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는데 모임에서 읽는 책이 다양해지니 생각의 폭도 넓어졌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시각에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함께 읽으면 힐링되는 책
박부춘(문산여고) 교사는 “늦은 시간에 가더라도 피곤함보다 에너지가 쌓이고 학교에 돌아가면 교과에서 적용을 많이 해서 좋다”고 말했다.
좋은 것은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신경수(봉일천고) 교사도 이 모임의 방식 그대로 학교에서 학습동아리를 만들었다. 수업시간에는 고3 학생들이랑 만화로 된 인문고전을 읽고 서평을 쓰는 작업도 진행한다. 책은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신 교사는 “겉보기엔 공부도 안하고 까불까불한데 글을 보면 깊게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다. 책을 통해 아이들도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4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는 이혜경(한빛고) 교사는 “여기서 읽는 책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됐다. 30년 정도는 지속하고 싶은 모임”이라고 말했다.
안타까운 일은 교사들이 모이는 계기가 된 독서토론직무연수가 올해부터 사라진다는 소식이다. 심재영(일산동고) 교사는 “모임을 통해서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게을러지기 쉽다. 책을 읽고 학생들에게 적용하는 건 선생님들마다 다르지만 함께 모여서 책을 읽고 얘기 나누는 것이 교사자기 계발과 학교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심 교사는 갈수록 교사직무연수 지원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높은 자살률이 보여주듯 요즘 청소년들은 많이 아프다. 오랜 시간 청소년들을 만나는 교사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은 그래서 소중하다. 파주시독서토론교육연구회 교사들은 그래서 함께 책을 읽는다. 시사 교육 소설부터 그림책까지 함께 책장을 넘기면서 서로를 ‘괜찮다, 잘한다’ 지지하고 있었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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