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은 성년의 날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장미, 향수 등 서구적인 것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성년의 날. 그러나 민족사관고등학교(교장 윤정일)에서는 매년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년례가 치러진다. 벌써 1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성년례는 학생들이 선생님과 부모님 앞에서 성년으로 거듭나는 자리이다.
5월 23일, 140명의 학생들은 성년례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져야 하는 성년이 되었다.
이경화 리포터 22khlee@hanmail.net
전통 절차 거치며 ‘성년’의 의미를 새기다
아무리 불합리한 일부 절차를 개선했다고 해도 4대 의례의 하나인 성년례 절차는 단순하지 않다. 체육관 가득히 놓인 방석과 난은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민사고 고3 학생들은 아직 미성년이라서 술이 아닌 ‘차(茶)’로 행사를 진행한다. 이 ‘차(茶)’는 지난 5월 8일, 3학년 학부모들이 직접 하동에 내려가 정성껏 찻잎을 덖고 유념하는 과정을 거쳐 만든 것이다.
자녀들의 성년례를 위해 더운 날씨에도 정성을 다하는 것은 고3 학부모들의 전통이다. 학교 측은 학교의 표상이기도 한 다산 선생의 ‘차(茶)를 마시는 민족은 흥하고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한다’는 말씀을 귀히 여겨 차로서 의식을 행한다고 설명한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집사들의 안내로 선생님들이 입장하신 후 부모가 먼저 자리한다. 한정된 자리 때문에 남학생은 아버지가, 여학생은 어머니가 대표로 자리에 서지만 마음은 함께이다. 이후 학생들이 자리에 들어서면 학부모가 주빈에게 예식을 청하는 글을 올리고 그것이 수락되면 비로소 성년례가 시작된다.
특히 민사고 성년례는 성인됨의 의미로 여학생에게는 아얌을, 남학생에게는 갓을 씌워주는 관(冠)·계례(?禮)다. 이후, 한 명 한 명을 호명해 부모님이나 선생님들께서 학생들을 생각하여 지어주신 자(字)와 성년예서가 전달된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성인됨을 알리고 자신의 미래 성인으로서의 각오와 꿈 등 맹세를 담아 제단에 차를 올리고 자리에 돌아와 부모님께 보은의 의미로 큰절과 함께 차를 올린다.
이후 제단에 올린 차를 집례자가 부모님께 나누어드리면 자녀에게 그 차를 주는데, 이는 선조로부터 생명과 얼이 부모님을 통해 자신에게 면면히 이어짐을 상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이 성년자의 머리에 꽃을 꽂아 축하해주는 ‘산화’ 순서를 마치면 비로소 학생들은 성년이 된다.
정문환 학생은 행사가 있기 전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지만 막상 여러 전통 절차를 경험하며 어른으로서 책임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며 성년례를 마친 소감을 말했다. 이처럼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식이 진행될수록 그 의미를 되씹게 된다. 배신자(46세·수내동)씨는 “식이 진행될수록 딸에 대한 고마움이 더해졌어요. 딸 덕분에 몰랐던 예를 알게 되었고 이만큼 곱게 자라 성년이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더라고요. 이제 딸을 한 어른으로서 존중해야 된다는 생각에 조금은 아쉽지만요”라고 막 성년이 된 자녀를 둔 엄마의 마음을 전했다.
학부모들이 준비하는 성년례, 온 민사가족의 축제
성년례는 큰 규모와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지만 봉사를 지원한 학부모들이 모든 준비를 한다. 해마다 고1·2 학부모들이 준비하고 당연히 그 뒤를 이어 아래 학년 학부모들이 선배들의 성년례를 손수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년례의 총 준비를 맡은 유서연(43세·정자동)씨는 성년례 아침까지도 실수할까봐 마음을 졸였다며 홀가분한 마음을 전한다.
“큰 행사인 성년례는 오랜 기간 하나씩 준비하면서 더욱 애착이 갑니다. 처음엔 번거롭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인생에 단 한 번인 날에 좀 더 기억에 남는 식을 치를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게 됩니다.”
이처럼 학교 학부모들은 매년 자신들이 치러낸 성년례에 대한 내용을 꼼꼼히 정리하여 다음 학년에 물려주어 그 전통을 잇고 있다. 유씨뿐 아니라 함께 행사를 치러낸 45명의 학부모들은 다른 학교와는 색다른 행사를 통해 진정한 성년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되기 때문에 학부모이지만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애교심까지 생긴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출발, 성인으로서의 책임감 느껴져
정윤서 학생은 “성년례를 통해 많은 분들께 축복받을 수 있었고, 그만큼 커다란 책임이 주어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어요. 특히나 초례(술잔을 내려주고 술을 마시도록 허락하는 의식)의 순서에서는 부모님께 받은 잔을 들며 이제 더 이상 응석받이가 아닌 부모님께 효도하고 지켜드려야 할 위치에 섰다는 느낌에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했답니다”라며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19년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같은 학년 친구들과 함께한 성년례. 서로에게 건네는 축하인사와 어색한 갓 쓴 모습을 보고 서로 웃는 모습이 보는 이들을 뿌듯하게 해주었다. 조윤정(45세·수내동)씨는 “절을 받는 저도 그랬지만 뒤에서 바라보던 아빠가 더욱 뿌듯해하더라고요. 아이가 부쩍 성숙한 느낌. 그것이 저희 부부를 흐뭇하게 했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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