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르는 터키의 3번째 큰 도시이다. 에게해와 마주하고 있다. 현재 인구가 400만명이다. 1640년에 벌써 인구가 4만명에 이르는 대도시였다. 과거에도 중요했던 역사 도시이다. 위도가 38도42부이다. 한반도의 중간에 해당된다. 4천년의 역사를 가진 역사도시이다. 이스탄불이 정치적인 도시라면, 이즈미르는 상업과 무역의 경제도시이다. 이즈미르는 게디스강 하류 비옥한 삼각주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즈미르 반도의 만(灣)안에 위치한다. 에게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좋은 항구이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이다. 여름은 비가 없고 건조하고, 겨울은 짧고 서늘하고 비가 많다. 지중해성 농산물이 생산된다. 이즈미르 반도의 맞은편에는 키오스(Cius)섬이 있다. 키오스섬은 그리스 영토이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요지
오래전부터 이즈미르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일어난 제국은 언제나 이즈미르(스미르나)는 항상 거점도시로 다뤘다. 이지미르의 전략적인 위치 때문이다. 이지미르의 배후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지중해의 중심바다 에게해에 진출할 수 있다.
그리스 이름으로 스미르나이다. 이 지역에 처음으로 등장한 제국은 리디아(BC610~600)이다. 이즈미르는 제국의 중심도시였다. 지중해연안의 큰 도시로 성장을 하게 된 것은 알렉산더 대왕 때(BC340), 제국의 가장 중요한 도시로 삼았고, 성채를 쌓았다. 지금의 이즈미르는 당시의 성채 위에 건설됐다. 로마시대에는 스미르나(이즈미르)였고, 로마제국의 아시아 지역의 중심 도시로 삼았다. 7개의 초대교회를 세운 곳 중의 하나이다. 스미나르, 페르가몬, 에페소스, 파트모스 등이다. 대단히 중요한 도시였다.
그 후 로마시대, 비잔티움시대, 오스만제국시대에도 이즈미르 도시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았다. 후방에는 아나톨리아 고원이 있고, 인근에 넓은 하천 충적지가 있어 자체로 많은 인구를 부양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에게해를 통해 바다 건너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이집트와 무역을 하기에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요지이다. 지금도 그 입지조건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른 이름으로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다. 동로마제국, 로마제국을 거처 비잔티움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비잔티움 시대, 오스만시대를 거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에게해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다. 4차 십자군 원정 때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자 이즈미르는 기사단이 점령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셀쥬크 터키, 오스만 터키가 차지했다. 시대에 따라 주인이 바뀌고 도시명도 바뀌었지만, 언제나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중요한 이스탄불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로서 취급받았다.
20세기에 일어난 ‘민족의 대이동’
역사적으로 항상 큰 도시였으므로 재앙도 항상 크게 일어났다. 1676년 흑사병, 1688년 지진, 1743년 대화재가 발생했다.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17세기 말 도시인구는 약 9만명이나 됐다. 터키인이 6만명, 그리스인 1만5천명, 아르메니아인 8천명, 유대인 7천명이었다는 인구조사가 있다. 지배자의 국적은 바뀌어도 이즈미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영국, 화란, 이탈리아의 상인들이 많이 살았다. 지중해 연안의 국제도시였던 셈이다. 민족의 정체성은 종교였다. 그리스인은 기독교, 터키인은 이슬람교이고, 유대교를 믿으면 유태인이다. 그리스와 터키간의 전쟁, 일명 독립전쟁(1919~1922)은 결국 터키군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리스 터키 전쟁은 터키 독립군이 1922년 9월 9일 이즈미르를 탈환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전쟁이 끝난 후에 로잔 조약이 체결되고, 양국에 살고 있는 민족 교환이 일어났다. 터키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은 그리스로, 그리스에 살고 있는 이슬람교인은 터키로 이주시켰다. 기독교인 20만명이 이즈미르를 통해 그리스로 이주했다.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리스와 터키 가깝지만 먼 나라
그리스와 터키는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다. 유럽인들은 같은 기독교국가인 그리스 편을 든다. ‘동양인들(Les Orientales)’라고 빅토르 위고가 쓴(1829) 시가 있다. 자유를 추구하는 그리스에 대해 동양인, 오스만 터키인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쓰고 있다. 위고가 유럽인들의 편견을 부추겼다.
그리스와 터키의 문화유산이 비슷하지만 그리스는 자유, 터키는 불통으로 보고 있다. 역사가 밥 먹여 주지는 않지만, 남겨둔 문화유산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지중해연안 입지를 이용하여 터키는 자유무역지대(free zone)를 설정했다. 주민은 농업과 연안어업으로 살아가지만 도시 전체는 관광과 무역이 주종이다. 한반도는 1500회나 외침이 있었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불 지른 것 밖에 없다. 터키의 이즈미르와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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