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산 정상에서 서면 사방이 탁 트인다. 가까이 보이는 건물이 중부대학교이다.
대전둘레산길은 도심 속 치열한 삶에 지친 이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듯 대전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호젓한 산길을 걷는 여유와 건강을 선물한다. 대전둘레산길은 대전의 역사와 이곳에서 삶을 일군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산에 가면 가는 길이 있어, 갈 길이 보인다. 가고 있는 길에 믿음이 있다. 이미 갔던 사람들에 대한 의심이 없다. 그래서 산이 좋다.”
이번 2구간 산행을 함께 한 박찬인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의 책 ‘숲에서 길을 찾다’(충남대학교출판부 2008)에 나오는 글이다.
산길은 직선이 아니다. 그래서 빠르지 않다. 돌아볼 틈 없이 빠르게 지나는 길이 아니다. 이미 갔던 사람이 간 길을 지금 함께 하는 사람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는 길이다. 느리게 가는 길이다. 박찬인 대표는 어디선가 대전둘레산길을 ‘느림’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만인산에서 본 조망. 첩첩이 이어진 산줄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경계를 걷다
대전둘레산길 2구간은 금동고개에서 시작한다. 돌탑봉과 떡갈봉, 먹치를 지나 만인산까지 13.1km이다. 1구간 날머리에서 길을 건너면 수령 200년이 훨씬 넘은 소나무 세 그루가 2구간 시작을 알린다.
2구간은 접근이 쉽지 않다. 30번과 31번 버스 시간을 미리 알아놔야 한다. 대전세종 내일신문 대전둘레산길 답사팀은 오전 8시 50분쯤 서대전네거리역 정류장에서 8시 30분 대전역동광장을 출발한 30번 버스를 탔다. 이 구간은 도심과 멀리 떨어져 첩첩산중을 걷는다. 제법 긴 거리인데다 인적도 드물다. 오르락내리락 구간이 많아 힘깨나 뺄 각오를 해야 한다.
금동고개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는 대전시 동구와 중구의 경계를 이루고 만인산에 다다르면 대전시와 충남 금산군을 나눈다. 산줄기는 행정구역을 나누고 산길은 사람들을 잇는다. 그래서 이 산중에도 마을이 있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금동고개를 출발하자마자 오르막이 시작된다. 나무계단을 헐떡이며 오르면 통신시설이 길가에 즐비하다. 잠깐 숨을 돌린다. 오르막이 만만치 않은 2구간을 예고하는 듯하다. 여기서 30분쯤 계속 오르면 정상에 돌탑이 있는 해발 457m 돌탑봉이다.
돌탑봉에서 떡갈봉까지는 지척이다. 능선을 타고 가는 길에 바람이 시원했다. 바람이 산행 끝까지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동안 땀을 식혀줬다. 박 대표와 바람의 고마움에 대해서 한참 얘기했다.
떡갈봉에는 떡이 열리는 참나무가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병석에 누워있는 시어머니에게 찹쌀떡을 사드리기 위해 나무를 하러 온 며느리가 찹쌀떡이 주렁주렁 매달린 참나무를 발견한 곳이다. 이 구간은 전설의 배경이 될 만큼 참나무가 많다. 등산로를 뒤덮을 정도로 참나무 낙엽이 쌓여 있다. 떡갈봉 전설을 전하는 해설판은 몇 년째 많이 훼손된 상태 그대로다. 만인산 정상에 있는 대전둘레산길 안내판도 마찬가지다.
2구간 시작을 알리는 소나무 세 그루.
숲에는 생명이 있다
떡갈봉에서 삼각점봉과 용궁사 갈림길을 지나 443m봉까지 1시간 정도 걸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쉽지 않은 길이다. 내리막을 만나면 지레 오를 일이 걱정될 정도다. 조망도 좋지 않다. 443m봉에서 점심을 먹었다. 산행 중에 만난 6명이 각자 도시락을 꺼내 놓으니 진수성찬이다.
산행 내내 박 대표로부터 길가에 핀 꽃과 나무들의 이름을 들었다. 양지꽃 봄맞이꽃 제비꽃 각시붓꽃 조팝나무 생강나무 국수나무 등 그저 스쳐 지났던 꽃과 나무들이 이름을 듣는 순간 신기하게 가깝게 느껴졌다. 참나무의 구별법도 배웠다.
박 대표는 “숲에는 생명이 있다. 여유와 관심을 가지고 산길을 걸으면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을 볼 수 있다”며 “꽃이나 나무을 알고 가면 그것들이 인사를 한다. 그럼 산행이 훨씬 풍요로워진다”고 말했다.
만길이나 높고 깊은 ‘만인산’
점심을 먹고 오래 쉬었다. 이제 대전시경계를 향한다. 역시 오르막과 내리막은 계속된다. 지친 다리를 아직 남아 있는 철쭉이 달래 주었다. 1시간 30분가량 걸어 동구 하소동과 금산군 목소리를 잇는 먹치고개에 도착했다. 만인산 정상이 코앞이다. 마지막 힘을 내 50분쯤 오르막을 오르면 탁 트인 조망이 지금까지 산행의 수고로움을 모두 날려버린다. 특히 첩첩이 이어진 서쪽 능선이 아름답다. 철쭉이 핀 능선을 따라 만인산 정상을 향한다.
해발 537m, 대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사방이 탁 트였다. 서대산 대둔산 계룡산 식장산 보문산 등이 눈에 들어온다. 만인산 정상에는 봉화대터가 있다.
만인산의 남쪽 기슭에는 조선 태조와 정종의 태가 묻혀있다. 그래서 태봉산이라고도 불린다. 동쪽 골짜기인 봉수레미골은 대전천의 발원지다. 만인산 휴양림은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태조태실에서 2구간과 3구간이 만난다. 7시간 30분을 쉬고 걸었다.
글·사진 윤덕중 dayoon@naeil.com
- 2구간 : 금동고개 소나무 앞-돌탑봉-떡갈봉-삼각점봉-용궁사갈림길-대전시계-먹치-만인산 정상-태조 태실-만인산 휴게소
- 교통편(출발점) 버스 30, 31 / 장척동(대전역, 서부터미널, 낭월공영차고지 출발)
- 교통편(도착점) 버스 501 / 만인산 휴게소
인터뷰 - 대전문화재단 박찬인 대표이사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고 넉넉하게
대전문화재단 박찬인 대표이사는 대전둘레산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중 하나이다. 대전둘레산길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샤넹’이란 닉네임으로 유명하다. 지난 3월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하기 전까지 대전둘레산길 모임(cafe.daum.net.djsarang)의 카페지기 겸 대표였다.
대전둘레산길에 대한 그의 사랑은 10년이 훌쩍 넘었다. 둘레산길 곳곳에 그의 땀과 정성이 배어 있다고. 둘레산길을 잇고 가꾸는 전 과정에 참여한 셈이다. 충남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대학강단에 선 그는 젊은 학생들에게 대전둘레산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어 학생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학사일정에도 반영할 만큼 유별나다.
그는 산행 내내 둘레산길의 유래와 꽃과 나무에 대해 얘기했다. 대둘과 대전충남생명의숲 대표의 내공이 전해졌다.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로서의 포부도 밝혔다.
박 대표는 “둘레산길이 대전시민들이 언제나 찾아와 삶의 활력을 얻고 가는 곳이듯 대전문화재단도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고 넉넉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전만의 문화를 찾아가며 정체성을 만드는데 기초를 쌓겠다”며 “둘레산길이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관심으로 만들어졌듯이 시민들과 소통하고 함께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전둘레산길을 걷다! Walking in the Daejeon!
한밭벌 둘러싼 12구간 명품 트레킹 코스, 330리를 잇다
대전은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대전의 상징인 보문산을 시작으로 만인산 식장산 계족산 금병산 갑하산 도덕봉 빈계산 구봉산 등이 아늑하게 대전을 감싸고 있다.
10여 년 전 대전의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 산길을 이었다. 대전둘레산길이다. 대전시민들이 직접 만들고 가꾼 소중한 길이다.
대전둘레산길은 330리(133km)에 걸쳐 예부터 들이 넓고 커서 ‘한밭’이라 불린 대전을 굽어보고 있다. 이 길을 12구간으로 나눴다. 한 구간은 하루 등산에 알맞은 9~13km이다. 각 구간은 등산 시간이나 방향에 따라 계절별로 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며 등산객을 맞이한다.
대전세종 내일신문은 지난 3월 1구간을 시작으로 내년 2월까지 매달 한 구간씩 대전둘레산길 12구간 걷기 ‘대전둘레산길을 걷다! Walking in the Daejeon!’ 시리즈를 시작한다.
지난 3월 1구간에 이어 4월 26일 2구간을 걸었다. 이번 2구간 산행에는 2004년부터 대전둘레산길잇기모임에 참여해 카페지기를 겸하며 대표를 지낸 박찬인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가 함께 했다.
아무쪼록 대전둘레산길의 아름다움과 길을 타고 면면히 흐르는 대전의 이야기가 대전시민들에게 오롯이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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