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사람 - 단원고 탁구부
친구들을 기억해주길 바라죠. 슬픔은 운동하면서 이겨 내요
하고 싶은 것 많고 마냥 놀고 싶은 평범한 여고생들 이야기
지난 17일 ‘전국종별남녀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단원고등학교 탁구부 선수들이 안산에 준우승 소식을 전했다. 단원고 탁구부는 이 대회에서 2연패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리포터가 단원고 탁구부와 인연을 맺은 것은 1년 8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운 여름, 뜨거운 땀방울을 쏟아내던 단원고 탁구부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간 시간이 십년처럼 흘렀다. 다시 찾은 단원고 체육관에서 6명의 탁구부원들과 마주 앉았다. 당시 1학년이던 김민정 양과 박세리 양이 3학년이 되었다. 그리고는 대부분 새로운 팀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픔을 함께 나눈 듯이 더욱 마음 갔던 단원고 탁구부 여고생들 이야기를 소개한다.
2년여 동안의 못다 한 이야기
이날 함께 자리한 친구들은 고3 김민정·이정아·최연희 양과 고2 노소진·이지은, 고1 김정원 양이었다. 세월호 사고가 나던 해 2학년이던 민정 양에게 그동안 어려움이 많지 않았냐고 뭉뚱그려진 질문을 던져봤다. 민정 양은 “운동을 하면서 많이 잊는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민정양의 이야기다. 민정 양은 세월호 사고가 있던 해 수학여행을 가는 2학년이었다. 그때도 이 대회와 같은 ‘전국탁구선수권대회’ 출전 일정이 잡혀있어서 수학여행을 갈 수 없었다. 운동을 했지만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민정 양은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아쉬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대회 도중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민정 양의 말이다. “믿을 수가 없었죠. 설마 설마 했어요. 그리고 전원 구조됐다고 하길래 안심했었는데...” 민정 양을 비롯한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탁구부원들에 따르면 민정 양은 특히 많이 울었단다. 그리고 그해 민정 양은 경기에 함께 참가했던 탁구부원들과 ‘전국탁구대회’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조심스럽게 그때의 소감을 물었다. “마냥 기쁘지는 않았죠. 모두들 우승했는데도 눈물만 흘렸던 것 같아요. 지금도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나요. 그럴 때마다 열심히 운동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체육관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최고도 되고 싶고, 평범하게 시간도 보내고 싶어요’
눈을 들어 새로 만난 탁구부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난 17일 대회에는 김민정, 노소진, 이지은, 박세리 양이 출전했었다. 이날 박세리 양은 대회 출전 때문에 인터뷰에 함께 하지 못했다. 준우승에 그친 대회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이었을까? 노소진 양이 답했다. “리그전으로 진행된 경기에서 첫 게임을 내준 것이 가장 아쉬웠죠. 경기는 이기지 못하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 것 같아요. 날짜도 17일 이어서 어떻게든 이기려고 노력했는데 맘처럼 되지 않았어요. 앞으로 나가게 될 대회에 집중해야죠.”
분위기를 바꿔볼만한 질문을 던졌다. 이들의 탁구 경력은 대부분 10년을 훌쩍 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이들 모두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탁구채를 든 셈이다. 문득 질문했다. 탁구 말고 다른 꿈을 꿔본 적이 없었느냐고. 작은 소리로 “저 사실은 탁구선수 말고 정말 되고 싶은 꿈은 따로 있었어요”라고 수줍은 대답들이 나왔다. 이들이 한번 씩 꿈꿔온 직업에는 정아·민정·연희 양은 교사였고, 소진 양과 정원 양은 요리사였다. 재미난 대답도 나왔다. 지은 양의 꿈은 마법사였단다. 묻어두었던 꿈 이야기를 꺼내면서 수줍게 웃는 모습들 속에 17살 여고생 모습이 드러났다. 체육관 분위기가 한결 밝아지면서 이야기는 잠시 산으로 갔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잠시라도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밥 먹고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이 소녀들, 이 순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서 땀 흘리고 있지만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여고생이기도 했다.
길지 않은 인터뷰는 끝이 났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전적이나 앞으로의 진로를 묻는 질문은 생략했다. 그저 변함없이 체육관을 지키면서 하루 12시간씩 묵묵히 운동하고 있는 여고생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을 뿐이다. 꾸벅 인사를 하고 모두들 다시 탁구대 앞으로 향했다. 이들은 24일부터 다시 아시아선발전에 출전한다.
오윤정 코치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열심히 운동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노력하는 아이들이니 그만큼의 좋은 결과가 따라 주길 바란다.”
돌아 나오는 발걸음 뒤로 연신 탁구공소리가 마중을 나왔다. 이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한윤희 리포터 hjyu6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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