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젤 앞에 고요히 앉아 붓질하는 용우(가명)군. 이 시간만큼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생계 걱정을 내려놓고 그림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그만의 힐링타임이다.
“연필 잡고 선 긋는 그림의 ABC부터 시작했는데 실력이 금방 늘었습니다. 캐릭터 그림, 패션 분야에 관심이 많고 대상을 개성 있게 표현할 줄 아는 재능 많은 학생입니다.” 신현영 교사(31세)가 애정을 듬뿍 담아 제자 자랑을 한다.
그림 배우러 정신여고에 모인 탈북학생들
교단 경력 4년 남짓의 신참 교사인 그는 정신여고의 ‘미술 특별반’을 토요일마다 뚝심 있게 열고 있다.
첫 인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탈북학생을 위한 대안학교 ‘하늘꿈학교’와 정신여고는 예전부터 학생들끼리 꾸준히 교류를 해오던 터였다. “탈북학생들이 미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데 하늘꿈학교에서는 가르칠 교사가 없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어요. 그래서 희망 학생들을 모아 수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그림에 갈증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언니처럼 누나처럼 편하게 가르쳐주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가뿐하게 시작했다. “미술을 난생 처음 접해보는 학생들이 대다수라 소묘, 수채화, 파스텔화, 아크릴화, 디자인 같은 다채로운 영역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실기 중심으로 가르쳤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아이들의 열정과 의지가 전해지더군요.”
매주 토요일 3시간씩 미술수업을 진행했는데 쉬는 시간마저 아껴가며 그림을 그리거나 집에서 그려오겠다며 자청해서 숙제를 해오는 아이들을 보며 신 교사는 보람을 느꼈고 신바람이 났다.
남북학생들 그림 함께 그리며 ‘우리는 하나’ 깨달아
특히 학생 수가 적었던 초창기에는 미술 방과후 수업을 듣는 정신여고 학생들과 한데 어울려 그림을 배웠다. 그러면서 남과 북의 심리적 벽, 탈북자에 대한 편견이 스르르 없어지는 걸 경험했다.
“잔뜩 긴장해 말도 섞지 않던 남북한 아이들이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니까 수업 중간 중간 간식도 나눠먹으며 말문을 열더군요. 호롱불 켜고 생활했던 이야기부터 북한의 실상을 언뜻언뜻 내비쳤지요. 처음에는 나도, 정신여고 재학생들도 북한 이야기가 놀랍고 신기하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느 순간 ‘한민족’란 참 의미를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더군요.”
그림 그리기에 애착이 많은 학생들은 대학생이 된 뒤에도 토요 수업에 꼬박꼬박 참여했다. “어려운 경제 형편 때문에 미술을 전공하지는 못해도 붓을 계속 잡고 싶어 하는 학생이 여럿 있어요. 그림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개인이 가진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어린 나이에 탈북 과정에서 겪었던 고초, 낯선 땅에서 적응해 나가며 온몸으로 겪는 고단함을 그림에 몰입하면서 잊으려 하는 거죠.”
신 교사는 늘 아이들 곁을 지키며 속 마음을 캔버스에 마음껏 풀어낼 수 있도록 격려해 줬다. 가끔씩 결석해도 채근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고 오랜만에 머쓱해하며 오는 학생들을 따스하게 맞아줬다. 기초부터 시작해 그림의 문법을 하나씩 익혀나간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재미를 터득하게 됐고 미술을 즐기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탈북학생, 장애인 미술전 3년째 개최
제자들에게 작은 선물을 해주고 싶었던 그는 전시회 아이디어를 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다. 주인공은 송파구민회관 장애인미술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김경선, 문성경씨. 둘 다 정신여고 졸업생들로 최성이교감 소개로 알게 됐다. “완성도 높은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근무력증으로 과자 봉지를 뜯을 힘조차 없는 경선이, 뇌성마비로 거동이 힘든 성경이가 그동안 쏟았을 땀과 노력이 그림 속에 다 담겨 있더군요.”
정신여고 재학생들, 동료 교사들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 덕분에 두 명의 장애인 화가, 탈북학생들, 그리고 정신여고 학생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2013년 2월 정신여고에서 첫 전시회가 열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타이틀로 열린 전시회는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탈북학생, 장애인 같은 우리 사회 마이너그룹의 그림 열정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어요. 무엇보다 미술 전시회가 이들에게 격려가 됐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용기를 줬지요. 전시회를 본 뒤 미술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오는 탈북학생들도 늘었고요.” 그 뒤로 매년 정신여고에서는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토요 미술수업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쉬는 토요일, 3년째 휴일을 반납한 채 아이들을 자청해서 지도하는 신 교사에게는 에너지가 넘친다.
“사실 나는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계층에 관심이 없었고 편견도 심했어요. 그러다 지인의 권유로 6년간 장애인예배봉사를 하게 됐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겉모습이 아닌 순수한 마음이 내 눈에 들어왔고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내가 가진 재능을 남과 나누는 기쁨도 맛보았고요.”
20대 시절의 ‘특별한 경험’이 그를 훌쩍 성장시켰다는 신 교사. 지금도 탈북학생들의 고마워하는 눈빛에서 큰 힘을 얻는다며 거창한 봉사 보다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나눔’을 차근차근 쉼 없이 해나가고 싶다며 차분히 속내를 밝힌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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