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는 그리스의 수도이다. 인구는 300만명이다. 아테네(38°)는 서울(37°40′)과 비슷한 위도에 있다. 그러나 서울은 대륙성 기후이고, 아테네는 전형적인 지중해식 기후이다. 여름은 건조한 사막기후이고 10월~4월까지 온난하고 비가 온다. 현재 서울(2천만명)은 아테네(300만명) 월등한 시세(市勢)를 자랑하고 있지만,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정반대이다.
아테네는 고대 중세 근대 현대에 걸쳐 세계사의 중심에 있었는가 하면, 서울은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세계 속에 알려진 정도이다. 아테네가 세계문화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철학, 고고학, 민주주의, 올림픽 등 많다. 세계의 한 귀퉁이에서 이러한 위대한 철학과 과학, 정치형태와 문화가 발생한 것일까? 중국의 황하유역에서 기원전 3세기 경 ‘제자백가(諸子百家)가 나타나 학문의 꽃을 피운 것과 비슷한 때이다.
물과 육지를 오가며 사는 개구리 ‘아테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 ’총 균 쇠‘에서 고대문명이 동서양이 비슷한 시기에 도약을 한 것은 ’철의 발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철의 발명은 농산물의 증가, 인구의 증가, 전쟁의 혁명, 제국의 출현으로 나타났다. 세상이 한 참에 변한 것이다.
지중해와 흑해 연안에 기원전 4세기경, 아리스토텔레스 때, 1500개의 도시들이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란 말은 적당치 않다. 도시는 산업화이후의 취락의 형태이다. 당시 취락의 형태는 도시라기보다 마을이다. 그러나 그때 마을은 어느 국가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모두 독립적인 자치정부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도시국가’란 말을 쓴다. 플라톤은 바다를 보고 발달한 마을을 ‘우물가의 개구리’로 비유했다. 1500개의 마을들이 지중해를 마주하고, 뒤에는 산지에서 양을 키우는 유목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산물을 바다를 통하여 살아가고 있는, 물과 육지를 오가며 사는 양서류인 개구리에 비유한 것이다. 교통수단의 발달한 지금은 더 큰 범위의 국가로 발전했다.
지혜의 여신 아테네의 땅
신화 속에서도 같은 비유를 찾을 수 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사이에 아티카(아테네)의 패권을 두고 싸움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아테네이다. 지혜의 여신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올리브 권했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바다를 권했다. 인간은 올리브를 택하여 아테나 여신의 이름을 따서 도시이름이 ‘아테네’가 되었다는 신화 이야기가 있다.
육지의 올리브도 지중해 바다도 아테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아테네도 하나의 한 마리의 개구리였다. 바다를 끼고 주변의 산간에 발달한 도시국가였다. 주변에 1천 m 내외의 높은 산들이 둘러있다. 북쪽에는 파르니타(1413m), 동 히메루스, 서 아가레오 남쪽에는 중앙에는 트리아샨 평야가 있다. 남쪽에는 사로닉 만을 통해 바다로 진출했다. 일찍부터 부족한 물건을 해외 무역 통해 얻었다. 육지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우리나라는 바다의 중요성이 덜했다. 아테네는 우리와 달랐다.
아테네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한국에서는
고대 아테네의 정치형태가 민주주의(Demokratia)이다. 지금과 같이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보편적인 민주주의가 아니었지만, 자연적으로 발생한 정치형태가 ‘민주주의’라는데 의미가 있다. 민주주의는 ‘대중이 지배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피지배자가 지배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신라시대 화백제도(和白制度)가 있었다. 아테네는 민주주의 세계 인류의 민주주의의 발생지로 알려져 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결국 유럽에서 꽃을 피웠다.
모리슨 맥키버(Morrison Maciver)의 민주주의 정의가 마음에 든다.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투표의 자유, 평화적인 정권교체, 민주적 선거절차를 들고 있다. 북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민주주의를 한다고 한다.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하지 않는 국가는 없다. 진짜와 가짜 민주주의 구별은 △정부정책에 반대의사를 밝혔을 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단체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가 △집권당에 대하여 자유롭게 반대투표를 할 수 있는가 △집권당에 반대하는 투표가 다수일 때 정부가 권력에서 물러나는 가 △헌법에 근거하여 선거를 제대로 진행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가 UN의 에 제출하는 인권보고서에서 제대로 보고하지 하지 않고 정부에 불편한 내용은 모두 삭제해 버렸다. 국가권력을 감시해야 할 한국인권위원회가 국가권력에 비위를 맞추어 인권을 외면하면 민주주의가 훼손된 것이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Amnesty)가 한국의 인권사항이 전반적인 후퇴라고 했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보려면 일본과 한국을 보라 했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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