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입시제도의 기회비용
8년 전에 지도했던 제자를 가끔 만난다. 이 제자는 수도권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2배의 연봉을 받으며 독일계의료부품회사로 전직을 했지만, 제자의 이전 직장은 취업희망자들이 선망하는 대기업 건설회사였다. 제자는 이 회사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했는데, 때때로 영어사업발표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편안한 식사자리를 기대하고 나갔다가 졸지에 실무강의를 하는 식이었다. 제자의 토해내는 말과 표정에서 현장의 활기와 열정이 느껴졌다. 결국 제자는 발령받은 중동지역에서 역량을 증명했고, 마침내 전직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고 이루어낸다. 정말 소중한 인연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연도 제자가 입시에서 2번 실패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것이다. 8년 전 제자의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제자에 대해 다시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당시 황우석박사의 논문조작에 관한 기사해석을 수업에서 다루었다. 윤리적 문제인 만큼 표절은 상당한 사회비용을 초래한다는 요지로 강의를 했는데 쉬는 시간에 제자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논문조작 스캔들로 초래될 생명공학사업의 침체를 걱정하면서 사안을 좀 더 큰 시각으로 넓게 보았다. 기존의 시각과는 달랐고 내용 또한 건설적이었다. 그는 성적으로 환산되지 않는 날카로운 안목의 씨를 갖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직 이전의 직장은 지금 재정적으로 위기상황에 있다. 중동시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플랜트사업이 상당한 적자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직은 신의 한수였다. 한편 아쉬움도 남는다. 그 당시의 교육 및 입시제도가 양적인 수치외에도 제자의 잠재화되어 있던 능력을 주목했더라면 제자는 입시학원에서 보낸 2년이라는 시간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우상예찬 - 바뀌지 않으면 치러야 할 대가
우리 교육계는 지금까지 수능성적이 높다든가 교내에서 내신이 좋은 학생을 주로 우수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비교한다. 자신의 성적과 정형화된 성적기준들을. 이를 통해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쉽게 예단한다. 물론 수치화된 기준으로 선발된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성실하고 똑똑하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학생들이 주어진 문제에 대한 주체적 문제분석보다는 습득한 매뉴얼을 별다른 생각 없이 적용시키는 경우가 많다. 우리사회가 이러한 능력으로 관리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문제는 우리가 예측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고전경제학에서 대공황의 주기는 대략 70년이다. 최소한 대응할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현재 위기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IMF 외환위기가 극복되고 바로 인터넷 붐이 일었다가 바로 신용카드위기가 닥치고, 해결되는가 싶더니 곧 미국의 금융위기라는 대외약재가 튀어나왔다. 기존의 매뉴얼이 무력화되고 선제적 대응능력이 더 중시되는 현실이다. ‘문제해결능력’이 있는 개인은 위기가 또 다른 기회가 되지만 대비하지 않는 자들은 시장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자신만의 특기를 신바람나게 숙성시켜 경쟁력 있는 내공으로 승화시킨 이들이 사회를 주도한다. 혁신은 스티브잡스와 같이 특별한 이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이 누구든 ‘생활 속 혁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의해 탄생한 전형이 개인의 적성과 잠재적 재능에 좀 더 주목하겠다는 전형 즉 수시제도인 것이다.
개인의 적성과 잠재력을 평가하는 수시제도 - 시대적 소명
수시제도는 이제 교육의 큰 흐름을 대변하는 제도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선발인원의 거의 70%가 수시전형을 통해 선발된다. 그리고 이 추세는 더 확대될 것이다. 물론 한 학생의 고유한 가능성을 측량하는 과정은 많은 수고와 시간을 요한다. 또한 질적평가과정에서 공정성에 대한 시비도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그러한 수고조차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시행착오의 두려움 때문에 머뭇거린다면 향후 더 큰 사회적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적성에 맞지도 않은 학과를 선택해서 진학한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이 설령 졸업한다 하더라도 사회가 원하는 인재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은 또 얼마나 될까. 적어도 수시전형은 적성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개발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교육정책에 대한 신뢰 - 앞으로의 과제
제도가 바뀌면 정착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제도를 과거의 기준으로 재단하려는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시는 공정한 것, 땀을 흘려서 정당하게 얻어낸 것 반대로 수시는 요행수, 운, 특이한 아이들이 준비하는 전형으로 치부된다. 이러한 제도와 이를 받아드리는 학보님들의 인식의 괴리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우리아이들이다. 올해 24 만명이 수시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필자는 이들이 수시전형에 도박을 걸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학교생활을 성실히 하면서 자기관심분야에 몰입한 아이들이다. 앞서 언급했듯 수시전형의 장점이 분명하다면 이제도의 본질을 이해하고 성실하게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희망진로분야를 좀 더 빠르게 결정하고 그 우물을 파내려가야 한다. 하나의 구(球)는 무한개의 지표지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지점에서건 중심을 향해 파내려 가다보면 하나의 원점으로 수렴된다.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있는 우리아이들이 신나게 자신의 분야에 ‘몰입’해서 ‘행복’이라는 인생의 궁극적 가치에 ‘모두’ 도달했으면하는 바람이다.
◆조현
-고려대학교 철학과(학사)
-컬럼비아대학원 석사과정수학
-SIPA International Law and Human Rights
-한국개발경제연구원(KDI),공공정책(Master)
-현)목동 리뉴영어학원 영특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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