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이야기 읽어보실래요?”
서울목원초등학교(교장 변호열) 독서동아리 6학년 학생들이 작년 12월 ‘엉뚱발랄 소녀들, 글나래를 펼치다’ 책을 발간했다. ‘엉뚱발랄 소녀들, 글나래를 펼치다’는 목원초등학교의 5개 독서동아리에서 활동하던 학생 중 7명이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소설 한편씩을 엮은 책으로 작년 10월부터 12월까지 2달여에 걸쳐 완성했다. 주제 선정부터 편집, 책이 나오기까지 7명의 소녀를 만나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소설쓰기, 독후활동의 일환으로 진행
목원초의 독서동아리는 5~6학년 학생들 30명으로 구성돼 있다. 5~7명이 한 팀을 이루어 책을 읽고 신문 만들기, 독후감 쓰기, 연극으로 바꿔보기, 뒷이야기 쓰기 등 다양한 독후활동을 한다. 이 외에도 독서캠프, 독서테마기행, 별밤도서실 등 활동을 했다. 소설쓰기도 독후활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프로그램 중 하나다. 독서동아리의 지도를 맡은 정효선 교사는 “책의 소비자 역할만 했던 학생들이 직접 작가가 되어 책을 써보는 것도 좋은 독서활동이 될 수 있다”며 “진정한 독서교육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낼 때 가능하다”며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힌다.
원래 계획은 독서동아리 회원 30명이 모두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12월까지 책이 출판돼야 하는 사정상 먼저 완성된 7명의 글이 책으로 엮어졌다. 나머지 학생들의 글도 조만간 단행본으로 만들 예정이다.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소설, 주제 정하기
소설을 쓰기 위한 독서 수업이 마무리되자 10월부터 본격적인 소설 쓰기가 진행됐다. 소설을 쓰기 위한 첫 번째 단계, 아이들은 소설의 소재를 어디서 얻었을까? 자신이 읽은 책에서 소재를 얻은 경우가 많았다. 조혜준 학생은 “‘지각대장 존’ 이라는 책을 자주 읽었는데 이 책은 선생님과의 관계에 관한 내용이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람 대신 동물을 주제로 동물들 학교에서 일어나는 소설을 쓰게 됐다”고 소개한다. 권현진 학생은 “역사책을 좋아해 언젠가는 꼭 한번은 한국사를 바탕으로 한 책을 써보고 싶었다. 당연히 독서동아리에서 글쓰기를 한다고 했을 때 한국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전한다.
김주은 학생은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뇌성마비 형을 떠올라 장애인 여동생과 사춘기 오빠의 갈등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신하연 학생은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보통 ‘마녀’라고 하면 기분 나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마녀가 나쁘다는 편견을 깨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이 되고 싶은 꿈을 소설로 만든 학생도 있다. 최연우 학생은 천문학자가 되고 싶은 꿈을 소설로 그려냈다. “독자들에게 천체물리학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소재를 천문학으로 잡았다”고 소개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 학생도 있다. 허예림 학생은 “사춘기 6학년 여자아이가 엄마랑 겪는 갈등을 소재로 책을 썼다. 엄마랑 갈등이 많은 나의 이야기다. 일기 같이 글을 써내려갔다”고 밝힌다.
김소연 학생은 어떤 주제로 써야할지 막막했지만 선생님께 배운 대로 꼭 특별하지 않더라도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평소 관심을 가졌던 재미있는 동네 이름에 대해 조사해보자는 생각으로 소설을 쓰게 됐다”고 전한다.
이야기의 전개과정, 벽에 부딪히다
소설의 소재가 정해지자 줄거리를 엮어가며 글을 썼다. 하지만 30장 분량의 소설 한편을 쓰는 것이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며칠을 생각하고 고민한 결과 나오는 것이 고작 2~3장. 살을 부쳐 글을 쓰려고 해도 배경지식도 부족했다. 게다가 이야기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조선시대 역사를 주제로 쓴 권현진 학생은 중간에 스토리 전개가 힘들어 ‘학교’로 주제를 바꾸었다. 하지만 내용을 들어본 친구들이 역사 이야기가 더 낫겠다고 해서 다시 조선시대 이야기를 썼는데 이번엔 소설을 읽어본 아버지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해를 품은 달’과 스토리가 똑같다는 지적을 했다. 하는 수 없이 조선시대에 대한 자료조사와 연구를 하면서 다시 상상력을 발휘해 글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천문학을 소재로 쓴 최연우 학생은 천문학과 소설을 자연스럽게 합쳐야 되는데 풀어내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초등학교 6학년의 수준을 넘는 천문학 지식은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선생님과 몇 번의 수정을 거치며 스토리를 이어갔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천문학에 대한 자료조사를 하면서 천문학 지식도 한층 발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간에 스토리가 막히면 마인드맵을 이용한 학생도 있었다. 허예림 학생은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마인드맵을 이용해 중간제목을 먼저 정해두고 글의 앞뒤를 생각하며 줄거리를 만들었다.
책은 꼭 작가만 쓰는 건 아니야
기말고사가 끝나고 소설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게 되자 아이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고 마감 시간은 다가오고 하는 수 없이 주말을 모두 반납하고 교무실에서 7대의 컴퓨터를 풀 가동시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오류를 점검하기 위해 친구들과 책을 돌려 읽으면서 스토리 전개가 이상한 부분은 수정도 하고 오타도 점검했다. 김주은 학생은 “혼자 했으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7명의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고 밝힌다.
책이 나올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편집과 수정을 거쳐 완성된 책을 봤을 때는 감동 그 자체였다. 하지만 오타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기도 몇 번. 급하게 결말을 지은 아쉬움까지 남는다.그래도 나름 성과는 있었다. 허예림 학생은 “글을 쓰면서 저의 생활모습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엄마가 소설을 읽고 나를 이해해줬다”며 “부족하지만 또래 친구들이 읽고 공감해주면 좋겠다”고 밝힌다. 김소연 학생은 “소설을 쓰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유익하고 보람된 시간이 됐다”고 한다.
특히 최연우 학생이 쓴 천문학 관련 소설은 책이 출판될 당시 상영됐던 ‘인터스텔라’ 영화와 비교해 연우가 쓴 책이 더 이해하기 쉬웠다는 친구들의 평가를 받았다.
책을 냈다고 아이들의 꿈이 작가로 변한 건 아니다. 다만, 책은 꼭 작가만 쓰는 게 아니라 모두가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권현진 학생은 원래 작가가 꿈이었지만 디자이너로 바꿨다. 디자이너를 하면서도 책은 언제든지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효선 교사는 “이번 경험을 통해 소설은 작가만 써야 한다는 편협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며 “‘아이들이 뭐 하겠어’라는 생각을 버리고 다른 학교도 이런 기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밝힌다.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7명의 아이들이 쓴 소설 제목
■최연우 <501호, 작은 우주로 놀러오세요> ■ 조혜준 <농장학교>
■신하연 <마녀의 진실> ■ 김소연 <삼촌과 함께 떠나는 서울 탐방기>
■허예림 <엄마, 사춘기에요?> ■김주은 <특별한 내 동생, 진아>
■권현진 <할머니의 선물> ■ 정효선 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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