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학년도 대입에서 일반고의 수시전형 강세가 두드러진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2학년부터 2014학년까지 학생부종합전형(입학사정관제)으로 합격한 비율이 일반고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4학년의 경우 일반고는 지원자 비율 77.8% 대비 최종합격자 비율이 78.8%에 이른다. 당당하게 ‘합격’ 두 글자를 거머쥔 학생들을 소개한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교내 프로그램 집중하며 얻은 ‘진로 보물’
나우영 보성고3/서울대 자유전공학부 합격
“왜?에 관심이 많았어요. 모든 수업, 그리고 강연과 캠프에서 들은 내용을 모두 받아 적은 다음 나만의 언어로 정리해요.” 세상의 정보, 지식을 받아들이는 나군만의 방식이다. 이런 노력의 밀도와 시간이 쌓이면서 주위로부터 ‘생각이 깊다’, ‘사고의 관점이 남다르다’는 평판을 자연스럽게 얻게 됐다.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
스스로 연마한 내공은 창의적 모둠 연구 논문 대상, 나의 주장 발표대회 대상, 중국수학여행 기행문과 역사체험 봉사활동기 최우수상 등 다양한 교내 대회 ‘수상 실적’으로 이어졌다.
“고1 때는 ‘뭐든지 무조건’ 열심히 참여했어요. 사실 내가 뭘 잘하는 지 또 교내 대회들 중에 어디에 주력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교내 대회를 준비하며 호기심을 가지고 주변을 보니 새로운 것들이 그의 레이더망에 감지됐다. “교실의 어느 자리가 제일 집중이 잘될지 궁금해서 교실을 측량하고 소리, 태양의 고도각, 선생님의 수업방식까지 모두 분석해서 과학 보고서를 완성했어요. 통일교육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나의 주장 발표대회에서는 학생들이 소홀히 여기는 도덕교과서를 출판사별로 분석한 다음 나의 논리를 펼쳤지요.”
학년별 로드맵 갖고 학생부종합전형 준비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성과물은 소논문. 팀원들과 함께 도시철도를 물리학, 수학, 사회과학, 언어학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4명이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자료조사와 공동 실험, 현장 답사, 전문가 인터뷰까지 협업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어요. 내가 늘 관심 갖고 있던 ‘융합’이란 키워드를 논문 속에 녹여낸 셈입니다. 노력을 많이 한 덕분에 대상까지 탔어요. 뿐만 아니라 논문 완성의 전 과정을 기록하고 나의 소감, 배운 점을 덧붙여 교내 백일장대회까지 참여했지요.” 이처럼 모든 활동을 내실 있게 참여하는 동시에 그 경험을 ‘원 소스 멀티 유즈’로 활용한 것도 나군의 전략이다.
“고교 3년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요. 밀도를 높이고 시간 낭비를 줄이는 게 관건이지요. 나는 영자신문 동아리, 각종 경시대회,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것도 해야 된다’라기 보다는 ‘이걸 하면서 머리를 쉬자’란 마인드로 접근했어요. 공부가 힘들 때 교내외 활동을 하며 휴식을 가진 셈이죠.”
100년 전통을 지닌 보성고는 각종 동아리, 과학·발명·영재교육, R&E, 역사 등 특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중이다. 특히 과학, 수학, 예술 등 여러 학문을 통합한 STEAM 교육도 일찌감치 도입하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융합교육을 전 학생 대상으로 확대해 나가는 중이다.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융합교육의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지적 자극을 받은 학생은 자발적으로 관심 분야를 파고들 수 있도록 자율연구 분위기를 만드는 중입니다”라고 보성고 융합교육의 초석을 다지는 정호근 교사가 설명한다.
이처럼 학교가 다양한 교내 프로그램을 수시로 진행하며 플랫폼을 만들어 놓으면 참가 여부 결정부터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전적으로 학생의 몫. 나군은 이 같은 학교 프로그램들을 허투루 보지 않고 욕심껏 참여하면서 일찌감치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했다.
“학교의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일본 교토를 6박7일간 탐방했는데 나의 진로 방향성을 고민하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교토대, 일본 시마즈 연구소를 방문해 우리 나라와 일본의 기초과학 연구 격차가 왜 벌어지는 지, 양국의 과학교육의 차이점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요.”
나군은 물리, 뇌과학, 철학에 관심이 깊다. 물리 올림피아드 통신교육과 뇌과학 올림피아드에 참여한 것도 이 분야의 호기심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진로 탐색 과정을 거쳐 융합학문을 공부하겠다고 결심을 굳혔기 때문에 39: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한양대 의예과 대신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를 택했다.
“고교 3년을 돌이켜 보면 주변 사람들의 조언은 경청하되 내가 하고 싶을 걸 꺾고 주위와 타협하지는 않았어요. 내 목표가 분명했으니까요. 친구들 중에는 수능에만 올인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꽤 있어요. 점점 입시는 성적 뿐 아니라 진로와 연계한 교내 활동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어요. 후배들에게도 입시 흐름을 정확히 읽고 고1 때부터 충실히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독서토론동아리 통해 쑥쑥 성장
김소정 잠실여고3/성균관대 사회과학학부 합격
내신, 스펙, 수능 입시 3종 세트를 물 샐 틈 없이 관리하기 위해선 시간 활용 기술이 관건이다. 하루 24시간을 스스로 컨트롤하기 위한 필수 요소는 바로 ‘재미’. 김양은 그 재미를 동아리에서 찾았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독서토론동아리”라 말하는 그는 적성, 자신감, 활달함, 실천력, 좋은 친구를 모두 동아리 활동을 통해 얻었다.
“모든 커리큘럼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게 우리 동아리의 전통입니다. 동아리 차장을 맡은 덕에 독서 목록과 토론 주제를 정하고 연대, 고대 대학 탐방을 기획했지요. 모든 활동을 할 때는 20명 남짓한 동아리 부원들이 똘똘 뭉쳤고요. 가령 국어책에 나오는 채만식의 <레디 메이드 인생>을 읽은 다음 소설 속 일제강점기와 현재를 비교하며 부원들끼리 끝장 토론을 하는 식이지요. 남이 짜 놓은 판에 박힌 생활만 하다 나 스스로 판을 짜는 기획자가 되니 신이 나더군요.”
토론 통해 180도 바뀐 성격
내성적인 성격도 토론을 꾸준히 하면서 적극적으로 바뀌고 논리적인 말솜씨에 애드립까지 늘었다. 게다가 교내 토론대회에서 대상까지 타면서 ‘스펙’까지 갖출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대입 원서 쓸 대 자기소개서 안에 생생하게 녹아들었다. “임원 경험이 없던 내가 리더십을 자신 있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은 동아리 활동이었어요. 워낙 재미있게 활동했기 때문에 자소서 안에 풀어낼 이야기가 많고 학생부종합전형을 충실하게 준비할 수 있었죠.”
고교생이 된 후 성격이 180도 바뀌었다는 그. 하릴없이 보낸 중학시절이 반면교사가 됐다고 고백한다. “소심한 성격인데다 시간 없다는 핑계로 중학교 때는 동아리, 경시대회, 캠프 등 아무런 활동도 안했어요. 졸업할 즈음 허무하더군요. 그래서 고교 입학 후에는 눈 질끈 감고 뭐든 시도했어요. 대회에서 상을 타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남들의 주목을 받으니까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돼 성적도 꾸준히 올랐죠. 덕분에 선생님들과도 친해졌지요.”
각종 교내 대회 참여하며 잠재력 발굴
잠실여고는 전통적으로 토론과 논술이 강한 학교다. 2010년에는 서울시교육청 독서토론논술 우수 학교로 뽑혔고 이듬해에 송파구청 지원 우수프로그램으로 선정돼 송파구내 다양한 고교생을 위한 리더양성 토론 논술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중이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가 필수입니다. 자료 조사를 충분히 해서 논리의 틀을 세워야 하며 효과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말하기 방법론을 고민하게 되죠. 일련의 과정 속에서 독해력, 어휘력, 창의력, 표현력, 논리력이 골고루 길러지고 자기주도성이 강화됩니다. 당연히 매년 입시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라고 소병찰 교사가 설명한다.
매년 열리는 토론대회도 재학생의 참여율이 높다. 김양도 토론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동아리 활동에 탄력을 받았다. “법조문 하나까지 찾아가며 치밀하게 준비했어요. ‘뭐든 부딪히면 되는구나’란 자신감을 얻었지요.” 특히 토론대회 심사를 졸업생이 맡는 것은 잠실여고만의 전통. 대학 재학생부터 사회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선배들이 토론 전 과정을 예리하게 심사할 뿐 아니라 후배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난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며 동기부여를 돕고 있다.
최근에는 변하는 입시에 맞춰 인성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요가, 복싱 같은 체육 방과후를 도입하고 생태체험을 겸한 학교 가꾸기 프로그램도 진행합니다. 입시의 축이 수시로 바뀌면서 이런 교내 행사에 학생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라고 소 교사가 귀띔한다.
김양 역시 교내 프로그램과 경시 대회에 부지런히 참가했다. 지리경시대회에서는 1등상까지 받았다. “사실 나는 대입 원서를 쓸 때까지도 진로를 확정짓지 못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 적성을 제대로 알기 위해 교내 프로그램에 최대한 많이 참여하며 잠재력을 타진해 본 거지요. 소논문을 써보고 방과후 시간에는 복싱도 배웠지요. 후배들에게도 내 경험담을 들려주며 공부에만 올인하지 말고 다양한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라고 강력 추천합니다.”
동아리, 토론 활동 통해 ‘철학’의 꿈 키웠어요
정혜원 한영고3/고려대 철학과 합격
“학교에서 진행하는 ‘토요 인문학 특강’과 ‘예비대학 토요 특강’을 들으며 ‘철학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어갔고, 철학동아리 활동을 통해 철학과 관련된 다양한 토론과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토론이나 아우멘토 등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활동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갖게 된 철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대학교에서의 심화된 철학 공부로 이어가고 싶습니다.”
동아리·토론 통한 철학 관련 다양한 활동
고려대, 서강대, 경희대. 혜원양이 합격한 학교들이다. 혜원양은 “수시전형이었기에 합격이 가능했다”며 합격의 이유를 “다양한 활동을 부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 학교 모두 ‘철학과’를 지원한 헤원양. 그가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학교에서 진행하는 인문학 특강을 통해서다. 특히 철학을 전공한 전문가의 특강은 그를 철학의 매력 속으로 이끌게 했다.
2학년이 되면서 동아리 활동도 철학연구반(테오리아)으로 택했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철학반 활동.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진정한 예비 철학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장 의미 있고 재미있었던 철학연구반 활동은 학교축제 한맥제에서의 연극이었다. 개인의 동일성을 주제로 한 ‘테세우스의 배’ 연극의 대본을 구성하고 연출을 맡아 많은 학생들에게 ‘철학’이란 화두를 던졌다.
그는 “‘철학은 어렵다’는 철학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전환할 수 있었다”며 “‘즐거운 철학’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철학연구반 활동 후, 철학의 흐름과 다양한 동서양 사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우고 싶었던 그는 3학년 사회탐구 과목으로 ‘윤리와 사상’을 선택했다. 방과 후 보충수업도 들으며 ‘윤리와 사상’ 교과내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게 된 혜원양. 많은 철학자들이 사회문제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아가며 정약용의 공직사상을 주제로 교내 학술세미나인인 또래 세미나 발표에도 참여했다.
뭔가를 배우고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말하는 공부방’을 활용,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말하는 공부방은 지난해 개설된 한영고 교내 프로그램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말로 표현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서로 묻고 대답을 설명하며 공부하는 시간.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과목을 스터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인재학급 인문사회영역’ 토론수업에도 참여했다. 혜원양은 토론수업이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법과 주장, 이유, 근거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법을 배우면서 동시에 비판적 사고와 균형 잡힌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아우멘토와 선글활동, 협력과 배려의 마음 깨달아
동아리 활동과 다양한 토론활동을 통해 깨달음과 변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된 혜원양은 교내 멘토링 프로그램인 ‘아우 멘토’로 생각을 실천으로 발전시켰다.
아우멘토는 3학년 학생들이 후배들을 위해 학습과 인성함양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으로 3학년 학생들은 멘토로서의 뿌듯함과 리더십을 배우게 되고, 1·2학년 후배들은 생생 학습체험과 학교생활에 대한 살아있는 정보를 얻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
혜원양은 “전반적인 학습법에 대한 코치로 후배들을 도왔다”며 “자신감이 생겼다는 후배들의 말에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교내 독서프로그램 또한 큰 도움이 됐다. 꾸준히 진행되는 아침독서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채워갈 수 있었고, 선글 방송을 하며 가치 있는 삶의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혜원양은 “많은 글들이 기억에 남지만 특히 발레리나 강수진씨의 ‘혼자서 성과를 가지려 하지마라. 나누지 않는 성과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고 했다.
교내 심화반수업과 T-Learning반 수업에도 참여, 학업과 심화학습을 이어갔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큰 즐거움을 얻는다는 혜원양. 요즘은 수화 배우기에 푹 빠져 있다.
그는 후배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재미있어 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관심사가 생기고 나면 그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는 것 역시 재미있고 흥미로울 것”이라고 조언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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