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새해가 밝았다. 평범하게 시작됐던 2014년은 우리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역사 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졌다. 2015년 새로운 한 해. 모두들 새해 첫날 희망을 이야기 하지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아이 없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야하는 것 자체가 슬픔이고 아픔이다. 의미가 있는 날일수록 가족의 빈자리는 더욱 뚜렷해 보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휩쓸고 간 안산. 아직도 슬픔의 흔적이 남아있는 안산시내 풍경을 담았다. 그 자리에서 만나는 시민들 역시 이 긴 슬픔의 끝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깃들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풍경 하나 하나 둘 웃음을 찾아가는 단원고
이야기는 단원고등학교 정문에서 시작됐다. 엄마가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본 곳도 이 곳이었고 사고 소식을 듣고 불안한 마음으로 모여 들었던 곳도 바로 이 곳 단원고등학교였다. 사고 전 리포터가 기억하는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은 반듯하고 착실한 아이들이었다. 취재를 위해 방문 할 때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누구나 “반갑습니다”하고 인사하는 아이들. 사춘기 열병을 앓는 아들을 키우는 리포터에게 ‘고등학생이 되면 다 저렇게 반듯해 지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원고 학생들은 깍듯했다. 그래서 ‘기다리라’는 방송에 한 점 의심도 없이 기다렸을 그 반듯한 아이들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더랬다.
젊어서일까? 아이들의 회복은 빠른 듯 보인다. 단원고등학교는 사고 후 한동안 임시휴교였다. 때문에 수업일수가 모자라 겨울방학이 늦어졌다. 그 속이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만은 눈물은 말랐고 친구와 장난에 웃음도 곧잘 터트린다. 참 다행이다.
풍경 둘 시민들이 뜨거운 심장 시청 앞 농성장
세월호 참사가 난 후 남은 사람들은 특별법 제정에 힘을 쏟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진상규명과 사고재발 방지 대책을 담은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며 수 백만명이 서명운동에 참가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가장 원했던 사람들은 세월호 유가족이었고 이들을 묵묵히 도운 사람들이 세월호 시민대책협의회였다. 안산지역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시민대책협의회는 특별법 서명운동을 벌이기 위해 시청앞에 시민농성장을 설치했다. 시민단체에서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농성장을 지켰으나 지금은 민주노총 안산지부 회원들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민주노총 담당자는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난 후 어떻게 진행되는지 언론에서는 잘 안 나오니까요. 궁금하신 시민들이 오가다 들어오셔서 요즘 상황을 묻곤 합니다.”라고 말한다.
가끔 아직 서명하지 못한 시민들이 들려 서명을 하고 가기도 한다. 시청 앞 농성장은 유가족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상징이다.
풍경 셋 이제는 노란 리본만 남은 안산문화광장
참사가 일어나고 안산 공동체에서는 아주 잠깐이지만 광장문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메스미디어가 발달하기 전 사람들은 소식이 궁금하면 광장을 찾았다. 광장은 가장 빨리 소식을 듣고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SNS가 발달하면서 그 광장은 온라인으로 옮겨갔지만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는 촛불은 안산문화광장을 밝혔다. 범국민촛불대회가 대규모 행사로 열렸고 친구들의 희생을 아파하는 안산지역고등학생들의 촛불문화제가 이곳 문화광장에서 열렸다. 문화광장은 그렇게 시민들이 모여 아픔을 공감하고 진도 팽목항 소식을 가장 빨리 듣는 곳이었다. 그러나 주변 상인들의 원성으로 시민촛불대회 장소가 각 동네로 옮겨가고 지금 문화광장에는 노란 리본만 남아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빨리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리라.
풍경 넷 진상규명을 바라는 엄마 아빠들의 일터 ‘화랑유원지’
단원고등학교 학생 250명과 교사 12명의 영정사진이 안치된 곳 화랑유원지. 정부합동분향소 앞에서는 세월호 동행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수학여행 출발 사진부터 특별법 제정을 위해 고군분투한 가족들의 모습이 전시중이다. 분향소안에는 여전히 앳된 얼굴 아이들이 사진 속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아이들을 기억하는 슬픔은 오로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분향소 주변은 겨울맞이 준비를 끝냈다. 바람에 나풀거리던 천막대신 컨테이너 박스에 자리를 잡았다. 가족들을 돕는 봉사단체와 유가족 상황실, 엄마의 공방도 만들어졌다. 작은성당도 있고 교회도 있고 마치 416아이들이 살아가는 마을 같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다시피 한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간담회를 열고 간담회에 나눠 줄 선물을 만들고 아이들을 잊지 말아달라며, 진상규명에 함께해 달라며 행사를 준비한다.
마침 분향소 앞에서 독일 베를린에서 온 교민을 만났다. 이들은 유가족에서 전할 서명용지를 들고 왔다. 홍은아씨는 “베를린에 교민과 독일인에게 받은 3119명의 서명입니다. 희생자 숫자만큼 신발을 전시하고 사람들에게 세월호의 참사를 설명하고 서명을 받았어요. 진상규명이 되는 그날까지 유가족 분들에게 힘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특별법은 제정됐지만 서명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집계된 바로는 600만명이 넘어섰다.
서명 집계작업을 진행 중인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 정인아빠는 “특별법 제정으로 서명운동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우리가 그만하고 싶다고 해서 그만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분들은 독일에 돌아가면 또 서명을 받으시겠다고 합니다. 서명은 계속 될 것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안산. 조그만 자극에도 금새 눈물이 핑 도는 사람들. 그러나 연대의 손을 내미는 이웃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새해에는 이 연대의 힘으로 슬픔을 넘어 희망을 일궈갈 수 있을까? 세월호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에게 남은 숙제가 너무 크고 많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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